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일곱 번째 : 하이힐 간호사

동강병원 공공보건의료사업팀장 송향미

by 김밀


하이힐. 회사에서 바람이 나서 진달래색 립스틱을 바르고 높은 하이힐을 신고 다니던 N이후로 오랜만에 높은 굽의 구두를 봤다. 또각또각 하이힐과 단정한 원피스, 차분한 카디건과 생기를 주는 빨간 립스틱이 한 눈에 들어왔고 투명한 색과 파츠로 정리된 손톱이 또 한 번 시야에 들어왔다.


정직한 눈빛과 들뜨지 않은 목소리. 그 앞에서 헛소리를 지껄였다가는 조용히 즈려 밟히겠다는 기운이 전해져 왔다. 라디오 캠페인을 녹음하러 온 그는 30년 차 간호사. 한 분야에서 같은 여성으로 오랫동안 현역인 그에게 존중을 담아 물었다.


- 기억에 나는 환자나 잊을 수 없는 일이 있다면요?

20대 때요. 간호사 된 지 얼마 안 됐을 때 만난 환자예요. 사고가 나서 온몸이 부러져서 병원에 왔어요. 희망이 없었죠. 그런데 저도 왜 그랬는지 모르겠어요. 환자에게 약을 쥐어주지 않고 제가 손에 약을 쥐고는 조금 떨어진 채 가지러 와보라고 했어요. 환자가 몸을 움직이게요. 의지도 대단했던 그 젊은 환자, 결국 살아서 나갔습니다.


우리 동네에 ‘페리카나’ 치킨 가게가 있다. 원래 어떤 색이었는지 알 수 없을 정도로 물이 빠진 간판을 볼 때마다 마음이 평안해진다.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프랜차이즈 치킨 가게들 사이에서 ‘언제적 페리카나’ 인가. 그런데 오랫동안 한 자리를 지키면서 성실하고 꾸준하고 정직하다는 걸 지금도 증명하고 있다. 30년 차 간호사와 빛바랜 간판의 치킨 가게는 같은 것. 앞서 길을 가고 있는 인생 선배들을 볼 때마다 마음이 놓이고 외롭지 않다. 노마지지, 늙은 말이 길을 안다.


- 일하고 있는 여성 후배들에게 하고 싶은 말 있으세요?

많이 아팠어요. 간호사를 하게 된 것도 제 몸이 아파서 선택을 했어요. 얼마 전에도 몸이 좋지 않았고요. 그래도 일을 놓지 않았습니다. 또 지나가요. 그러니 그저 했으면 좋겠어요.


‘내가 살아온 시간은 무기다.‘ 오늘 SNS에서 본 한 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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