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번째 : ‘제가 눈이 없습니다’

국회의원 비서관 김태우

by 김밀

- ‘비서관스러운’ 문구네요.

- 손글씨 부탁하셔서 인스타 찾아봤습니다. 본 계정에 연결돼 있더라고요.


어딜 가든 핀조명이 내리쬐는 국회의원을 뒤에서 보좌하는 일을 하고 있지만 내 눈에는 한줄기 빛이 그에게 쏟아졌다. 두 번의 짧은 만남이 있었고 공교롭게도 볼 때마다 한쪽 눈에 안대를 하고 있었던 것.


- 아니, 술을 마시고 이렇게 자꾸 구르시면 어쩝니까?

- 제가 눈이 없습니다.


오랜만에 바지를 꺼내 입었는데 돈 천 원이 나오더라와 같은 어조. 되지도 않은 농담에 담백하고 간결하게 대꾸한 그가 궁금했고, 전화를 했고, 내가 있는 곳으로 와주었다.


- 태어난 지 4개월 만에 눈에 악성종양이 생긴 걸 알게 됐대요. 큰어머니가 양쪽 눈 크기가 다른 것 같다고 하셔서 병원엘 갔는데 그냥 두면 나머지 눈마저 번질 수 있다고 해서 아기 때 덜어낸 거죠. 초중고 졸업하고 스무 살, 스물한 살 무렵에 지나온 시간만큼 의학도 발달했겠지 싶었어요. 그런데 눈이 없다 보니 눈을 감싸고 있는 뼈도 자라지 않은 거예요. 아기 때 그대로인 거죠. 그때 수술이 안 된다는 말을 들었을 때 가장 힘들었습니다.


대학 때 가볍게 알바라도 해야지 했는데 18번의 면접을 떨어졌다. 그렇게 사회로 나왔고 인쇄업을 하다 지인이 선거사무실 일을 권유했다. 낮에는 일, 밤에는 선거사무실을 나갔다. 매번 밤늦게까지 일하는 그가 의원의 눈에 띄었고 비서관으로 합류했다.


- 최근에 설레었던 적 있어요?

인생에서 제일 좋았던 일이 뭐냐고 물었을 때는 고민을 하더니 질문을 바꾸자 곧장 답이 날아왔다.


- 명함 나왔을 때요. 비서관 명함. 사람들이 저를 보는 시선이 달라졌다는 걸 느껴요. 혼자 시청에 가도 ‘의원님 오셨습니까 ‘ 해요. 그래서 자꾸 쓰레기를 주워요. 저는 그런 사람이 아닌데 말이죠. 하하.


얼마 전, 오랜만에 B와 마주쳤다. 술과 여색으로 유명한 그는 나이가 들었고, 코는 루돌프가 되어 있었고, 눈빛은 흐리다 못해 안개처럼 탁했다. 반면교사. 눈빛을 가꾸어야 되는구나. 그의 옹골차고 다부진 한쪽 눈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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