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 한국 맨하튼 여의도에서 성공 꿈꾼, 출판

by 책책강


나는 출판 성공의 꿈을 꾸면서 30대 초반에 학습참고서 사업에 도전했다. 한국의 맨하튼 여의도에 둥지를 틀기 위해 가까운 대방동으로 이사했다. 처음엔 학원 강의자료를 활용하여 직접 원고를 집필하고 가리방을 긁어서 프린터물로 출발했다. 당시 우리나라는 개인 과외를 금지하는 세계 유일한 국가였다. 나는 과외 명분을 피해가기 위해 학원에 문제지와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해설지를 함께 제공했다. 학원에서 강의를 하면 과외가 되지만, 자습 형태로 공부하면 과외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모험을 감행한 도전이었다. ‘도전’이란 좋은 울림을 가진 단어다. 그러면서도 동시에 상당한 고난과 위험을 동반하는 말이기도 하다. 도전은 또한 헤아릴 수 없을 만큼 엄청난 인내력과 노력, 용기를 필요로 한다. 도전은 성취감과 자신감을 갖게 한다.

내가 출판에 도전한 것은 대학 학비조달을 위해 학원 운영 경험에서 시작됐다. 당시는 초등부 수학학원 태동기여서 수학교육자료 불모지 시대였다. 교육자료 개발이 절실했다고 할 수있다. 또한 사회 교육자가 냉대받고 있는 현실이 매우 안타까웠기 때문이다. 그들이 사회 교육에 기여하고 대접받는 환경이 조성되기를 원했다. 또한 초등부 학원수학교육의 활성화도 예상되어 미래시장 선점목적도 있었다. 초등부 학원은 예체능을 제외한 정규 교과목은 소위 ‘전두환 과외금지’ 조치 단행으로 학원에서 교습을 불허하고 있었다. 당시엔 ‘지능개발’ 이라는 슬로건을 내 걸고 전성기를 구가하던 주산학원과 수학(산수)교육을 하기 위해 속셈학원으로 둔갑한 지금의 보습학원이 운영되고 있었다. 학부모들은 도구과목 성격을 지닌 수학 부진아들이 양산되고 있어 수학교육에 몹시 갈증을 내고 있었다. 주산교육은 단순 계산 성격을 지니고 있어 기능에 가깝다는 평가가 있었기 때문이다. 학원 수학교육 수요는 가정학습지가 대신하고 있었다. 수요는 날로 증가되고 있었다. 학원에서 수학교육 필요성이 강하게 대두되면서 학교 교육과 보완 관계로 발전해야 한다는 사회적 여론이 점점 높아졌다. 속셈학원 원장들은 수학교습 허가를 획득하기 위하여 단합된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입법 쟁취를 위해 국회가 있는 여의도에서 행사를 많이 했다. 우리는 속셈학원 관계자들을 물심양면으로 지원을 아끼지 않았고 임원들도 현장에 나가 직접 지원했다. 나의 사회생활은 군복무 만기 전역 1개월을 앞두고 대한전선 입사 시험에 합격하면서 시작되었다. 군생활은 경기서북부 야전 공병대에서 작전 상황병으로 복무했다. 취업 후에는 갈급하던 대학진학을 위해 낮엔 직장에서 일했고, 저녁엔 동네 도서관에서 코피와 사투를 벌였다. 나는 주경야독으로 한국외국어대학교 야간 경영학부에 진학할 수 있었다. 나는 학업에 좀 더 비중을 두기 위해 직장을 사직했다. 고등학교시절 주산선수 생활을 밑천삼아 1981학원 원효로에서 대성경리학원을 개업하였다. 덕분에 나는 무난하게 대학을 마칠 수 있었다. 나는 만학도여서 대학 3학년 때에 결혼을 하고 학원 수입으로 학비를 조달하고 아내와 생계를 유지했다.

나는 대학을 졸업한 후에 운영하던 학원을 정리하고 여의도에 12평 남짓한 사무실에 임대 보증금 5십만원으로 출판 사업을 시작했다. 처음에는 임대료 7만원 내기도 버거웠다. 과거 학원에 근무했던 경리담당 여직원에게 관리를 맡겼다. 출판 원재료인 용지는 지인의 도움으로 지업사를 소개받아 20십 만원부터 거래를 시작했다. 매주 5만원씩 결제하기로 하고 문방구에서 구입한 개인 약속어음을 발행했다. 매주 토요일날 여의도에서 을지로까지 54번 버스를 타고 결제하러 다니면서 신용을 쌓아 나갔다. 신용이 자산이라는 것을 절감한 시기였다. 나는 초기에 기획에서 유통까지 직접 1인 10역을 했다. 여의도 사무실에서는 철야 작업이 허용되지 않았다. 수요가 늘면서 낮에 일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했다. 대방동에 여관을 얻어 동료와 밤을 새워가며 낮에 못한 원고 집필을 했다. 작업을 마치면 을지로에 나가서 B4용지에 마스터 인쇄를 하여 작은 용달차로 대방동집으로 이동해왔다. 밤을 새워 한장한장 낱장을 세어서 분류했다. 아내는 아이들을 잠재우고 새벽까지 나를 도왔다. 날이 밝을 무렵 집중 우체국에 나가 한나절에 걸쳐 전국에 흩어져 있는 학원으로 보냈다. 문제지와 해설지는 10:1비율로 세트화하고 가격은 10장, 30장, 50장, 100장 단위로 가격을 달리했다.

증명.나는 학원교육 전성시대가 온 다고 내다 봤다. 촉이 좋아 시장 흐름을 관통한 그 예상은 적중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전국방방곡곡에 소문이 나기 시작하면서 주문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또한 지역명을 활용하고자 여의도에 둥지를 틀었던 것도 원래 의도대로 신뢰도 상승에 시너지 효과를 냈다. 인프라 활용 등 특화된 지역은 스타트업에 도움이 된다. 사람들이 도전을 두려워하는 이유는 그 일을 이루기까지의 어려움을 미리 염려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누구나 내가 가진 열망에 따라 도전하는 일을 두려워하지 말아야 한다. 실패를 두려워 말고 기회를 붙잡아야 한다. ‘아무 일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고 했다. 무엇이든 작게 시작하고, 자신감을 갖고 단계적으로 성취하는 것이 좋다.

꿈은 꾸고 실천해야 이루어진다. 항구에 정박되어 있는 배는 안전하지만 그것이 배가 존재하는 이유는 아니다. 내가 학원을 접고 출판에 뛰어든 것은 대학졸업을 마치게 되면서 또 다른 세상에 대한 모험도 있었다. 인류의 역사는 도전과 모험, 성취의 반복이다. 그러면서 인류는 계속 진보를 거듭했다. 우리의 도전은 세상의 기록이 되고 우리의 기록은 세상의 역사가 된다. 도전은 인생에서 꿈을 실현할 수 있는 누구에게나 가치있는 일이다. 도전은 나의 힘이 되고 역사가 된다. 도전은 인생 최고의 자산이 된다. 나의 도전 성취물은 차곡차곡 쌓여갔다. 학원가의 신화를 쓴 응용수학은 강의 자료를 활용하여 이렇게 처음 프린터물로 출시되었다. 작은 성취를 통해 차근차근 자신감을 키워나가는 것이 좋다. 도전없이 성취없다.

keyword
이전 07화1.6. 시행착오 반복해서 겪지 않는 법, 경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