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섯 번째 : #재미있으면됐어

라디오 애청자 지현미

by 김밀

진짜가 나타났다. 동네 카페 ‘지정석’에 앉아 키보드를 두드리는 지금 마음은 출국 전 공항이다. 이 손글씨를 보고 어떻게 안 신날수가 있나. 문구는 어디서 가져온 게 아니다. 시집을 자주 보는 덕분이란다. 브라보.


우리 라디오 애청자. 주로 일하는 곳에서 라디오를 들으면서 소형 라디오를 세 번이나 갈아치울 정도로 긴 세월 함께 하고 있다. 부족하지도, 과하지도 않은 애청자 몇몇 분들 중에서 넘치는 매력을 가진 그는 나에게 첫손가락에 꼽힌다. 인스타그램을 보면서 캘리그래프를 하고 있는 건 알고 있었는데 그림도 수준급.


누구에게나 똑같이 주어진 시간, 일하고 가족들 챙기는 것도 빠듯한 사람이 있는가 하면 그 와중에 좋아하는 일을 찾아 열심히 시간을 쌓는 사람도 있다. 후자의 삶을 동경하고 사랑하고 존경한다. 뭔가를 시작하면 금방 싫증내고 금세 그만둬버리는 꼴을 보고 종종 엄마는 ‘또 구정물 일으켰네’ 라는 말씀을하시곤 했다. 자식일이라면 펄펄 끓어오르는 불에도 뛰어 들어가고, 물귀신이 드글거리는 바다에도 들어갈수많은 엄마들처럼, 자식애가 남다른 엄마도 몰랐던 것이다. 구정물을 일으켜야지만 좋아하는 일을 알게 된다는 것을.


재미있어 보이는 일에 뛰어들었다가 ‘앗 뜨거’ 하고 뒤도 안 돌아보고 나올 때도 있고, 별생각 없이 시작한 일이 주변 사람들과 그곳만의 분위기로 즐거움이 오래갈때도 있다. 이런 시간들이 쌓여야지만 ‘진짜 좋아하는 것’을 알게 된다.


소설가 림태주는 ’ 반복은 지겨움과 편안함의 속성을 가지고 있다. 지겨움 쪽으로 나아간 반복은 결별을 만난다. 편안함 쪽으로 나아간 반복은 일상이 된다 ‘라고 했다. 주말마다 산에 오르든, 전국의 빵집을 돌아다니든, 좋아하는 가수의 포토카드를 모으든 ‘인생의 놀이’를 열심히 하고 있는 사람들은 오랜 시간 동안 시간, 돈, 품을 들여 찾은 것이다. 삶에 대한 애정을 가지고 부단히 애를 써야지만 가능한 일. 그래서 존경한다.


- (글과 그림은) 어떻게 시작하신 거예요?

- 글은 평소 명언이나 노랫말, 짧은 시를 끄적이는 걸 좋아했어요. 그림은 우연히 무료하게 앉아계시던 할머니를 보다가 먼 훗날 나이가 들어서도 할 수 있는 취미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나이 들어서 걷는 게 힘들어질 때 그림이나 글만한 취미가 없을 것 같아서요.


‘문인화 구정물’을 일으키고 있는 포항 친구 말에 따르면 글과 그림은 같은 거라고 한다. 그림을 그리다가 글도 배우게 된단다.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 그러고 보면 글과 그림 그리고 한때 구정물을 일으켜 본 춤에는 공통점이 있다. 구성. 강약을 조절해야 하고, 강조를 해야 하고, 여백을 살려야 한다. 놀이의 구성은 인생의 탄탄한 짜임으로 이어진다. 자연스럽게 멋이 흘러내리는 삶. 그러니 매력적일 수밖에.


조금 전, 카페에서 파도를 보며 커피와 빵을 그린 그의 그림에 좋아요를 눌렀다. #못그리면어때 #재미있으면됐어 그가 붙인 해시태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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