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웬영어연구소 대표 이세영
- 무슨 뜻인데?
- 영화 ‘인셉션’에 나오는 말, 자기 자신을 믿고 행동하라!
- 니는 그만 믿어도 된다.
- 다들 그 말 한다.
친구 중에 제일 잘 나가는 애야, 할 때 바로 그 애. 중, 고등학교 시절 같은 아파트에 살면서 수많은 추억을 공유했고, 시절인연으로 끝나지 않은 채 지금까지 만나고 있다.
- 세영이 잘 나가는 거 아나?
십여 년 전쯤 공무원 공부를 하고 있던 중학교 때 친구가 전화가 왔고, 몇 년간 만나지 않던 세영이를 아니, ‘그웬 선생님’을 서점에서 마주했다. 그웬이라는 이름이 머릿속에 들어온 뒤로 교보문고 한 켠에 마련된, 누가 봐도 잘 나가는 토익교재들만 모아놓은 자리에 그가 웃고 있었다. 교재 맨 앞 표지에서.
배가 아프지 않았다. 그를 아끼고 좋아했다기보다는 나와는 다른 ‘체급’이었다는 걸 이미 알고 있었고 그 인정이 익숙했기 때문이다. 옆집 아줌마를 시기하지만 이재용을 질투하지는 않는다. 영단기 토익스피킹 1위 스타강사, 온라인에서만 약 20만 명의 수강생과 만나는 강사, 2015년 영국 BBC 월드뉴스에 한국 경제 리더 5인에 소개, 그웬TV 유튜브 채널 운영. 그를 검색하면 화양연화가 끝도 없이 내려간다.
초등학교 시절 아버지 일을 따라 미국에서 살다 온 경험이 그의 인생을 지배했고, 덕분에 중학교 때부터 유난히 튀었다. 어느 수업시간에 선생님이 그에게 영어를 해보라고 했더니 선생님보다 더 있어 보이는 발음으로 쏼라쏼라를 갈겼고, 당시 지역에서 가장 컸던 입시학원이었던 ‘일중학원’에 다닐 때는 수십 명의 선생님들이 있었던 강사실을, 나는 오라고 하면 어디 도망가고 싶었던 그곳을, 여러 권의 문제집을 들고 자기 집처럼 들락거리며 모르는 것을 물었던 모습은 지금까지도 생생하다. 그리고 어느 날은 시험을 못 쳐서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면서까지 그렇게 울더니 불쑥 ‘다시는 우는 모습 보이지 않을게’ 라며 지루한 드라마에 나오는 대사를 고작 중학생이 내뱉기도 했다.
그렇게 기존쎄이면서 공부도 잘했던 그는 당시만 해도비평준화였던 시절, 울산여고에 들어갔고 그때부터 재미있게도(?) 낭만 있는 삶을 택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모범생 세영이가 아닌 ‘어중간하게 까진 세영이’라서 그래서 공부도 중간, 노는 것도 중간이었던 어중이떠중이 내가 지금까지도 그를 만나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그는 공부에서 밀렸던지 댄스부에 들어가더니 공연에 초청을 했고, 잘한다는 느낌 하나 없는 무대를 보기도 했고, 당시 남고였던 울산고등학교 축제에 가자고 아파트 앞에서 만났을 때는 머리카락에 와인색 스프레이를 군데군데 뿌리고 나와서 창피하기도 했고, 다이어트를 한다고 한동안 분유를 몇 통을 사놓고 퍼먹기도 했고, 내가 수능을 칠 때쯤에는 시간이 많이 걸렸다는 메모와 함께 찐빵 같은 걸 만들어서 우리 집 문 앞에 걸어두기도 했다.
그리고 그에게는 늘 ‘남자’가 있었다. 중딩때는 여러 남자들을 스캔하더니, 고딩때는 본격적으로 남자를 사귀기 시작했다. 특이한 성을 가진 동갑 남자를 만나고 헤어지고를 반복하면서 헤어져 있는 동안에는 어느 고등학교의 춤 잘 추는 오빠와 만나는 식이였는데, 돌고 돌아는 특이한 성을 다시 만나고 있었다.
이렇게 어렸을 때부터 ‘남자 공부’를 했으면 성과가 있어야 하는데 일로는 그 누구보다 성공을 한 그는 여전히 남자 보는 눈이 없다. 끼리끼리 논다. 남자 보는 눈이 없는 건 나도 마찬가지고 덕분에 똥파리들이 꼬이는 재주를 사이좋게 가지고 있다. 그러나 나는 한 번의 실패로 이성과 담을 쌓았지만 그는 여전히 남자와 낭만을 곁에 두고 있다. 사진을 잘 찍어서 멋있었다는 A는 사업자금으로 몇 천만 원을 요구했고, 셰프 B를 만나길래 그런 줄로만 알았는데 절에서 스님들에게 밥을해주고 있는 중년남성을 셰프라고 표현을 한 것이었다. 미친년.
선생보다 유창한 발음으로 쏼라쏼라했던 세영이는 스타강사 그웬이 됐고 지금은 나이를 먹고 최고점을 찍고 내려왔지만 여전히 잘 나가는 영어연구소 대표다. 자신을 믿고 행동하라는 자신감 넘치는 말을 붓펜을 꺼내 들고 쓰는 커리어우먼이 남자 보는 눈은 여전히 맹탕이다. 얼마 전, 한 대기업에서 직원들의 영어교육 요청으로 울산을 찾은 그를 만났다. 카페에서 줌으로 누군가와 이야기를 하고 있길래 인터넷 창으로 묵례를했다.
- 누군데?
- 남자친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