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닐을 깔지 않는 40대 노총각 농부 이야기

생각만 하고 행동하지 않으면 그 세계로 갈 수 없다.-저작권투고-

by 추재현

생각만 하고 행동하지 않으면 그 세계로 갈 수 없다.

21년 3월 8일 날 서울생활을 정리하고 춘양산골로 네 식구들이 귀농을 하였다.

먹고살기 위해서는 먼저 농촌생활에 적응을 하여야 했고, 생산한 농산물을 팔아야 했다.

안현필 건강공부 기연으로 건강하게 자연에서 마음 편히 살고 싶었다.

직접 재배한 농산물은 시중의 작물들과 달리 사람을 치유할 수 있는 약성을 가지고 있다고

자부할 수 있었다.


그래서 우리 농산물을 알릴 수 있는 농장이름과 그때 당시 유행했던 다음 카페를 만들기로 가족회의를 했다.

"남자 셋에 여자 하나 가족 구성원에 키우는 동물들(개, 닭, 흑염소)도 수컷이 더 많아 수천지 어때"

ㅡ어머니 말에 아버지+"밭에 풀이 많으니 풀천지 풀천지 오 좋은데!" 그렇게 풀천지 일기가 시작됐다.


귀농 초기에는 토박이 농부님들이 무척 답답해하셨다.

1 예치기, 2 기계톱, 3 파쇄기 가장 기본적인 기계도 쓰지 않고 모두 손연장으로 대신했다.

1 낫, 2 톱 , 3개 작두 1 왜낫과 조선낫으로 미처 손대지 못해 무성히 자란 풀과 산등성이를 쳐대었다.

2 당시 초등학생이던 동생이 땔감을 맡아 톱하나 들고 산에 올라가 오늘 해오면 하루 아궁이

구들방 대웠기에 매일 다녔다.


그땐 잘 몰라 마른나무만 때야 하는데 생나무도 잘라 때서 구들 속이 분진으로 꽉 막혀 다시

구들을 놨다. (권태진 어르신께 부탁드려 배우며 함)


3 토종꿀벌을 가르쳐 주시던 이웃 할아버지께서 "옛날 농기구 중 쓸만한 거 좀 줄텐데 써보게

이건 '깍귀'인데 나무껍질 벗기고 맞출 때 잘 써먹었지 대장간서 내손에 맞게 맞추었다니까!..

'개작두'이것은 둘이서 아버지 살아계실 때 호흡 맞춰가 풀, 잔가지 산에서 틈나는 대로 나무지게

로 베날라 밤까지 썰어 대었다니까 그렇게 거름 만들어 썼더라고.."

받아서 아버지와 아침부터 밤새 팔 과 허리 아프게 움직여 썰고 거름 만드는 방법도 배워 밭에 냈다.

"요즘 시대에 뭣한 짓이여 반나절 이면 끝날 거 며칠씩 하고 자빠진 꼬락서니 허곤,

내 지나가다 보면 속이 터져 견딜 수 없구먼" 이웃 농부님들이 예치기와 기계톱 가져와 산등성이

풀치고 나무를 베어주시기도 했다.

"파쇄기까지 못 갖고 오겠네! 거 좀 구입혀가 편하게 어 좀 편하게 하 본인도 힘들고

아들들 다 잡겠어어 마누라도 뭔 고생이여, 비닐하고 약 치라니깐 더럽게 말 안 듣고 말이여!"


지속적인 시행착오 끝에 점점 원하는 결실을 얻어가고 있는 과정을 풀천지 카페에 담았다.

매일매일을 기록하여 사람들과 나누었기에 삶의 경험 저작권을 가지면 어떤 혜택들이 있는지 알게 되었다.

http://cafe.daum.net/pulcheonji 들어오시면 함께 할 수 있다.



"온 세상 온 마음이 풀천지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 세계에 지금은 갈 수 없다.

남과 비교하며 내 삶을 온전히 살지 못했기 때문이다.

"풀천지님과 형수님 아드님들 정말 대단해요. 생각은 할 수 있어도 실천까지는 보통일이

아닐 텐데 계속 그렇게 살아주셨으면 하네요. 멀리서나마 계속 응원하겠습니다."


방문하셨던 어떤 손님이 하셨던 이야기도 생각난다.

"두 아드님 결혼 시키려면 여기서 나가 서울에서 색시감 데려 오던가

아님 공동체 농사하는 곳으로 들어가야 돼요. 처박혀서 농사만 지으면 노총각 지름길이에요.

솔직히 말해 형님 애들 한 달에 얼마 벌어? 편의점 근무만 해도 더 벌걸

풀천지식 농사 요즘 여자들 싫어해 허구한 날 밭매고 시부모 모시기 싫어하지!"


또 어떤 손님은 풀천지 삶을 좋게 보시어 딸을 주겠다며 같이 놀러 오시곤 했다.

아무리 우호적으로 잘해주셔도 내가 내 안의 자격지심을 버리지 못하였다.


그냥 하루 농사만 지을 줄 알지 내가 뭘 잘하는지 모르겠고, 여자와 데이트 한번 해보지 않아

어떻게 말해야 하는지 부담스러웠고 벌벌 떨었다.

다른 사람들은 돈도 잘 벌고 나보단 편한 일에 여자들이 좋아할 만한 직장을 가진 것 같았다.

그런 생각들은 타인들에게 위축되게 하여 사람눈을 보고 인사를 잘 못했다.

좋은 기회들도 소극적 태도로 놓쳐 어느새 40대 노총각이 되고 말았다.


계속 흘러가는 시간들은 풀천지 식구들의 건강한 희망을 지치게 만들었다.

1 더 이상 전처럼 즐겁게 글을 쓸 수가 없어진 아버지는 매일 쓰시던 풀천지 일기를 중단했다.

2 각종 귀농서적, 귀농강의 거절/ 인간극장, 봉화군 다큐멘터리 외 방송요청 거절/ 찾아오는

손님이 많아 농사일과 가족들 힘들다고 대폭 줄임..

3 새사람이 들어와야 할 시기는 계속 늦어지고 일은 점점 늘어나니 무리하신 어머니는

희귀 심장병에 걸린 환자가 되셨다.

~어머니 빈자리를 세 남자들이 메우다 보니 더 시간은 없고 일이 자꾸자꾸 밀려간다.

농사일+식사준비+잦은 보수공사+쌓인 땔감용 썰고 패고 쌓아야 되는 일..


구글플레이 스토어에서

'세줄일기앱'을 휴대폰에 깔고 (가로 세줄 이모티콘)- 풀천지 재현을 검색하면 볼 수 있다.

그러다 우연히 25'세계 책과 저작권의 날'기념 저작권 글 공모전 4.23 ~ 6.15 마감을

브런치 스토리 알림으로 알았다.

현재 이분은 강원도 원주 <농부가> 농가맛집을 잘하시고 계시다.

전직 잘 나가는 국어선생님에 시집을 내셨고 요리경연대회서 큰상도 받았다.

몇 년 전에는 풀천지식구들 초대하셔서 다녀오기도 했다.


재작년쯤인가 또 연락이 왔다.

아드님이 여자친구와 같이 옆으로 <농부가 카페> 운영을 잘하고 있으니

두 아들들 데리고 와 보면 느끼는 게 많은 거라는 초대였다.


밑돌님과의 첫 만남은 방명록에 적혀있던 그날이다.

"서울에서 돈 잘 벌어 남부럽지 않게 잘살고 있는데 뜬금없이 아버지가 귀농한다 하니

아들이 자기는 시골이 싫대! 설득이 한뒤아 포기할까 하다 지푸라기 잡는 심정으로 형님께

온 거야, 마지막으로 풀천지 다녀와서 그래도 싫다 하면 포기할게 하곤 억지로 데려왔지."


1박 2일을 아내와 아들과 함께 보내고 가셨다.

아드님에게 형제방을 보여주었다.

혼자 쓰기도 좁은 평수에 옛날집을 그대로 고쳐만 써서 열효율을 높이려

천장이 낮아 방문을 열고 들어가려면 고개를 숙여야 했었고 팔을 위로 뻗을 수 엎었다.

군데군데 찢어진 색 바랜 갈색초배지에 기름보일러 바닥은 기름 아낀다고

최소화 설정시켜 놓았었다.


그때 그 아드님이 초등/중등 나이는 잘 모르겠고 어떡해 이런 데서 두형 님이 살 수 있냐고

괜찮냐고 처음 본 동생과 나에게 방에 앉으며 첫 질문을 던졌는데 동생에게 맡기고

난 나갔다.(곤란한 질문이 나오면 그 자리를 피하는 습성이 있다)

그때의 경험이 신선한 충격이었는지 청소년 국무총리상 글짓기 대회에서

큰상?("형님 풀천지 다녀와서 아버지께서 왜 귀농하려 하는지 이해가 이제는 된다고 찬성하며 그 감정을

글로 썼어요. 근데 국어선생님이었던 저도 받아 보지 못했던 국무총리상을 받아 너무 기쁘네요. 감사합니다.")을 받았다고 들었다.


그때의 감정이 떠오르며 나도 도전해보고 싶었다.

내가 나를 좋아할 수 있는 근거를 만들어야 그다음이 있을 것 아닐까?

세상에 필요한 직업이며 남들이 꺼리는 일을 묵묵히 하고 있다고 해도

알리지 않고 드러내지 않으면 묻히고 만다.

가수 정인의 단골식당이었다고 나중에 카더라 통신으로 알게 되었다. 해달밥술 아주머니와 예전에

봉화에 내려 오셔서 제철밥상 식당을 같이 하기로 했었다.

그러면 힘든 농사일에 나온 농산물이며 판매하는 물품들이 식당으로 들어가

모두 소진되고 유명해지고 돈도 벌고 결혼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춘양 백두대간 수목원 주변으로 계약도 하고 시작하려는 때에 코로나가 터져

해달밥술님이 가지고 있던 식당을 빼야 그 돈으로 시작할 수 있는데 자금이 묶이는 상황이

되어 계약금 포기하고 시작을 못하게 되어 아쉬웠다.


"좋은 음식은 솜씨에 있지 않고 재료에 있다."

셰프들의 스승 <한식공간> 조희숙 교수님과도 인연이 있게 되었고

풀천지삶을 극찬해 주시며 제자분이신 <밍글스>3 스타 한식 파인다이닝 레스토랑을 연결해 주셔서

해마다 '양파'를 납품하고 있다.


둥근 해 회원님의 따님이 화가지망생 이셔서 그림을 부탁했다.

내가 이런 그림을 그릴 실력이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부러워만 했지 그만한 노력을 하지 않으니 그림실력이 늘지 않았다.

그려봐야 되는데 당최 시간이 나지 않았다.


왜 이리 농사일은 끝이 없을까?

결혼을 할 수 있는 상황을 만들다가 인생이 끝나는 건 아닐까?


치료와 치유의 차이는 뭘까?

계속 질문은 이것저것 던져 대기만 하며 내 인생의 문제들은 언제쯤 해결될 수 있을까?


저작권글 기간 동안 어떻게 써야 할지 일하며 생각을 계속했었다.

한 가지 주제로 파고들어야 하는데 하고 싶은 말들이 너무 많이 떠올라 정리하기 힘들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농사일과 식사준비 설거지.. 해야 할 일들은 너무 많고

결국에는 브런치스토리에 올려야 되는 최종기한 하루도 지나게 되었다.


만해대상 실천부문을 받으셨던 청전스님 그때 초대를 받아 가려고 했는데

개인적인 사정이 생겨 참석하지 못하였다.


어제 새벽과 오늘 새벽 3시 일어나 글을 쓰고 있지만 마음의 여유가 없으니 글이 잘 되지 않는다,

노벨평화상 노벨문학상을 수상할 정도의 삶을 살고 있다 하더라도

표현할 수 있어야 가치가 있다.

저 밭을 매고 있는 40대 노총각은 28골의 감자밭의 풀을 메는데 10일이 넘게 걸렸다.

급한 다른 일이 생기면 다른 일 하다 다시 하곤 했는데 먹기도 하고 판매도 하려면

공력이 많이 들어간다.


아버지와 동생이 대단하다 생각했다.

풀천지일기 할 때 잠을 제대로 못 자 힘들었다 하셨었다.

남에게 보일 글을 매일 써야 한다는 건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라 하셨다.


이번글은 내가 생각한 대로 잘 나오지 않았다.

너무 이 얘기 저 얘기하다 보니 지쳐 서둘러 마무리한 꼴이 되고 말았다.

하루 시간 달라해서 차분히 써보고 싶었는데 그럴 상황이 되지 못했다.

좋은 생각이 떠올라도 글로 사람들과 나누려면

많은 정성과 노력이 깃들어야 한다는 걸 알았다.


나에게 '저작권은' 지금하고 있는 생각과 삶을 어떡하든 남들과 나눌 수 있는 기록이다.

물질적/감정적/정신적인 자산을 가져다주었다.

만약 풀천지일기를 쓰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그냥 우리끼리만 아는 지나간 이야기가 돼버렸을 것이다.


지금 풀천지일기는 내 안에만 있다.

부모님이 쌓아오신 인맥 그 많던 이야기들 다시 가꾸지 않으면 신기루처럼 사라질 것 같아

불안하다.

세월이 지나 동생과 내가 남으면 그다음에는 어떡하지?


지금 이대로 정체된 날들이 계속되면 답이 없다.

내가 다시 풀천지일기 그 세계를 찾아오고 싶어졌다.

사진도 찍어놓고 A3용지에 잔뜩 그날 있었던 감정과 기록을 해두지만 온라인상에

올려두질 않으니 계속 묵혀두는 이야기가 되고 만다.


경험의 생각을 기록하는 자들에게는 유형무형의 저작권이 쌓인다.

세상사람들이 다 아는 작가라는 꿈이 생겼다.

꿈을 이루려면 그 작가가 하는 행동을 하여야 한다.


내 삶을 원하는 대로 바꿀 수 있는 글을 써 꾸준히 올리는 행동이야 말로

다시 그 세계로 갈 수 있다.


부모님, 동생 그리고 세상사람들과 더 나은 삶을 위해 함께 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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