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반찬 사장 송은경
천사가 궁금했다.
‘요즘 같은 세상에 천사가 어디있냐’고 하지 말라. 물론 천사를 믿지 않은 사람도 있을 것이다. 예전에 라디오 게스트로 왔던 S변호사는 ’피를 흘리고 있으면 뒤에서 칼을 꽂아’라고 했고, 최근에 식사자리에서 T국장은 후배 아나운서의 말에 대답을 하는 내 모습을 보고 ‘리액션 좋네’라는 말을 했다.
이들이 천사를 믿는지 안 믿는지 물어보지 않아서 모르겠지만, 짐작하건대 이들은 천사는 믿지 않을 것 같다. 내 세상에서는 코피만 흘러도 호들갑을 떨며 휴지를 건네는것이 당연하고, 누군가의 말에 반응이 좋은 게 아니라 단순한 진심으로 동의를 한 것이다. 험한 세상을 보지 않아서 다행이고,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어른 연습을 게을리하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를 알게 된 건 지난 2024년 연말 라디오 특집을 준비하면서이다. 쉼터를 통해 알게 된 친구들에게 작은 도움을 주기 위해 특집 프로그램에 공을 들였고, 디제이 선배의 인지도 덕분에 적지 않은 금액이 모아졌다. 덕분에 세 친구에게 전달이 됐고 그 중 한 친구가 어린 나이에 혼자 아이를 키우고 있었다.
이 사연을 알게 된 한 청취자가 쌀과 반찬 그리고 아이 옷 등을 그 친구집에 가져다 두었고, 이 일을 쉼터 소장을 통해 알게 됐다. 사실 매년 성금을 모금하는 연말이면 이런 일들이 종종 있곤 했다. 쉼터를 찾아 아이들에게 이불 등 살림살이를 건네는 천사도 있었고, 식당을 운영하는 천사의 경우 쉼터 아이들에게 무료 식사권을내놓기도 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조금 달랐다. 한 번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는 것. 그리고 어떻게 엘리베이터가 없는 빌라 4층까지 무거운 쌀 포대를 들고 올라간단 말인가.
그가 하는 반찬가게로 찾아갔다. 명랑한 천사. 마스크로 얼굴을 가렸지만 ’ 여기 있는 반찬 보시면 돼요’라는말에서 통통 튀는 기운이 느껴졌고, 잘 되는 가게 특유의 생동감이 느껴졌다. 새우 브로콜리 볶음과 구운 소시지 두 개를 골라 계산하고는 난데없이 내 소개를 했고, 가게에 있는 동안 대화가 자주 끊겼다.
그리 오랜 시간 있지 않았는데 손님들이 쉴 틈 없이 드나들었다. 사업에 성공해서 돈을 잘 버는 지인이나 금전적으로 여유가 있는 전문직 게스트들에게 밥이나 커피를 얻어 마실 때의 기분. 가게가 잘 되고 있는 것을 보자 덜 미안했다. 두 아이에게 가는 손길이 점점 적어질 때쯤 반찬가게를 시작했고 그게 벌써 5년 전. 아파트 상가 아래에 있는 가게는 꽤 자리를 잡은 모양새였다.
- 월요일이라서 그래요. 주말 보내고 월요일에 엄마들이 반찬을 많이 사러 와요. 반찬 가져다주는 거요? 별 거 아니에요 진짜.
- 지금까지 해주시잖아요.
- 그냥 있는 반찬 가져다주는 건데요 뭐.
그는 귀찮고, 성가시고, 시키지도 않은 일을 ‘그냥’이라고 대답했다. 계산카운터 옆에 놓인 작은 저금통에 손님들이 넣는 봉투값 100원을 모아 좋은 곳에 쓰고 있고, 아들들도 누군가에게 도움을 주고 싶다는 말을 한단다. ‘묵직하고 근사한 그냥’이다.
- 저희 집은 장사가 잘 되는 편이긴 한데, 그래도 예전만 못해요. 경기가 풀리면 좋겠어요.
맛있는 깍두기가 생각나는 사각형의 손글씨에 파이팅을 더했다. 가게에서 나오는 길, 서비스로 잡채를 주겠다는 천사의 손을 물리쳤다. 공짜를 좋아하지만 윤기 나는 잡채를 날름 먹었다간 ’맛때가리’ 하나 없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