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과 중학교 사이에는 기다란 철길이 놓여 있었다.수업을 마치고 나오면 친구들과 나는 어김없이 그 길로 향했다. 모르는 사람이 본다면 “왜 굳이 기찻길로 가?” 하고 의아해하겠지만, 우리 또래에게는 흔한 풍경이었다. 육교가 있긴 했지만 멀리 돌아가야 했고, 높은 계단을 오르내리는 일은 고역이었다.
무엇보다 이제 나는 “기찻길로 다니면 안 된다!“는 어른들의 당부를 일부러 거슬러 듣는, 막 중학교에 입학한 1학년이었다.
화창한 어느 봄날,
늘 푸른빛만 켜져 있던 선로 위 신호등이 그날은 차갑게 붉은빛을 내뿜고 있었다.
“야, 빨간불이야! 건너면 안 돼!”
나는 먼저 달려가던 친구들에게 소리쳤다. 그러나 녀석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성큼성큼 건너가 버렸다.
선로 위에는 나 혼자만 남았다.
'빨간불이니까 건너면 안 돼.'
스스로에게 다짐했다.
그 순간, 멀리서 쇠바퀴가 선로를 긁어대는 소리가 들려왔다.
모습을 드러낸 것은 깍쟁이 같은 새마을호, 우리 마을에는 서지도 않는 세상에서 가장 빠른 기차였다. (정차하는 건 늘 비둘기호 통일호뿐이었다.)
나는 선로 바로 옆에 가만히 섰다.
그때 나는 우등생도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바보도 아니었다. 다만... ‘기차는 선로 안으로만 달리는 만화 속 장난감 같을 것’이라고 착각했을 뿐이었다. 기차의 몸통이 바퀴보다 훨씬 바깥으로 튀어나와 있다는 사실조차 몰랐다.
경적 소리가 대지를 울렸다.
순간, ‘내가 뭘 잘못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무섭고 귀가 아파서 고개를 홱 돌려버리고 두 손으로 귀를 막았다.
거대한 바람이 나를 삼켰다.
퍽!
순식간에 기차의 괴물 같은 얼굴이 내 왼팔을 치고 지나갔다. 몸은 허공을 가르며 날았고 이내 언덕 아래로 굴러 떨어졌다.
새 책가방과 새 책들도 함께 날았다. (육교에서 이 장면을 지켜보던 학생들 말로는, 그때 하얀 종이들이 새떼처럼 하늘에 흩날렸다고 한다.)
거친 브레이크 소리를 내며, 세상에서 가장 빠른 기차가 우리 마을 한복판에서 멈춰 섰다.
기관사 아저씨가 뛰어내려 나를 향해 달려왔다.
기찻길에서 놀았다고 혼날까 봐 겁이 났다. 그런데 기관사 아저씨는 나를 보자마자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다급히 119를 불렀다.
친구들이 달려왔다.
“야, 괜찮나?”
나는 대답이 멋쩍어 고개를 돌리며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책가방과 책들이 여기저기 나뒹굴고 있었다. '주워야지.' 그렇게 생각하며 몸을 일으키려는 순간, 나를 뚫어지게 살피던 한 녀석이 손으로 입을 틀어막더니 비명을 질렀다.
“피… 피난다!”
찢어진 옷 사이로 아기 주먹만 한 살점이 매달린 채 피가 뚝뚝 흘렀다.
난생처음 구급차를 탔고 병원에 도착해서 바로 수술을 받았다.
의사 선생님은 “구사일생”이라는 말을 했다. 보통 사람들은 기차에 치이면 기차가 만들어내는 강한 공기 압력 때문에 몸이 선로 안쪽으로 빨려 들어간다고 했다. 하지만 나는 달랐다. 기차가 내 팔을 치는 순간, 오히려 그 충격이 몸을 바깥쪽으로 튕겨내 살 수 있었던 거다.
병원에서 엄마는 나를 보자마자 대성통곡했다. 기차에 치였다는 연락만 받아서 내가 죽은 줄로만 알았다고 말했다.
“엄마, 나 바나나우유 먹고 싶어.”
평소 같으면 단호히 “안 돼.”라고 하셨을 엄마가, 그날은 눈물을 훔치며 곧바로 사다 주셨다.
바나나우유는 유난히 달콤했다. 평소엔 비싸다며 안 사주셨는데 병원에선 뭐든 허락되었다. '이게 웬 횡재람' 하는 생각이 드는 동시에, 엄마의 눈물 속에는 내가 미처 알지 못한 어른의 세계가 겹쳐 있었다. 어른과 아이의 세계는 색깔도 깊이도 완전히 달랐다.
담임 선생님과 몇몇 친구들이 병문안을 왔다.
“살아서 다행이다…”
얼마나 울었을까 커다란 눈이 퉁퉁 부어 벌겋다.
그 한마디가 내 마음을 흔들었다.
그 사고는 나에게 처음으로 ‘내 존재의 소중함’을 깨닫게 해 주었다.
목숨을 걸고 확인한 존재감은 소문으로 더 커져갔다.
기차랑 한 판 뜬 아이, 새마을호 세운 아이, 새마을호에 치여 죽었다 살아난 아이라는 헛소문까지...
오랜 세월은 소문을 지워냈다.
그러나 그날이 남긴 나뭇잎 같은 흉터는 여전히 내 팔 위에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