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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쏭쏭 Mar 26. 2023

엉망진창인 봄 꽃처럼

내 인생이 엉망진창인 이유

  출근길에 깜짝 놀랐다. 분명히 저번 주까지만 해도 롱패딩에 모자를 푹 눌러쓰고, 마른 나뭇가지가 찬 바람에 윙윙 우는 소리를 들으며 옷깃을 추어올렸던 것 같은데. 어느덧 꽃봉오리가 맺히고 꽃망울들이 발그레한 뺨을 내보이고 있다.      


  이거, 곧 꽃이 피겠는데?     


  다음날, 혹시나 하고 나무를 보다가 깜짝 놀란다. 어제 보았던 그 나무에 꽃이 피었다. 단 한 송이지만 분명히 활짝 피었다. 봄을 가장 먼저 맞이 한 사람이 된 기분이라 설렌다.     


  출근길은 강변을 따라 쭉 늘어선 벚나무를 따라간다. 조만간 만개하겠지? 바람에 날려 떨어질 벚꽃을 상상하며, 평소에는 관심을 주지 않았던 나무들을 유심히 바라보았다. 그러다가 회색 나무들 사이 혼자 환하게 분홍색 조명을 켠 것 같은 나무를 발견했다. 뭐야? 벌써 다 피었어? 언제 핀 거지? 내가 못 본 걸까? 아니면 어젯밤에 한꺼번에 피어난 걸까? 놀란 마음에 늘어선 벚나무를 돌아 바라본다. 어찌 되었건, 이런 속도라면 주말이면 벚꽃이 만개할 것 같다.     


  예상처럼 주말에는 꽃 잔치다.     


  와. 봄이다.     

  겨울옷을 벗어던지고 한층 가벼워진 옷차림으로 꽃놀이를 나간다. 강변을 따라 걸으며 꽃을 본다. 그러다 모두가 활짝 핀 건 아니라는 걸 깨닫는다. 어떤 꽃은 아직 덜 피었고, 어떤 꽃은 활짝 피었고, 또 어떤 꽃은 벌써 진다. 한 무더기로 볼 땐 그냥 모두 꽃이 핀 상태였지만, 개별은 모두 다르다. 그걸 깨닫자 웃음이 난다.      

  엉망진창인 건 나만이 아니었구나. 난장판은 나만이 아니었구나.

     

  다들 꽃을 피울 때 나는 꽃피지 못했다는 것이 서글펐다. 다들 좋은 나이라고 하는 시절. 그 시절이 나는 너무나 힘들어서 혼자 자취방에 웅크려 있었다. 모든 것이 불만이고 모든 것이 힘겨웠다. 그러다 시골로 내려왔다. 남들 시선이 두려워 가장 늦은 시간 도착하는 버스를 탔다. 그런 나를 데리러 엄마가 화물차를 끌고 나왔었다. 


  어두운 밤, 아무도 없는 시골 도로를 달리며 엄마는 벚꽃이 환하게 피었다며, 좀 보라고 말했다.     


  "그런 건 마음의 여유가 있는 사람에게나 보이는 거야. 내 눈엔 그런 건 안 보여."     


  나는 팔짱을 끼고 보조석에 앉아, 몇 시간 동안 버스를 타고 오느라 퉁퉁 부은 다리를 글로브 박스에 올리고, 퉁명스럽게, 고집스럽게 말했었다. 그때의 나는 만개한 꽃들 속에 오로지 혼자 늦게 피는, 아니 영원히 필 것 같지 않은 존재였다.     


  생각해 보면 모든 순간이 그랬다. 어쩌면 꽤 괜찮은데? 이제 제대로 피려고 하나 봐? 하는 순간도 있었다. 하지만 그 순간은 오래가지 않았다. 어떤 꽃은 채 피기 전에 지고 떨어졌고, 피고 보면 너무 일러서 외로웠고, 때론 너무 늦게 펴서 괴로웠다. 다른 꽃과 같이 피워냈다고 해도 나보다 더 크고 싱싱한 꽃을 피운 존재 때문에 서글펐다.          


  하지만 이렇게 나와 진짜 꽃을 보고 있으니, 내 그런 괴로움도 그저 자연의 일부였다는 생각이 든다. 예쁜 저 진짜 꽃들도 저렇게 엉망진창으로 피는데, 내 인생도 엉망진창인 건 당연한 일이었다. 어쩌면 꽃을 피우지 못할 수도 있다. 요즘은 내가 그럴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예전 같으면 그것이 서글퍼서 땅을 파고 또 팠겠지.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이제 우울하지만은 않다.


  어쩌면 나는 해거리 중인 걸 수도 있으니까! (꽃도 해거리하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리고 벚꽃은 꽃만 예쁘지, 열매는 별로잖아? 나는 어쩌면 꽃을 피우진 못해도 나중에 아주 맛있는 열매를 맺는 그런 품종일 수도 있지 않을까? 


  살다 보면 사과나무처럼 꽃도 예쁜 주제에 열매도 맛있는, 최고급 멋진 나무를 만날 때도 있다. 그럴 때면 질투도 나고, 조금은 우울했지만……. 나는 이제 그러지 않으려고 한다. 대신, 그런 훌륭한 나무가 있음에 감탄하고, 꽃과 열매를 모두 즐기려 노력한다. 꽃과 열매를 스스로 피워낸 나무는 정작 즐기지 못하니까. 그 두 가지를 제대로 즐길 수 있는 건, 멀뚱히 떨어져 나무를 바라보고 있는 나일 테니까. 

  

  고생은 네가 해라! 난 네 덕을 즐기겠다!     


  똑똑하고 대단한 분들, 있어 줘서 고마워요! 그런 당신들이 힘내서 멋진 차를 개발하고, 맛있는 커피 레시피를 개발한 덕분에 내가 이렇게 편하고 즐겁게 삽니다. 호호호. 당신들이 놀지도 못하고 열심히 일하는 동안, 나는 당신들이 피워낸 걸 즐기고 살아요! 뛰어난 당신들이 내 삶을 풍족하게 만들어주네요. 고마워요!     


  꽃이 떨어진다. 그러나 늦게 피는 꽃이 또 우리를 기다린다. 계절이 바뀌면 또 다른 꽃이 우리를 기다린다. 우리의 삶도 그럴 거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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