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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기옥 Jan 10. 2022

파란 눈 시아버지, 우리 집 아이 (64)

아이들을 닮은 시아버지 / 나 원래 수다쟁이잖아

3월 19일

# 아이들을 닮은 시아버지


아버지가 아이들을 닮은 게 또 하나 있다. 머리 깎는 것을 싫어한다. 머리 깎자고 하면 내버려 두라고 해서 그럼 '비틀스'처럼 머리를 길을 것이냐고 하면 아니 아니한다.

아님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처럼 머리가 길다고 하면 혀를 길게 내민다. 그 유명한 혀를 내밀고 찍은 아인슈타인의 사진을 연상하고 흉내 내는 것이다..

시아버지가 휠체어에 앉아 있을 때 나는 망토? 를 두르고 가위를 가지고 머리를 자르려 하자 시아버지는 머리를 앞뒤로 끊임없이 흔들어 머리를 제대로 자르는 것은 거의 불가능했다. 그래서 나는 TV를 켜놓고 자신이 머리를 자른다는 것을 잊어 머리를 흔들지 않을 때를 기다려 자르고 기다리다가 가끔 졸으면서 고개를 떨구면 자르고 하는 식으로 해 삼십 분 정도 걸려 층이 지게 머리를 잘랐다. 

나: "머리를 흔들지 않고 가만히 못 있어요? 어린아이보다 더 하군요"
시아버지: "네 말이 맞아. 벌로 네가 가진 가위로 내 귀를 잘라버려"
나: "그러면 아프잖아요"
시아버지: "아프라고 그러라는 거지, 그래야 마땅해!"
나: "머리를 다 잘라서 당신 이제 예뻐요, 귀가 없으면 예쁘지 않으니까 그냥 둬요. 이젠 됐어요, 거울을 봐요"
시아버지: "고마워, 고마워"
나: "머리카락이 얼마나 바닥에 많이 떨어졌나 봐요!"
시아버지: "그러니 머리 깎기를 잘했지. 그런데 무척 힘들었어"
나: "누가요?"
시아버지: "내가"

나는 내가 무척 힘들게 머리를 깎아  힘들지 않았냐고 할 것으로 기대해 그런 대답에 의아했지만 사람은 자기를 중심으로 사물을 보니까 와일드한 사람이 머리 깎을 때 머리를 움직이지 않고 가만히 있어야 하는 것도 역시 힘든 가보다.

정상적인 사람은 하루 종일 누워 있는 것을 상상만 해도 지겨운 법이라 우리는 아버지를 자주 침대에서 나오게 해서 휠체어에 앉힌다. 옷을 입히고 아버지를 들어 앉히고 휠체어에 안전벨트를 매는 등 번거롭지만 아버지의 삶의 질을 생각해서 하루에 두 번씩 그 수고를 마다하지 않는다. 이왕 아버지를 돌보기로 했으면 최선을 다해서 그나마 조금이라도 편하게 살게 하는 것이 우리들이 해야 할 일이라고 본다. 

나: "우리는 당신이 휠체어에 앉아 있는 게 보기가 좋아서 일이 많지만 하루도 빼놓지 않고 나오게 하지요. 누워만 있으면 기분도 나쁘고 뼈나 근육에도 안 좋아요"
시아버지: "너는 참 착해"
나: "창찬해 줘서 고마워요. 불쌍한 사람한테 동정심을 보이는 것은 당연하지요 뭐"
시아버지: "나도 옛날에는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돕곤 했는데..."
나: "잘 알아요. 당신도  착한 사람이었지요.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 있으면 제일 먼저 달려간 사람은 당신과 당신의 아내였지요. 그러니 이런 돌봄을 받으시는 것은 당연하지요. 그런데 대변봤어요?"
시아버지: "안 가리켜줘!"




3월 23일

# 나 원래 수다쟁이잖아


아침부터 별다른 이유도 없이 아야, 아야, 하며 소란을 피운다. 

나: "어디가 아파요?"
시아버지: "아니 그냥 해보는 거야!"
나: "그냥 그렇게 이유도 없이 아야 소리를 하며 소리를 지르는 거예요?"
시아버지: "너 몰랐어? 나 원래 수다쟁이잖아?"

인도 남자 간호사 '조'가 왔다. 조가 시아버지 면도를 했는데 턱과 목을 피투성이를 만들어 놓았다. 면도할 때 끊임없이 얼굴을 흔드는 시아버지를 물과 비누를 사용해 면도하는 것은 불가능해 다른 여자 간호원들은 전기면도기로만 면도를 하는데 조는 물과 비누를 사용해서 제대로 면도를 해 얼굴이 여러 군데 상처가 났다. 

나: "저런 조가 당신 얼굴에 상처를 입혔군요"
시아버지: "그 남자는 말 도살꾼이야!"
나: "시장하세요?"
시아버지: "아니 배 안 고파, 흠 그런데 내가 배가 안 고플 때가 있다니 뭔가 잘못됐나 봐!"

아버지는 병이 들고 나서부터 식욕이 언제나 좋아서 배가 고프지 않다고 그러는 법은 거의 없어서 하는 말이다. 부모들이 자녀들의 성장과정을 지켜보면서 아이들이 뭔가 새로운 행동이나 말을 하면 기특해하며 자랑을 하고 싶어 하는데 우리는 아버지의 퇴보 과정을 지켜보며 뭔가 생각 깊은 말이나 색다른 행동을 하면 놀라워하며 대견해 하기는 마찬가지다.

그런 기쁨을 느끼며 시아버지에 대한 애정이 추진력이 되어 시아버지를 보살피는 게 익숙해져 다행히도 지금은 그렇게 힘들지 않다. 시아버지의 건강상태가 점점 나빠져 가는 것을 유감이지만 주어진 환경에서 최선을 다하며 시아버지의 유머를 즐기며 웃음을 잃지 않는 나를 보고 사람들은 동정의 눈길을 보내며 그런 힘든 상황에서 그렇게 즐거운 표정을 지으며 사는 나를 이해할 수 없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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