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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뤼미쌤 Oct 07. 2021

불안해 아니야 안전해

나는 자주 불안하다.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대부분 항상 불안하다. 불안이라는 감정은 어디서 비롯된 걸까? 나는 대체 무엇 때문에, 왜 이토록 불안하지?


정서심리학이라는 책에서 이런 구절을 찾아 읽은 적이 있다.

기분(mood)은 정서보다는 오래 지속하고 막연하며, 강도가 순한(mild) 것이다. 우리가 우울한 것은 물론 정서라고 부르기도 하지만 기분이라고 표현하는 경우가 더 많다. 우울한 기분은 많은 경우 그 원인을 잘 모를 수 있고 그리고 장기간 지속되는 경향이 있다. 그런 반면 정서는 지속 시간이 짧다. 부적 정서(즉 역겨움, 분노)가 정적 정서(기쁨, 열정)보다 더 오래 지속되는 경향이 있다. 정서와 기분을 구분하는 한 가지 방법은 정서는 그 원인이 있는 반면 기분은 그렇지가 않다. 즉, 공포, 분노의 경우 우리가 어떤 공포를 유발하는 자극이 있기 때문에 불안하고 두려워한다. 반면 기분은 뚜렷한 이유 없이 어떤 기분 상태에 빠질 수 있다(예컨대 불안, 우울 등).

-정서심리학(이훈구, 이은정 외)


그렇다. 나는 질문을 잘못 던져왔던 걸지도 모르겠다. 불안한 뚜렷한 이유가 없는데, 스스로에게 계속 왜 불안한지를 묻고 있으니 자연스레 드는 생각은 불안할 이유가 없는데 불안해 하는 내가 문제인가?로 이어질 수밖에.

우리가 흔히 하는 실수는 힘들 때 자꾸 질문하는 것이다. 뭐 때문에 힘들지? 아무리 생각해도 힘든 일이 없는데? 하고. 힘들고 불안할 때 그 이유를 찾으려는 이 습관적인 패턴은 그 이유를 제거하고 빨리 괜찮아지려는 기제일 것이다. 그런데 잘 생각해보면, 뚜렷한 이유가 있는 기분은 거의 없다. 그렇다면 기분의 이유를 찾으려고 하기 보다는 내 기분을 알아차리는 것이 더 중요한 게 아닐까.

“아, 내가 힘들구나.”

“내가 많이 불안하구나.”

“숨이 잘 안 쉬어지고 심장이 빨리 뛰고 어깨가 굳은 걸 보니 내가 긴장되고 불안하구나.” 와 같이.

불안함을 알아차리고 나면, 역설적이게도 덜 불안해진다. 불안함은 정체가 없는 모호함에서 더 커지기 마련이니까. 공포나 분노와 같은 강한 정서는 뚜렷한 이유가 있을 때가 많다. 나를 잡아먹을 수 있는 포식자가 나타났을 때 우리는 공포를 느끼고 강하게 각성되며 fight or flight의 순간을 마주하게 된다. 그러나 불안함은 예측불가능성에 자연스럽게 수반되는 기분인 것 같다. 그러니까 굳이 불안의 이유를 찾자면 “예측이 안 되는 상황”때문인 것이다. 이유 자체가 모호하니까 뚜렷한 이유가 없다고 말할 수 있는 걸테고 말이다.

학교 상담실에 앉아 있으면 불안하다. 누가 언제 들어올지 모르고, 어떤 일로 들어올지 모른다. 겉으로보기에는 아주 평온하고 평화롭게 앉아있다. 홀로 상담실에 앉아 밖의 상황을 모른채 그러나 언제든 위기와 위험이 들이닥칠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불안감에 휩싸여.

나는 내가 원래도 불안과 걱정이 많은 편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스스로를 소심하다고 설명하기도 하고 결정장애라고 칭할 때도 많았다. 그런데 이토록 예측불가능성이 극대화되는 학교상황을 마주하니 비로소 나라는 사람에 대해 더 이해하게 되었다. 나는 예측불가한 상황에서 극도로 불안해 하는 예민한 사람이다.  사실 학교에서 벌어지는 일들이 나의 생명과 목숨을 위협할 만큼 객관적으로 위험한 일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내가 위험하다고 지각하고 느끼며 불안해 한다는 사실이다. 같은 자극에 대해서 더 크게 불안한 건 나의 예민한 기질 때문일 수도 있고, 예상할 수는 없지만 나에게 오는 모든 일과 상황을 완벽히 다루고 처리해야 한다는 완벽주의적 사고때문일 수도 있다. 나는 내가 둔하면 둔했지 예민한 사람이라고는 생각해 본 적이 없지만, 이제야 비로소 나는 예민한 사람이라는 걸 받아들이게 된다. 예민하다는 건 ‘무엇인가를 느끼는 능력이나 분석하고 판단하는 능력이 뛰어나다’는 사전적 정의를 지니고 있다. 즉 그 의미상으로 나쁜 게 아니라는 거다. 하나의 특성이자 능력일 뿐. 우리 사회는 ‘예민함’에 대해 알게 모르게 부정적 프레임을 씌워온 경향이 있다. “뭐 그리 예민해~” “너가 너무 예민한 것 같은데?” 등등. 더군다나 사회의 인정에도 예민한 내가 스스로를 예민하다고 말하기란 참으로 어려운 일이었던 게 분명하다. 아무튼 나는 불안하고 예민하다.

반대로 말하면 나는 예측가능한 상황에서 안전감을 느낀다고도 할 수 있겠다. 그래서 바꿀 수 없는 학교의 예측불가능함 대신 작은 예측가능한 상황들을 하루 안에 틈틈이 끼워넣기로 했다. 이전 게시글에서 언급했지만 ‘아침 5분 일기’를 시작했고, 책을 읽기 시작했다. 아침에 내가 ‘어떻게 하면 더 좋은 하루를 보낼 수 있을까’라는 질문에 세 가지를 생각하고, 하루라는 시간 동안 그 세 가지를 어찌됐든 실천에 옮기고 돌아오면 안전하다고 느낀다. 뿌듯하거나 기쁘거나 한 게 아니라 안전하다는 느낌. 내가 내 하루를 통제할 수 있다는 안도감. 이게 더 정확한 느낌이다. 그리고 책을 조금씩 읽고 나에게 와닿는 구절에 서걱거리는 샤프심으로 밑줄을 친다. 그러면 차분해지고 마음이 울릴 때가 많다. 좋은 구절을 읽는 건 마음을 울리게 한다. 나조차도 아직 감정을 표현하는 데 서투르지만, 이건 울린다는 말이 맞는 것 같다. 둥-둥-하고 울리니까. 이 울림은 불안하고 긴장해서 심장이 빠르게 뛰는 울림과는 다른 종류의 울림이다. 비슷하지만 다르다. 더 낮은 소리로 더 느리게 울리는 것이다.

나는 안전하다. 자꾸 스스로에게 말해줘야겠다. 불안하지만, 안전하다. 나는 안전해.


성장이란 불안해하며 탐색하고 실행하며 이뤄내는 과정이다. 불안함과 함께한 성장은 결국 우리를 단단하게 만들어준다.

-기분이 태도가 되지 않게(레몬심리, 박영란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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