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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쏭쏭 Mar 27. 2023

제철 : 그때 해야 하는 일

지금은 엄마가 해주는 머위나물을 먹을 때

  여름에 물이 오르던 날의 일이다. 사무실은 언제나 쾌적한 것 같지는 모르겠고 카디건을 필요로 하는 온도를 유지하지만, 점심을 먹기 위해 밖으로 나오면 정수리 탈모가 걱정스러울 정도로 뜨거운 햇볕이 내리쬈다.

  식당을 향해 가는 길가엔 상점마다, 마트에서는 보기 힘든, 작고, 상처 난 과일들을 어디서 온 지 모를 커다란 상자나 낡은 바구니가 나와 있었다. 상자나 바구니에는 삐뚤빼뚤한 글씨로 제 몸값이 적힌 종이가 올려져 있었다. 주머니 속 송곳의 성질을 닮은 나는, 길거리에 있는 자두, 살구, 복숭아 등 온갖 과일들을 보고서도 다른 이름을 말한다.


  “아, 포도 먹고 싶네요.”

  “지금? 좀 이르지 않나?”

  “무슨 소리야? 복숭아 나왔으면 먹을 때지!”


  시골에 내려와 살면서 좋은 점 중 하나는 이런 이야기에 설명이 필요 없다는 점이 있다. 서울에 살 때는 이런 이야기를 하면 사람들이 다 이상하게 봤었는데. 여름 과일은 장마가 시작되기 전에 먹어야 했다. 아니, 장마까지 기다리지 않아도 비 오기 전에 딴 걸 먹어야 했다. 막걸리에 물을 타면 싱거워지듯이, 과일도 물을 먹으면 싱거워진다.


  우리의 이야기는 자연스럽게 이때 먹기 좋은 과일로, 또 자신들이 좋아하는 과일로, 제철에 관한 이야기로 넘어간다. 요즘은 기술이 좋아서 제철이 없다고 이야기하다가도 그래도 여름에는 수박이 달고, 가을에는 사과가 아삭아삭 맛있다고 이야기를 한다. 시골의 삶은 이렇게 제철과 닿아 있었다. 그리고 그건 내가 사는 이 시골의 대표 산업(?)인 농사가 제철에 특히 특화된 업종이기 때문이기도 했다.


  그때 해야 하는 것들을 놓치면 한 해 농사를 망치기 일쑤였다. 어르신들은 매일 농협에 모여 일 년 365일이 제철인 믹스커피를 마시며 당면한 농사일에 관해 이야기한다. 누구는 고구마를 벌써 심었데, 아니, 아직 추운데? 누구는 왜 안 보여? 못자리에 물 대러 갔어. 양파 모종을 옮겨야 하는데. 아직도 안 했어?


  지금 꼭 해야 하는 일에 대해 듣고 있으면, 나는 이 시기에 무엇을 해야 하나 생각한다.


  사무직 일은 항상 비슷하다. 창구 일은 특히 월말과 월초, 그리고 특별한 며칠들이 중요하다. 작게는 하루, 그다음은 한 달, 그리고 일 년의 주기로 일이 돌아간다. 그러다 보니 나는 제철도 잊고, 그저 하우스에서 일 년 내내 나오는 딸기같이 되어버린다. 색은 곱지만 싱거운 외국의 딸기.


  “그 시기에 난 것들을 먹어야지. 안 그러면 맛없어.”


  아버지가 뜯어온 머위 나물을 무쳤다며 엄마가 밥과 함께 내놓으며 엄마가 말했다. 시골에 내려와서 좋은 또 다른 점은 정성으로 손질한 제철 음식을 먹을 수 있다는 점도 있다. 나는 입안 가득 머위 나물을 입에 넣었다. 머위 특유의 쓴맛이, 물을 머금은, 촉촉한 봄의 맛이 입에 번졌다. 문득 엄마가 최근 일자리를 옮겼다는 게 떠올랐다. 하지만 나는 바쁘다는 핑계로 그냥 힘들겠구나, 고생이 많네, 하고 넘겼었다.


  “일하는 건 어때? 사람들은 괜찮아? 전에 이상한 사람 있다고 하지 않았나?”


  아마, 갑자기 이렇게 말을 붙인 것은 머위 나물이 맛있어서, 평소보다 밥을 더 먹어서, 그래서 시간이 남았기 때문일 거다.

  무심한 딸이 오랜만에 말을 걸자, 엄마는 눈을 휘둥그레 뜨더니, 곧장 기다렸다는 듯 말을 쏟아낸다. 나는 오랜만에 창구에서 일하는 경험을 십분 살려 리액션을 한다. 힘들겠네. 이상한 사람이네. 자꾸 그러면 덤벼들어(?). 내 호응에 엄마가 신이 난다. 그래서 나는 깨닫고 만다.


  아, 지금은 엄마와 시간을 보낼 시기, 엄마와의 제철이구나.



이런 이야기는 나도 엄마도 직장을 다닐 때 나눌 수 있는 이야기겠지. 나날이 약해져 가는 엄마에게 퇴사는 언제 터질지 모를 시한폭탄과 같은 존재다. 지금 오늘의 불만은, 그러니까 오늘만 할 수 있는, 이 시기에만 나눌 수 있는 그런 제철의 이야기.


“나물 맛있네.”

“그렇지? 아버지가 좋은 거 뜯었더라. 내일은 파 가져다준대. 갖고 오면 김치 담가줄게.”

“파김치는 짜파게티랑 먹어야 하는데.”


  엄마는 내 말을 이해하지 못한다. 나는 짜파게티와 파김치의 상관관계를 이야기한다. 이런 이야기도 아직은 젊은 엄마가, 음식을 마음껏 먹을 수 있을 때나 가능한 이야기. 제철의 이야기.


  앞으로 이런 시간이 내게 얼마나 주어질까? 아무도 모른다. 내년에도 또 봄이 오고, 장마가 오고, 여름이 오고, 각각의 제철이 있듯이 나에게도 또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없을지도 모르지. 하지만 올해의 복숭아가 내년의 복숭아 맛을 장담할 수 없듯이, 엄마와의 순간도 그렇다. 그러니까 나는 이 제철을 최대한 즐긴다.


  그 주 주말, 우리는 짜파게티에 파김치를 올려 나눠 먹었다. 아버지가 농사지은 파는 놀랍게도 정말로 달아서, 파김치는 조금의 설탕도 뿌리지 않아도 몹시 달았다. 제철의 달콤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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