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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지킴이 Nov 28. 2023

2장 소녀가장. 아버지를 이해하고 싶다

아버지를 이해하고 싶다    

   

  수해를 겪고 복구를 하는 사이 아버지의 폭음이 다시 시작됐다. 병원에서 퇴원한 뒤부터 아버지는 매일 술을 마시지는 않았다. 술을 마시지 않고 수개월을 지낸 적도 있었다. 그러나 희한하게도 삼 년 주기로 아버지의 중독 증상은 재발했다. 중학교 2학년으로부터 정확히 삼 년만인 고등학교 2학년 가을 매일 술을 마시고 난폭해지는 증상이 다시 나타났다. 또다시 시작된 공포. 지겨운 밤의 술주정. 마치 악셀레이터를 밟고 운전하는 차량처럼 아버지는 폭주했다. 나는 차라리 아버지 증세가 빨리 악화되는 걸 바랐다. 증세가 약해서는 입원하기가 곤란했다. 이 정도도 못 견디나 싶어 내 마음이 떳떳하지도 않았다. 증상이 충분히 나빠져야 병원에서도 입원을 받아줄 것이고 내 마음도 편했다. ‘더 마셔라, 더 마셔라.’ 하는 마음이었다. 조금만 더 참으면 돼...

  한 달 정도 죽을 만큼 힘들어지자 나는 큰아버지께 전화를 드렸다. 아버지 상태를 설명하고 입원시켜 달라고 말씀드렸다. 아버지를 그냥 두어서는 안 되겠다고 판단한 큰아버지는 큰집 형부들을 보내 아버지를 입원시켰다. 아버지가 입원하는 모습을 나는 보지 못했다. 학교에서 돌아와 보니 아버지가 없었다. 이제 살았구나 싶었다. 앞으로 삼 개월은 천국을 맛볼 수 있는 시간이 될 것이었다. 아버지가 없는 시간은 아무 걱정할 것이 없었다. 생활비만 있으면 우리 삼 남매끼리 얼마든지 살 수 있었다. 우리 삶에서 아버지가 사라져 준다면 얼마나 좋을까. 버릴 수 없는 무거운 짐인 아버지, 이 짐을 언제까지 짊어지고 살아야 하는 것일까.

  얼마 후 처음으로 동생과 아버지를 면회하러 갔다. 용인정신병원. 찾아가기도 쉽지 않은 먼 곳이었다. 생전 처음 와보는 정신병원. 병원은 아주 넓은 부지에 자리하고 있었다. 뿌연 흙먼지가 날리는 시골길을 달려 버스를 내렸다. 주위로 논과 밭, 산들만 보였다. 인근에 주택이 별로 없었다. 

  면회를 온 사람들이 꽤 많았다. 환자들은 환자복 차림으로 병동 밖에 나와 있었다. 나와 동생은 면회 장소로 마련된 이층으로 된 건물로 들어갔다. 면회 장소는 간단한 과자나 음료수를 파는 역대합실 같은 분위기를 풍기는 공간이었다. 환자들이 여기저기 흩어져 가족들이 싸 온 음식을 먹으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나와 동생은 아버지에게 줄 것을 가져가지 않았다.

  잠시 후 아버지가 나타났다. 아버지는 우리가 온 것이 너무 반가워서 얼굴 가득 웃음을 띠고 성큼성큼 다가왔다. 바짝 말랐던 몸이 그사이 체중이 좀 불어 있었다. 초췌하던 얼굴빛도 한결 밝아져 있었다. 우리가 무슨 대화를 나눴는지 잘 기억나지 않는다. 병원이 지낼만한지 물어보았겠지. 아버지는 괜찮다고 대답했을 거고. 그러면서도 답답하다며 빨리 퇴원하고 싶다고 말했을 것이다. 우리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을 테고. 아버지는 우리가 어떻게 지내는지 물어보지 않았다. 자녀들 생각이 과연 아버지의 머리에 떠오르기나 했는지 모르겠다. 아버지는 어린애처럼 과자와 음료수 등 먹고 싶은 것을 사 달라고 했다. 

  햇살이 밝았던 날로 기억한다. 고등학생과 중학생이 면회를 온 것은 우리뿐이었다. 그런 현실이 너무나 기가 막혔다. 우리가 마흔이 넘은 아버지의 보호자라니...우리를 만나 약간 상기된 표정으로 혼자 이런저런 말을 하는 아버지를 바라보며 나와 동생은 침묵에 잠겼다. 면회 시간이 다 되었다. 아버지는 못내 아쉬워했다. “또 와라.” 아버지는 손을 흔들며 병동으로 사라져갔다. 

  여기까지 온 김에 의사를 만나고 가기로 했다. 그즈음 아버지를 이해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아버지는 왜 중독자가 된 것일까. 조울증이란 도대체 어떤 병일까. 이유라도 알 수 있다면 속이 시원할 것 같았다. 의사에게 직접 물어보면 뭔가 답을 해주겠지 싶었다. 나와 동생은 진료실 문을 열고 들어갔다. 젊은 남자 의사가 의자에 앉아 웬 학생들이 들어오지 싶은 눈으로 우리를 바라봤다. 

“허 성운 씨 자녀분들이세요?”

“네.”

“그래, 뭐가 궁금하세요?”

“저기... 아버지가 왜 아프신지 알고 싶어서요...”

뭐라고 질문을 해야 하는지 당황스러웠다. 의사는 무관심한 표정으로 아버지 병의 원인을 본인도 알 수 없다고 말했다. 그리고 무슨 이야기를 더 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뭘 더 물어봐야 할지 몰라서 서둘러 진료실을 빠져나왔던 것 같다. 의사조차 잘 모르는 병이라는 것도, 아버지를 치료하는 의사가 아버지에게 별 관심이 없는 듯한 인상을 주는 것도 너무나 실망스러웠다. 아버지의 병은 치료할 수 없다는 결론을 스스로 내렸다. 우리를 도와줄 사람은 이 세상에 아무도 없다는 결론도. 세상은 차갑고 냉혹한 곳이라는 내 믿음은 그날 또 하나의 증거를 얻었다. 믿을 건 나 자신뿐이었다. 세상은 나 혼자서 헤쳐나가야 하는 곳이었다.     

 

내게는 집이 없다     


  버스 종착지에서 집으로 돌아가는 길은 늘 어두웠다. 흐릿한 가로등만 겨우 길을 알아볼 정도로 밝혀져 있었다. 맞은 편에서 누가 오더라도 바로 가까이 다가오기 전에는 얼굴을 식별하기 힘들 정도였다. 그래도 당시에는 밤길이 무섭지 않았다. 낯선 이를 마주치는 일이 거의 없었기 때문이었다. 하루의 공부로 무거워진 머리를 식히며 나는 자주 공상에 빠졌다. 

  초등학생이었을 때 읽었던 『소공녀』의 새라 크루에게 일어났던 일이 내게도 일어난다면 얼마나 좋을까. 내 방문을 열면 새라의 방에 이웃 인도인이 일으킨 기적이 일어나 있다면. 창문에는 부드러운 색감의 커튼이 하늘거리고 방바닥에는 보드라운 매트가 깔려 있다면. 칙칙한 벽에 화사한 벽지가 발라져 있다면. 지퍼를 열어 사용하는 비키니 옷장 대신에 아담한 앤틱 옷장이 놓여 있다면. 벽에는 꽃이나 들판, 산이나 강을 그린 유화가 걸려있다면. 방 한구석에는 커다랗고 푹신한 느낌의 곰 인형이 앉아서 나를 맞이해 준다면. 경사진 바닥이 요술처럼 평평해져 있다면. 촉감이 너무 좋아 얼굴이 닿자마자 잠에 곯아떨어지는 베개가 머리맡에 놓여 있다면. 달랑 혼자 매달려 있는 전구 대신에 오렌지색 갓을 씌운 은은한 등이 내 방을 밝혀준다면. 지금 생각하면 소박한 공상이었지만 당시에는 현실로 이루어지기에는 너무 까마득한 꿈이었다. 

  나에게는 집이 없었다. 집이란 잠을 자고 밥을 먹는 곳이 아니었다. 차가운 세상으로부터 한기를 막아주는 포근한 곳이라야 했다. 나를 반겨주고 그날 있었던 일을 도란도란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이 있는 곳이라야 했다. 안정감과 안전, 보호받는 느낌을 주는 곳이라야 했다. 어떤 힘든 일이 있어도 위로받고 다시 힘을 얻을 수 있는 곳이라야 했다. 나에게 그런 집은 없었다. 그래서 나는 단지 물리적인 공간에 불과한 집에 들어가는 게 싫었다. 그래서일까. 지금도 나는 정신적으로 힘들어질 때마다 늘 집을 떠나고 싶어진다. 여전히 집을 찾지 못했다는 느낌, 어쩌면 이 세상에는 내 집이 없을지도 모른다는 느낌이 든다. 나는 진정한 집을 찾아 죽을 때까지 떠돌 운명인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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