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 국내 최초로 학원FC 시장에 진출하다.

by 책책강

초등부 속셈학원은 전성기를 맞이하고 있었다. 학생들은 넘쳐나기 시작했고, 새 건물이 생기면 ‘학원 입주’라는 공식이 생길 정도로 학원은 호황기를 누리기 시작했다. 우리 한성도 함께 전성기를 구가했다. 나의 거침없는 추진력은 계속되었다. 한성은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다하고자 1991년 국내 유수한 신문사와 공동으로 전국 규모의 초등부 수학경시대회 프로젝트를 추진했다. 이어서 1992년 이 땅에 최초로 하이맥스 한성스쿨(프로젝트명) 학원 FC시장에 야심적으로 진출했다. 하지만 아무리 잘 나가도 급격한 변화는 오히려 성장을 방해할 수 있다. 시장에 앞서가기 위해 지나치게 공격적이면 넘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선택과 집중을 통한 단계적이고 점진적으로 발전해야 한다.

내가 구상한 수학경시대회 실시는 고객에게 받은 성원에 보답하고 동량지재 발굴이 목적이었다. 사회 공헌을 통하여 ‘선한 영향력’을 위해 노력하는 매우 의미있는 행사라고 생각했다. 나는 MBC장학퀴즈를 벤치마킹한 멋드러진 경시대회를 꿈꿨다. 나아가 한성스쿨 학원FC와 결합하여 시너지 효과를 내고 궁극적으로는 학원 시장 장악 기회로 만들고자 했다. 수학 경시대회는 처음엔 동아일보사와 공동 개최를 협의했으나 결렬되고, 소년조선일보․조선일보사와 1년 여의 협의 끝에 대교 눈높이가 봄철에 실시하고, 가을철 대회를 추가하여 당사 한성문화와 개최하기로 합의했다. 매우 의미있고 보람있는 일이었다. 당시 대교 눈높이는 가정학습지 시장을 장악하고 있었다. 우리는 학원시장 장악이 목표였다. 한성 수학 경시대회는 전국 지역별 총판이 주관하는 지역별 예선에서 선발되어야 서울 본선에 진출할 수 있었다. 본선 경기대회 결과는 당일날 발표했다. 대상은 과학기술부장관상과 중학 등록금을 장학금으로 수여했다. 또한 경시대회 공동 개최 양사의 대표상, 서울교육대학교 학장, 대한출판문화협회장, 학습자료협회장 등 관련 단체장이 함께 참여하여 동량지재들에게 상을 시상하고 격려해주었다. 우리는 사회 공헌에도 많은 노력을 아기지 않았다. 총판은 전국 52개 소로 확대했다. 서울도 직영체제에서 6개 권역으로 나눠 총판체제로 전환했다. 명실상부하게 전국 총판 조직 구축을 완료한 것이다. 응용수학 판매는 1,550만부(93년 현재)를 넘어서고 있었다. 한성스쿨 학원FC 회원 학원수도 2500여 개소로 증가했다. 매출도 100억을 육박하고, 직원도 100명 가까이 늘어나고 있었다.

나는 포항총판에 자주 출장을 나갔다. 한번은 길거리에서 깎듯이 인사하는 학생을 보고 ‘누구냐고 물었더니’ 경시대회에서 ‘대상을 수상’한 포항서초등학교 아무개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매우 보람있게 생각한 날이었다. 한때 초등부 학원FC 시장 점유율 1위를 달렸던 왕수학 출판사 사장은 서울교대 수학경시대회 지도교사였다. ‘소위’ 잘 나가던 출판사 10여 명의 CEO들이 스터디를 겸한 친목모임을 한 바 있다. 그 자리에서 자신은 전국 모든 경시대회에 입상을 휩쓸고 다녔지만 한성수학 경시대회에서만 유일하게 입상을 못했다고 푸념을 내놓은 적도 있었다. 우리는 국내 여타 다른 경시대회와는 달리 오직 실력 경기만을 했다고 자부한다. 국내 최초로 진출한 한성스쿨 학원FC는 처음 오프라인 디스켓(diskette컴퓨터의 외부 기억장치) 학습방식하에서는 순항하고 있었다. 전국 순회 이벤트 호응도와 함께 비교적 성공적 런칭이었다. 하지만 우리는 시장 선점을 위해 빨리 보여주고 앞서 갈려고 온오프라인 과정을 건너 뛰고 바로 온라인 학습시스템으로 전환을 서둘렀다. 그러나 데이콤전산망 온라인 연결에 따른 급격한 변화로 인하여 용량 초과 등 시스템 오류가 빈번하게 발생했다. 개인별 진단학습결과 분석용 파이그래프 하나 만드는데 기술자에게 하룻밤 작업하는 데에 2백 만원 지급 등 예측할 수 없는 긴장 상태가 계속되었다. 결국은 기술자들의 연습장이 되어 버렸다는 전문가들의 혹평이 뒤따랐다. 급격한 변화는 무리수가 따르기 마련이다. 경영자가 주관할 수 없는 일이나 경험하지 않은 모르는 길을 가는 것은 시행착오의 출발점이 된다. 개발자를 잘 만나야 한다. 한성 응용수학은 학원 단순계산 방식의 학습으로 평가받았던 주산교육을 사라지게 했던 교육자료 보급에 크게 이바지 했다. 국내 최초 초등부 영역별 수학, 학원FC 시장 진출, 개인별 수학학력진단․평가․대책 학습 시스템까지 최초가 붙어다니는 회사로 각인되기 시작했고, 앞서가는 회사로 자리매김하기 시작했다. 이 무렵 나는 전국 어디를 가든지 “떳다! 떳다! 비행기 멀리 멀리 날아라. 우리 비행기 날아라” 를 부르고 다녔다. 마치 세계를 강타하고 있는 ‘핑크퐁’처럼 누구를 만나든지 동요를 회사 사가처럼 함께 불렸다. 회사는 하이맥스 한성스쿨 브랜드 활성를 위해 mbc간판 프로그램 여성시대, 동아일보 전면 광고 등 홍보도 강화했다. 최초 문예지 사보도 발간하고 만물박사 고(故) 조경철 선생 최초 인터뷰도 실었다. 급격한 변화는 위기를 자초할 뿐이다. 최초라는 자부심에 지나치게 매몰되고 안전 장치없는 지나친 공격경영은 치명적 위기에 내몰려 무너질 수 밖에 없다. 반드시 단계적 성장 로드맵을 준비해야 위기가 와도 흔들리지 않는다. 힘을 완전히 키울때까지는 힘을 분산시키지 말고 선택과 집중해야 한다.

선택과 집중한 응용수학 성과는 최고의 실적을 내고 있었다. 경시대회도 성황리에 잘 진행되고 한성 브래드 파워도 높아지고 있었다. 학원시장 장악 목표로 동시 추진한 학원FC 진출도 성공적인 듯 보였다. 하지만 오프라인 방식에서 온라인 학습으로 전환하고자 하는 시스템 개발만은 답보를 거듭하고 있었다. 한꺼번에 성취하려는 조급증 내고 과욕을 부린 결과일 뿐이었다. 누구도 해 보지 않은 제품을 개발하는 프로젝트는 필연적으로 실패할 가능성이 높다. 불가능하다고 판단되면 과감하게 중단하는 결단을 내려야 한다. 과욕은 자만을 불러온다. 단계적 성장 로드맵을 세워 차근차근 달성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주)한성문화는 대외적으로는 전성기를 구가하면서 탄탄대로를 달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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