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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지킴이 May 30. 2023

나는 코아였다. 알콜 중독자 자녀의 회고록

24화. 3장 코아에서 아코아로. 화재

화재      


  대학생이 되어 우리는 두 번 이사했다. 드디어 지하 아닌 지하에서 빠져나와 오랜만에 깔끔한 집에서 일 년을 살았다. 내 방은 햇볕도 잘 들어오고 무엇보다 바닥이 매끈한 리놀륨으로 깔려 있어서 전체적으로 산뜻한 느낌을 주었다. 고등학교 삼 년을 칙칙하고 컴컴한 곳에서 지내다 밝고 깨끗한 집으로 이사 와 처음에 얼마나 흥분이 되었는지 모른다. 내 방 한구석에는 시골에서 보낸 쌀가마니가 놓여 있었는데, 덕분에 종종 쥐 한 마리가 방을 드나들었다. 그래도 나는 별로 상관하지 않았다. 새라 크루의 방에는 비교할 수 없었어도 그 정도면 나로서는 대만족이었다.

 일 년을 지내고 근처에 있는 빌라로 다시 이사했다. 아무래도 아버지 때문에 전세 기간을 연장해 줄 수 없었던 것 같다. 주인이 방 두 개를 쓰고 우리가 방 두 개를 썼다. 그전 집만은 못했지만 그래도 이층이어서 이제는 영원히 지하를 벗어났다는 생각이 들었다. 주인집 아주머니는 내가 부엌에서 무언가 만들고 있을 때 자주 다가와 이야기를 걸었다. 대학생이 되어서인지 이제 주인집 아주머니와도 말을 트고 대화 상대가 되는 기분이었다. 주인집 아저씨는 늘 민소매 런닝에 긴 속바지를 입고 다녔다. 거실은 그저 통로 역할만 했기 때문에, 아저씨를 마주치면 고개만 까딱하고 얼른 방으로 들어가곤 했다.

  기숙에게 전화를 건 후 빌라 정문을 통과하여 집 쪽으로 향하는데 “누나!”하는 소리가 어둠 속에서 들렸다. 동생이 밖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왜 여기 있어? 무슨 일 있어?” 그 시각에 동생이 밖에서 나를 기다린다는 건 뭔가 집에 일이 생겼다는 뜻이었다.

“큰일 났어. 집에 불났어.”

“뭐???”

나는 귀를 의심했다. 불이라니?

“언제? 어떻게? 누구 다쳤어?”

“아니, 다친 사람은 없어. 아까 저녁에 불나서 소방서에서 왔다 갔어. 안방이 다 탔어.”

“아버지는?”

“괜찮아.”

“휴.” 그나마 다행이었다.

“어떻게 된 건데?”

“아버지 말로는 안방에 불이 나서 바로 밖으로 도망쳤다는데. 소방서에서는 전기가 누전된 것 같대.”

“알았어. 빨리 가보자.”

  일단 내 눈으로 뭐가 어떻게 된 건지 확인해야 했다. 밖에서 보았을 때는 집에 아무 일도 없는 것 같았다. 다른 집까지 불이 번지지 않은 것만도 천만다행이었다. 집 문을 여니 탄내가 진동했다. 아니 오늘 이게 뭔 일이야. 최루 가스를 실컷 마시고 왔더니 집에서는 불이 나고. 거실 벽과 천장에 검은 그을음이 음울하게 들러붙어 있었다. 거실의 등이 꺼져 촛불을 켜 놓았다. 우리 집 안방은 완전히 다 타버린 게 보였다. 다행히 주인집 방과 내 방은 무사했다. 아무것도 남지 않은 안방의 시커먼 어둠을 들여다보고 있자니 기가 막혔다.

  주인집 아주머니가 나에게 무슨 말인가를 하는데 하나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일단 주인이 방 하나를 내 주어 아버지와 동생들이 그 방에서 당분간 생활하기로 했다. 내 방에 들어가 보니 책꽂이에 꽂아둔 책들과 노트들의 표지가 전부 검게 그을어 있었다. 열어보니 안은 멀쩡했다. 고등학교 때 수해가 나서 책과 노트를 다 버렸던 기억이 났다. 특히 아까웠던 일기들. 대학생이 되어 나는 다시 일기를 쓰기 시작했는데 벌써 두툼한 노트로 몇 권이 되었다. 그 일기도 겉만 그을었고 속은 괜찮았다. 나의 보물 1호였기에 일기가 살아남은 것만으로도 감사했다.

  아버지에게 어떻게 된 거냐고 물으니 횡설수설하고 도무지 어떻게 된 건지 알 수 없었다. 불이 날 당시 집에는 아버지 혼자 있었다고 했다. 화재의 진원지는 우리 집 안방이었으니 나는 원인을 짐작할 만했다. 골초였던 아버지가 담배를 피우다 실수로 이불에 불똥이 튀었을 가능성이 가장 컸다. 화재의 원인은 결국 밝혀지지 않았다. 내 방에 누워 천장을 바라보고 있노라니 그제야 두 눈에 눈물이 주르르 흘렀다. 낮에 있었던 시위 현장은 꿈결과 같이 느껴지고 우리 집에 일어난 이 사건을 앞으로 어떻게 수습해야 할지 아무런 생각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럴 때마다 나는 늘 잠을 도피처로 삼았다. 도저히 뭘 어찌해야 할지 모를 때 무조건 아무 생각 없이 잠을 잤다. 어떻게든 되겠지, 더한 일도 겪었는데 뭐. 그럴 때면 오히려 내 속에서 알 수 없는 오기가 발동했다. 자꾸만 나에게 시비를 걸고 못살게 구는 불운에 대고 해볼 테면 해봐라, 내가 지나, 그런 말을 퍼붓고 싶었다.

  다음날 주인집 아주머니는 내게 거실과 부엌을 수리해야 하니 수리비를 물어내라고 했다.

“얼마나 들까요?” 물으니 수백만 원이라고 말했다. 아주머니의 표정은 피해자니까 보상을 받는 게 당연하다고 말하고 있었다. 평소에는 살갑고 잘 웃던 아주머니가 너무나 쌀쌀해져서 서운하다 못해 서러웠다. 눈앞에 캄캄해졌다. 어디서 그 돈을 마련한단 말인가. 내가 홍대에서 받고 있었던 매달 장학금은 절반은 생활비로 쓰고 절반은 꼬박꼬박 적금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그걸 깨야 하나. 속이 쓰라려 왔다. 그게 어떤 돈인데... “알겠습니다.”라고 대답하고 일단 집수리를 시작하시라고 말했다. 그날부터 대대적인 집수리가 시작되었다. 이참에 주인집은 잘 되었다는 듯 아예 부엌 가구를 교체하고 거실 벽지와 바닥재까지 싹 갈아버렸다. 우리 집은 벽지와 장판을 간 게 전부였다. 비용 대부분이 주인집 수리에 들어갔다. 그래도 불을 낸 책임이 우리에게 있으니 억울하지만 할 말이 없었다.

  우리 집에 불이 났다는 소문이 빠르게 퍼졌다. 그 집에 엄마가 없고 아버지는 실직 상태에 아이들이 셋이라는 소문까지 함께.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이 찾아오기 시작했다. 어떤 사람들은 옷을 가져오고, 어떤 사람들은 이불을 사주었다. 며칠 뒤에는 장롱이 들어왔다. 이웃들이 돈을 모아서 샀다고 했다. 텅 비었던 안방이 빠르게 채워지기 시작했다. 남에게 물질적인 도움받는 걸 내켜 하지 않던 나였지만 그때만큼은 눈물 나도록 고마웠다. 사람들은 “학생, 용기 내요.”라는 말도 잊지 않았다. 이제 웬만큼 생활하는 것이 가능해졌지만 TV가 없었다. 한 달이 지나서 TV를 다시 샀는데 TV 없이 한 달을 견디는 게 무척 힘들었다.

  어느 날 동생이 내게 “학교에서 누나보고 오라는데.”라고 말했다.

“왜?”

“학교에서 우리 집 돕는다고 성금을 걷었대. 그래서 누나보고 받으러 오래.”

두 동생은 당시 둘 다 성고등학교에 다니고 있었다. 큰동생이 전교 일 이등을 할 정도로 공부를 잘했다. 그래서 우리 집 사정에 더 관심을 가졌을까. 전교생이 성금에 참여했다고 했다. 나는 몹시 거북하고 쑥스러웠지만 그렇게 큰 정성을 거절할 수는 없었다. 동생 학교 교무실로 찾아가니 동생 담임 선생님이 나를 위로하면서 아주 두툼한 봉투를 건네주었다. 크게 인사를 하고 학교를 나와 봉투를 열어보니 수백만 원의 돈이 들어있었다. 적금을 깰 필요가 없게 되었다.

  나는 가끔 우스갯소리로 이런 말을 한다. 살면서 물난리, 불난리를 다 겪어 보았다고. 그런데 사람이 다치거나 죽지만 않으면 불난리가 차라리 낫더라고. 불은 모든 것을 태워 버려 정리할 것이 없지만 물난리가 나면 버리고 정리하는 데 시간이 너무 많이 걸린다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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