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자식에게 줄 책’을 만든다는 설립 이념을 목표로 출발했다. 우리는 ‘학생에게 실력을, 교사에게 보람을, 부모에게 만족을. 국가에는 인재를’ 이라는 슬로건을 앞세웠다. 당시 출판은 허가 사항이어서 등록이 쉽지 않았다. 초기엔 ‘만남’이라는 출판사를 일시 대여형태로 공유했다. 출판에 입문하게 해주신 인연에 감사하고 있다. 출판 등록과 함께 처음 출발한 한국교육진흥연구소 기획․연구 기능은 그대로 두고 학습참고서 제작․유통 전문 (주)한성문화 법인을 설립했다. 시간이 흐르면서 그동안 차곡차곡 모인 마스터 인쇄 프린터물은 32쪽 짜리 책으로 묶어 월간 단위로 세상에 내보냈다. 책으로 출간되자 그 진가는 유감없이 발휘하기 시작했다. 초등부 학원가에 1750만부 판매신화를 쓴 응용수학(산수)이다.
우리 응용수학이 짧은 시간에 성공하게 된 배경은 3대 요인을 들 수 있다. 첫째, 나는 문제를 빨리빨리 이해하고, 파악하는 직관력이 뛰어났다. 둘째, 시장 흐름을 읽어내는 통찰력과 제품 기획력을 겸비했다. 셋째, 현장에서 직접 진두지휘할 만큼 열정적인 추진력과 실행력을 갖고 있었다. 무엇보다도 조직 구성원과 함께 학원 수학교육이 활성화되는 타이밍이 잘 맞아 떨어졌다고 할 수있다. 우리가 책으로 펴내기 시작하면서 사업은 빠른 속도로 성장해나갔다. 나는 학원시장 장악이라는 야심찬 목표가 있어 조직도 강화하기 시작했다. 성공적인 추진을 위해 대학 동기를 전산학습시스템 개발본부장을 겸한 부사장으로, 평소 눈여겨 봐든 고교 동문 영주지사장을 영업본부장으로 스카웃트하여 진용을 구축하고 전담토록 했다. 두 사람 모두 능력이나 인간적면에서나 휼륭한 인품과 진정한 참모 역할을 톡톡히 해낸 사람들이다. 여기서 나는 ‘남자는 자기를 인정해 준 사람에게 목숨을 바친다’는 그 유명한 이야기를 듣기도 했다. 권한은 완전 위임하고 관리만 하는 것을 권장한다. 책이 출간하면서 유통방식도 직접 발송에서 지방은 총판체제로 서울은 직영체제로 전환했다. 전국에 32개 지방 총판 조직을 직접 발로뛰면서 구축하고 판매를 증대시켜 나갔다. 서울지역은 차량 30여 대로 본사가 학원에 직접 공급했다. 책은 100% 현금 결제로 이루어졌다. 우리 응용수학은 서울지역 초등부 학원교재의 약 63%를 장악했다. 회사 규모가 커지면서 가까운 대방동에 창고를 얻어 방문 출고도 겸했다. 작업중에 직원들이 책 위에 않는 것을 금지했을 만큼 책을 사랑하고 소중히 여겼다. 총판장들은 대부분 우리와 거래를 하던 지역의 규모있는 학원장들이었다. 그들과 자주 만나 유대를 강화하고 인간적 신뢰도 꾸준히 쌓아 나갔다. 나아가 우리 자녀 어떻게 교육시킬 것인가? 라는 주제를 갖고 학부모를 대상으로 전국 세미나도 개최했다. 전국의 학원 교강사에게는 ‘학원 교육 실태와 향후 전망’이라는 주제를 갖고 간담화와 세미나를 동시에 실시하면서 전국의 현장을 누비고 다녔다.
나의 추진력이 유감없이 발휘되던 시대였다. 현장에서 수시로 업무지시를 내리고, 교재 출간을 앞둔 시점에서도 현장 의견이 제대로 반영이 되어 있지 않다고 판단되면 원고 탈고를 완전 뒤집기도 했다. 회사 성장속도는 매우 빨랐다. 회사는 3년차 부터 관리가 성장을 못따라 갈 정도로 급성장했다. 신문 용지 30만원으로 출발한 회사는 수억원을 결제하기에 이르렀다. 사업은 본 괘도에 오르면서 임대료 7만원 지급이 벅찼던 나는 3년차 부터 월평균 3억이 넘는 수입으로 짧은 시간에 많은 부를 이루었다. 나중에 깨달았지만 회사가 급성장 하는 경우 경영관리가 매우 중요함을 절감하였다. 출장길엔 93년도 대전 엑스포가 개최되었던 시절에 알게 된 ‘구즉묵마을’에 들러 지역 특산물인 ‘도토리묵’을 사무실까지 직접 공수하여 동료애를 다졌다. 지방 출장을 3~4일 다녀 오면 사무실의 변화된 모습을 한 눈에 느낄 수 있을 만큼 급성장하는 모습을 보곤 했다. 학원전문 출판사로서 독보적 존재가 되어 전성기를 구가했다. 전국 총판 가족들을 배려하고 관리에도 소홀함이 없도록 노력했다. 전국 총판장 발전 전략회의를 정기적으로 개최함은 물론 매년 하계 직원 단합대회를 실시했다. 동계는 매년 연말 서울,대전,제주도를 비롯하여 특급호텔에서 부부동반 위로회를 개최하고 실적이 좋은 총판은 직원과 함께 시상식을 가졌다. 나는 초등 수학 학원교육이 활성화 될 것이라고 예상한 바 있다. 시장의 흐름을 잘 읽어내던 나의 통찰력은 시간이 지나면서 그대로 적중했다. 속셈학원은 우후죽순처럼 생겨났고 세계 최고의 교육열을 자랑하듯이 대부분 어린아이들이 학원으로 몰려왔다. 어른들의 여름 휴가는 ‘학원방학 일정에 맞춘다’는 말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명문대 출신 인재들이 대거 학원으로 몰려들기 시작하면서 1타 강사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한국을 방문한 오바마 대통령은 우리나라 교육열에 대해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학원전문 경쟁업체들도 하나 둘씩 생겨나고 있었다. 규모있는 국내 유수의 당시 국내 메이저급 학습 출판사들도 관망하다가 학원 시장에 진입하기 시작했다. 경쟁자들도 우리 한성의 괄목할만한 성장을 눈여겨 보기 시작했다. 현재 국내 최고 영향력을 갖고 있는 C출판사 회장은 우리 출판계에 ‘무서운 아이’가 하나 커 온다고 공공연히 말할 정도였다.
프린터물로 시작된 응용수학은 최단기 8년 만에 과외금지를 뚫고 마침내 1,750만부 판매 신화를 쓰면서 초등부 학원가를 석권했다. 학원 정리후 힘겨운 시간을 뒤로 하고 출판으로 우뚝섰다. 우리 응용수학은 미력하나마 학원 수학교육 발전에도 기여하고 단초 역할을 했다는 자부심을 갖게 됐다. 사업은 목표가 분명해야 성공할 수 있다. 목표달성 후엔 어떻게 하겠다는 단계적 성장로드맵까지 반드시 서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흔들리게 된다. 사업 자금은 아예 없이 출발하면 근성이 생긴다. 하지만 자금은 충분하게 확보해서 출발하는 것이 좋다. 제품의 시장성만 있으면 얼마든지 자금 조달처는 다양해졌다. 승부 시점은 3년 정도로 너무 길게 잡지 않는 것이 좋다. 성공하는 사람들의 공통점이다. 나의 도전은 성공적이었다. 우리 한성은 가을철 수학경시대회와 국내 최초 초등부 학원 Franchise(FC) 시장 런칭 준비도 마쳐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