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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기옥 Jan 20. 2022

파란 눈 시아버지, 우리 집 아이 (77)

우리는 아버지의 보호자

7월 5일


우리가 하루 종일 집을 비워야 할 일이 생겨 아버지가 먹을 음식을 챙겨놓고 돌 볼 사람을 구했다. 아침여덟시에 휠체어에 앉겠느냐고 묻자 세 번씩이나 물어도 반응이 없었다. 그럼 대답하기 좋아하는 질문을 해야지 뭐  

앤디: "식사하게 틀니 갖고 올까요?"
시아버지: "(얼른) 응"

틀니랑 턱받이를 갖다 주면 자다가도 눈을 반짝이며 좋아한다. 곧 먹을 것이 생긴다는 것을 아니까, 식사할 때 입놀림이 성급해 한번은 바나나를 먹이다가 눈을 다른 데로 잠깐 돌린 사이에 내 손가락을 물렸다. 그다음부터는 무엇이든지 포크로 찍어서 주거나 정신을 바짝 차리고 준다. 건강상태가 나쁘거나 피곤하면 더 심하고 먹을 때는 입을 크게 열고 마실 때는 물을 빨아야 하니까 입을 조금만 열어야 하는데 그 박자가 잘 맞지 않는다. 약은 언제든지 와그작와그작 씹어 먹는다. 

나: "약이 쓰지 않아요? 왜 그렇게 씹어요?"
시아버지: "쓰고 말고, 꼭 쓸개 같아"

오늘 점심으로 오랜만에 피자를 주문했다. 피자에 검은 올리브가 얹혀 있었는데 첫 조각을 주고 나서 아차 올리브 씨가 들었을 텐데 싶어 거의 동시에 입에 있는 것을 뱉으라고 하자 얼른 뱉었는데 내 손바닥에 검은 것과 하얀 것이 놓여 있다. 그것이 무엇인지 볼 겨를이 없어 탁자에 놓고 계속 피자를 먹였다. 시아버지가 한번 씹는 일을 시작하면 꼭 모터가 돌아가는 것과 같아 딴정을 피울 수가 없다. 한번 모터가 돌아가기 시작하면 쉽게 멈출 수가 없듯이 시아버지가 먹기를 시작하면 접시가 비어야 끝을 낼 수 있다. 행여 그전에 딴정을 피우거나 뜸을 들이면 배고픈 아기새처럼 입을 계속 벌리고 야단이니까. 피자를 전부 다 먹이고 나서 시아버지의 얼굴을 보니 뭔가 빠진 것 같아서 입안을 자세히 살펴보니 이가 하나 빠져 휑하니 구멍만 보이는 것이었다. 그래서 예감이 이상해서 탁자 위에 놓인 것을 자세히 보니 까만 것은 올리브 씨였고 하얀 것은 시아버지의 이였다. 올리브 씨로 인해 틀니에 이한개가 똑 떨어져 나온 것이었다.

그 아버지의 그 아들이라더니 이 빠진 아버지를 보고 아들이 하는 말, 

앤디: "우리 아빠 귀여운 것 좀 봐, 이가 하나 없으니 아빠가 더 귀엽네!"

아버지가 우리의 귀여운 아이가 된 지 벌써 일 년 반이 넘었다. 우리가 아버지의 보호자가 되고 나서 뭐든지 우리가 결정하고 우리가 원하는 것을 원하는 시간에 주고 뭐든지 우리 손에 달려 있다고 생각하자 본의 아니게 우리가 아버지보다 우월하다고 생각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들곤 한다.

아버지는 전적으로 우리의 도움을 필요로 하니 말이다. 그런 잘못된 느낌이 들 때 빨리 떨쳐 버리고 무시해버린다. 그런 생각을 하는 것은 죄를 짓는 것 같아서이다. 우리는 아버지를 인자한 아버지, 우리를 위해서 궂은일도 마다하지 않은 분으로 기억하고 병이 들어서 우리의 도움을 필요로 하지만 정상인인 것처럼 대해 아버지의 존엄성을 지켜 주려 각오해 본다.

병든 사람을 돌보는 데는 환자에 대한 사랑 , 존경심, 동정심, 감정이입 등과 같은 좋은 특성들이 필요하다. 쉽지는 않지만 병든 사람의 입장이 되어서 생각해보고 이해하려 노력한다면 병든 사람을 돌보는데 반은 성공한 셈이다. 내가 사랑으로 병든 사람을 대하면 메아리가 돌아오듯이 병든 사람은 신뢰와 사랑과 감사함으로 대답한다. 그렇게 되면 더는 돌보는 사람을 괴롭히지 않으며 만족해하고 웃어 집에 분위기에 한몫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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