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두 번째 : 정직한 인플루언서

진행자&크리에이터 정아름

by 김밀

알코올 중독에서 회복할 수 있도록 돕는 A.A (Alcoholics Anonymous) 모임에서 알게 된 구절. 그때가 중학생이었는데, 놓치지 않고 부여잡고 있는 말이라고 한다.


- 프리랜서잖아요. 그래서 더 와닿아요. 멀리 보지 않고 그저 하루, 하루를 열심히 사는 거죠.

- 중학생이 알코올 회복 모임에는 왜 갔어?

- 아빠가 술을 많이 드셨어요. 부모님이 가구 가게를 하셨는데, 동네에서 유명했죠. 엄마가 고생을 좀 하셨어요.


가족들 속이 어지간히 끓었을 텐데, 그는 담담하게 말했다. 굳이 말하지 않아도 되는 마음 속 이야기를 그는 늘 이렇게 솔직하게 말한다. 나는 그의 정직함이 참 좋다. 언젠가 자수성가로 성공한 논술학원 원장님이 한 말씀이 생각났다. 학창 시절, 육성회비를 내지 못할 만큼 집이 가난했다고 한다. 그런데 담임선생님은 항상 전교 상위권 성적을 내고 있는 원장님 집이 ‘설마 돈이 없어서 회비를 못 낼까’ 라고 생각하시는 것 같더란다. 원장님은 조금 부끄러웠을 뿐, 우울하거나 슬프지 않았다고 했다. 자라는 내내 부모님이 한번도 돈 가지고 싸우거나, 문을 쾅하고 닫거나, 큰 소리를 내지 않았다고 했다. 늘 식사시간이 즐거웠단다. 지금도 원장님의 마지막 말을 잊지 못한다.


- 우리 집은 그저 가난했을 뿐이야.


꽤 오래전에 술을 끊은 아버지를 내세워 그는 1만을 넘은 팔로워를 가진 인플루언서가 됐다. 아버지의 모습을 오로지 곁에 있는 딸만이 볼 수 있는 유쾌한 시선으로 포착해낸다. 사실 그는 지역에서 수년 동안 한낮 메인 시간대의 라디오 디제이로 일을 했다. 그러다가 신입 아나운서가 그 자리에 들어가면서 그만두게 됐고, 다정한 남편에게 유치원생 딸아이를 맡기곤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에 올랐다.


- 고민이 많았어요. 아빠의 모습을 담으면 사생활이 다 드러나잖아요. 그런데 막상 하니까 아무 일도 아니더라고요.


내가 결혼하자마자 박살이 난, 수십 년간 꽁꽁 싸매고 있던 이혼 이야기를 주변 사람들에게 꺼냈을 때 그랬다. 왜 그렇게 숨기고 있었을까. 오히려 몇몇 사람들과는 내 이야기를 꺼내면서 예전보다 훨씬 더 돈독해졌다. 아무 일도 아니었다.


나는 그가 신기하다. 말로만 듣던 디지털 유목민으로 돈도 벌고, 재미도 얻는다. 덕분에 자극을 받는다. 좋은글을 퍼 나르기 위해 SNS계정을 새로 만든 것도, 동영상 늪에 빠졌다가 다시 책을 바짝 가까이하게 된 것도, 라디오 게스트로 출연하는 수요일 공기가 유난히 화기애애한 것도 모두 그 덕분이다. 그저 싱숭생숭한 날들을 또 다른 세상에 참여하고 이해하게 만들어줘서 고맙다는 말과 진심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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