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나랏말싸미 Dec 07. 2023

다섯째 장은 어머니입니다.

  안녕하세요? 시가 흐르는 철학 카페의 책장 지기입니다. 출근길에 마주하는 차가운 공기에 한껏 몸을 움츠리고, 옷깃을 여미는 계절입니다. 차가운 공기 때문인지 저는 요즘 목 상태가 썩 안 좋습니다. 여러분은 이 계절을 잘 지내고 있으신가요? 아무리 추워도 아이스커피를 마시는 책장 지기이지만, 오늘은 따뜻한 바닐라 라테 한 잔을 옆에 두고 여러분을 만나고 있습니다. 


  오늘의 주제는 어머니입니다. ‘어머니’라는 말만 들어도 가슴이 먹먹해지시는 분들이 많으실 겁니다. 전에는 부모님 생각에 가슴이 먹먹해지는 상황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어리석게도, 오만하게도 생전에 부모님께 충분히 잘해드리고 있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습니다. 아버지의 빈자리를 접하고 나서야 비로소 깨달았지요. 이렇게 한 번 이별하면 이번 생에서는 다시는 뵐 수 없다는 것을 온몸으로 느끼고 나서야 알았습니다. 부모님과의 이별이 어떤 감정으로 꽉 차거나 막힌 느낌의 의미를 가지고 있는 ‘먹먹하다’라는 말로는 형용할 수 없다는 것을 말이지요. 아버지와의 이별이 아직도 아픈 현실 앞에서 이제는 어머니와의 이별이 걱정입니다. 나이가 50인데도 아직도 어머니의 부재를 상상조차 하지 못하겠습니다. 요즘은 어머니의 얼굴을 가만히 보고 있기도 힘듭니다. 어머니의 얼굴에서 여든이 넘은 나이가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지금도 나이에 비해 훨씬 동안이신데도 어머니의 얼굴에 깊게 파인 주름과 한없이 작아만 지시는 몸이 자꾸 울컥하게 만듭니다. 나이를 먹을수록 풍수지탄 [風樹之歎]을 자꾸 되새기게 됩니다. 그런데 너무 아이러니(irony) 한 것은 이런 마음과 다르게 행동할 때가 많다는 것입니다. 제 몸이 피곤하면 저의 편안함을 먼저 챙기게 된다는 것입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어머니는 저희 삼 남매에게 많이 의지하십니다. 막내딸 같은 냥이가 있지만, 저희를 자주 보시기를 원하십니다. 그런데 2주 동안 수능 감독해서 피곤하고, 바쁘다는 핑계로 찾아뵙기는커녕 전화도 제대로 못 드렸습니다. 어머니는 저에게 전화하시는 것조차 미안해하십니다. 그것을 알면서도 자신의 편안함을 위해 애써 외면할 때가 많습니다. 그러다 이런 시를 접하거나 어머니의 부재가 겁이 날 때면 이런 구구절절한 말을 늘어놓습니다. 부모가 돼서도 이 모양 이 꼴이니 참 모순입니다. 저의 말이 너무 길었지요? 우선 시 한 편을 함께 보시겠겠습니다. 


어머니는 말을 둥글게 하는 버릇이 있다
오느냐 가느냐라는 말이 어머니의 입을 거치면 옹기 강가가 되고 자느냐 사느냐라는 말은 장가 상가가 된다. 나무의 잎도 그저 푸른 것만은 아니어서 밤낭구 잎은 푸르딩딩해지고 밭에서 일하는 사람을
보면 일 항가 댕기 하기에 장가 가라는 말은 장가 강가가 되고 애기 낳는가 하는 말은 아 낭가가 된다

강가 낭가 당가 랑가 망가가 수시로 사용되는 어머니의 말에는
한사코 ㅇ이 다른 것들을 떠받들고 있다

남한테 해꼬지 한 번 안 하고 살았다는 어머니
일생을 흙 속에서 산,

무장 허리가 굽어져 한쪽만 뚫린 동그라미 꼴이 된 몸으로
어머니는 아직도 당신이 가진 것을 퍼 주신다
머리가 발에 닿아 둥글어질 때까지
C자의 열린 구멍에서는 살리는 것들이 쏟아질 것이다     

우리들의 받침인 어머니
어머니는 한사코
오손도순 살아라이 당부를 한다

어머니는 모든 것을 둥글게 하는 버릇이 있다


  이대흠 시인의 ‘동그라미’입니다. 모든 것을 다 떠받치시느라 몸이 C자가 되신 어머니는 아직도 당신이 가진 것을 퍼 주십니다. 


  저희 어머니는 다음 생에 다시 태어나면 가장 하고 싶으신 것이 ‘공부’라고 말씀하십니다. 중학교에 진학하고 싶으셨는데 힘든 가정 형편으로 진학하지 못한 한(恨)이신가 봅니다. 어머니는 중학교뿐만 아니라 고등학교, 대학교까지 공부하고 싶다고 하십니다. 그래서 다음 생에는 결혼을 안 하시고 직장을 다니시면서 본인 손으로 돈을 벌어 당당하게, 여유롭게 생활하고 싶다고 하십니다. 어머니의 이런 소망에는 삼 남매를 키우시면서 힘들었던 어머니의 삶이 반영된 것이겠지요. 제가 학교 일로 힘들다고 툴툴거리면 어머니는 말씀하십니다. 


  “아무리 힘들어도 잘 다니렴. 네가 선생님인 것이 얼마나 보람되고 뿌듯하냐?”


  한때는 어머니의 이런 말씀이 서운한 적도 있었습니다. 위로받고 싶은 저의 마음이 충족되지 않아서였겠지요. 이제는 어머니 말씀의 의미를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어머니께서 평생 하고 싶으신 것을 하지 못하면서 자식들을 위해 희생만 하셨던 어머니의 삶을 이제는 조금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아직도 심적으로 큰 버팀목이신 어머니. 바쁘다는 핑계로 매일 전화조차 드리지 못하는 자식이지만, 한 방향으로 흘러만 가는 시간을 붙잡고 싶은 자식이기도 합니다. 속절없이 흘러만 가는 시간을 붙잡을 수 없기에 눈앞에 놓인 바닐라 라테를 두 손으로 부여잡고, 정호승 시인의 ‘어머니에 대한 후회’를 마지막으로 오늘 철학 카페의 문을 닫겠습니다. 


누나
엄마가 오늘 밤을 넘기시긴 어려울 것 같아
그래도 아직 몇 시간은 더 계실 것 같아
봄을 기다리는 초저녁 여섯 시
내가 뭘 안다고
인간의 죽음의 순간에 대해 내가 뭘 안다고
여든이 다 된 누나한테
누나
작업실에 좀 다녀올게
급하게 보내야 할 메일이 있어
금방 올게
오늘 밤은 엄마 곁에 계속 있어야 하니까
누나는 말없이 나를 보내고
나는 어머니의 집을 나서 학여울역에서 대청역까지
어머니가 죽음을 기다리는 순간에
한 정거장 지하철을 타고
작업실로 가 메일을 보내다가
갑자기 노트북 자판기에 커피를 쏟듯 마음이 쏟아져
지금 이 순간 혹시 엄마가 돌아가시는 게 아닐까
서둘러 지하철 계단을 뛰어내리는데
호승아 지금 오니
누나의 짧고 차분한 전화 목소리
네 지하철 탔어요 금방 가요
다급히 돌아와 아파트 문을 열자
엄마 돌아가셨다
누나가 덤덤히 잘 갔다 왔느냐고 인사하듯이 말한다
미안해요 엄마
얼굴을 쓰다듬으며
사랑해요 엄마
빰을 비비며
어머니의 임종을 지키려고 급히 다녀왔는데
기다려주시지도 않고
영원히 기다려주시지도 않고
봄을 기다리던 어두운 저녁 일곱 시

                 -시집 「슬픔이 택배로 왔다」 중




이전 04화 넷째 장은 가장의 무게입니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