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일보 사진기자 김도현
나에게 메시지를 전하는 손글씨는 처음이다. 도현이는내 편이다.
십여 년 전쯤, 맞춤 정장 가게를 운영하는 후배가 옷을 저렴하게 판매하는 동대문 의류 앱에다가 나를 직원으로 등록해 줬다. 덕분에 계절마다 옷을 싸게 살 수 있었는데, 그러다가 투잡으로 옷을 팔아볼까가 됐고, 그래서 부자가 돼야겠다는 어림반푼어치도 없는 생각을 했다. 네이버 밴드에 만들어서는 안 될, 새로운 계정을 만들었다. 상호명은 ‘미리옷가게’는 아니었던 것 같고, 분식집 같은 ‘미리네’도 아니었고, 미용실 같은 ‘미리살롱’도 아니었는데 내 이름 ‘미리’를 넣은 것만은 확실하다. 회사 근처 카페로 한창 일하고 있는 FD 도현이를 불러냈다. 이미 톡으로 옷을 팔게 됐다, 모델은 나다, 옷과 신발을 걸친 나를 네가 찍어줘야 한다고 전달했다. 그리고 제일 중요한 이야기는 만나서 했다.
- 도매니저. 돈은 남자 니트로 줄게.
그때부터 나는 도현이를 ‘도매니저’라고 부른다. 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가 방영 중이었는지, 종영했는지 기억이 나지는 않지만 이름이 ‘도’로 시작하기 때문에 도현이는 도매니저가 됐다. 그렇게 천송이와 도매니저가 만난 것이다. 옷을 팔아서 부자가 되겠다고 후배에게 돈 내신 니트를 주겠다며 95냐, 100이냐 사이즈를 물어봤던 천송이와 '저거 인간 되겠나’라고 생각할 법도 한데, 그런 내색 전혀 없이 '작가님 니트 좋죠’라고 했던 도매니저. 그렇게 도매니저는 일하다가 불려 나와서 빨간 치마를 입고 ‘어, 왔어? 시선으로 먼 곳을 바라보는 나를, 진한 분홍 리본이 달린 샌들을 신고 다리를 꼰 나를 찍어댔다.
맞다. 예상한 그대로다. 귀걸이 한 짝을 눈먼 누군가에게 팔고, 베이지색 남자 니트를 사람 좋은 카메라 감독님과 사업팀 피디선배가 하나씩 사줬고, 2만 5천 원에 가져와서 5만 원에 올려놨던 자줏빛 털이 달린 클러치 가방은 디제이 후배가 산다고 해서 그저 선물이라고 주고는 ‘미리옷가게’는 문을 받았다.
지금도 도매니저는 여전하다.이미 회사를 옮긴 그에게 구글 설문조사 폼을 못 만들어서 도움을 청하면 값싼 커피 한 잔에 ‘저도 처음인데 해볼게요’ 하며 뚝딱 만들어주고, 인스타그램에 사진을 올리면 늘 ‘좋아요’ 를 눌러주고, 식사 약속을 잡을 때면 ‘아무 때나 좋습니다’라고 한다.
‘편 먹는 법’을 아는가, 그를 내 편으로 만들 생각을 말고, 내가 그의 편이 되면 된다. 도현이는 내 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