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작 선택할까요? 언・매 선택할까요?
-무엇을 교육할까 2-
서 군이 6월 대수능모의고사를 3일 앞두고 찾아왔다. 이 아이는 수업 시간에 선생님과 눈을 맞추면서 수업에 집중하는 예쁜 학생이다.
“선생님, 저 고민이 있는데 잠시 시간 내주실 수 있으세요?”
“당연하지. 고민이 뭐야?”
“제가 지금 언・매를 선택하는데 많이 틀려서요. 화・작으로 바꿀까 고민이 돼서요. 지금 바꿔도 될까요?”
내가 서 군을 처음 본 것은 작년 수학능력평가 고사장 준비할 때였다. 내가 담당하는 3개의 고사장 중 서 군 반이 있었다. 먼저 두 반의 정리가 끝나서 수험번호를 책상 위에 붙이고, 각종 유인물을 지정된 곳에 붙였다. 마지막 남은 반이 서 군 반이었다. 그런데 그 반은 고사장 준비가 전혀 되어 있지 않았다. 사물함에 여러 학생 물건들이 여전히 있었고, 책상 위 낙서도 그대로 있었다. 교실 앞, 뒤에도 모아 놓은 쓰레기가 있었다. 담임 선생님에게 연락해 다시 준비해 주기를 부탁했다.
그리고 잠시 뒤 그 반을 갔는데 담임 선생님은 안 계시고 서 군과 다른 학생 두 명만 교실에 남아 땀을 뻘뻘 흘리면서 마무리 청소를 하고 있었다. 두 명의 아이들이 열심히 하는데도 교실 부착물을 붙일 수가 없을 정도로 부족한 점이 많았다. 우선 교실에 있으면 안 되는 시계, 거울 등을 떼고, 책상 대열을 아이들과 같이 맞추었다. 아이들은 싫은 내색 하나 없이 나와 함께 이것저것을 다 했다. 그런 아이들이 기특하면서도 안쓰러워 아이스크림을 주고 격려와 고마움을 전했다. 그 아이들 중에서도 가장 열심히 했던 아이가 서 군이었다. 당시 워낙 대견하고 기특해서 기억할 수밖에 없는 학생이었다.
그런 서 군을 올해 수업 시간에 다시 만났다. 서 군은 처음 모습 그대로 수업 시간에도 누구보다 수업에 집중하고, 교사의 질문에 반응하면서 열심히 공부하는 예쁜 학생이다. 창가 맨 앞에 앉아 빔이 잘 안 보이면 책상을 45도로 돌려 적극적으로 수업에 임한다. 교사 입장에서 너무나 예쁜 학생인 서 군은 수능이 점점 다가와서인지 요즘 표정이 안 좋고, 기운도 없어 보였다.
너도 알다시피 화법과 작문보다 언어와 매체가 표준점수가 높게 나오기 때문에 공부량이 훨씬 많은데도 중상위권 학생들이 언어와 매체를 많이 선택해. 그렇지만 언어와 매체에서 많이 틀리면 소용없어. 그래서 지금이라도 화법과 작문으로 바꾸는 것도 괜찮아. 작년 선생님 반 학생은 화법과 작문을 선택해서 모의고사를 봤는데 여름방학 때 언어와 매체로 선택 과목을 바꾸기도 했어. 그런데 6월 대수능모의고사가 며칠 안 남았잖아. 이번 시험은 언어와 매체를 보고, 그때도 많이 틀리면 화법과 작문으로 선택 과목을 바꾸는 것이 어떨까?
서 군은 그러겠다고 했다. 그리고 학생은 또 다른 고민을 얘기했다.
제가 독서 문제는 잘 푸는데 문학에서 많이 틀려요. 그래서 국어 공부 시간을 더 늘리려고 하는데 언어와 매체 공부량도 많아 조바심이 났어요. 해야 할 공부는 많은데 시간이 부족해서...... 국어는 연계교재하고 기출문제를 꾸준히 풀면 성적이 오를까요?
나는 성적 때문인지 기가 죽은 아이가 안쓰러웠다.
○○아, 선생님이 문학 문제집이 있는데 줄게. 문학은 모르는 작품을 추론하면서 문제 푸는 것이 중요하거든. 시간이 없겠지만 우선 연계 교재하고, 선생님이 주는 문학 문제집을 매일 일정량을 꾸준히 풀어. 그리고 기출문제나 모의고사 문제를 시간 맞혀 놓고, 일주일에 한 번씩 풀어봐. 그러면 성적이 오를 거야.
아이는 밝게 웃으면서 그러겠다고 했다. 이후 문학 문제집을 골라 서 군에게 갔다. 문제집을 건네면서 한 마디 덧붙였다.
그렇게 열심히 했는데도 만에 하나라도 네가 생각하는 만큼 만족스러운 결과가 안 나올 수도 있어. 그건 네 노력이 부족하거나 잘못해서가 아니야. 내신이나 대학 입시 성적이 상대 평가이기 때문에 그럴 수 있어. 그러니까 낙담하거나 좌절하지 마. 넌 정말 대견할 정도로 잘하고 있으니까. 스스로 칭찬하면서 힘든 이 시간을 잘 보내렴. 지금 너의 모든 노력이 네 인생 전체에서 언젠가는 반드시 좋은 결과로 되돌아올 거야. 나도 응원할게.
내가 그 아이를 위해 해줄 수 있는 것이 응원밖에 없지만, 진심을 담아 기도와 응원을 하고 있다.
‘착함’, ‘성실’
이보다 더 가치 있고, 아름다운 말이 있을까? 그런데 이 좋은 말들이 대학 입시에서는 뛰어난 평가를 받지 못한다. 대부분 대학이 ‘인성’보다 ‘학업 역량’, ‘진로 역량’에 더 큰 비중을 두고 평가하고 있다. 학생이 착하고, 성실하다는 교사의 평가는 의미 없는 말이 되어 버린 현실이다. 성실함의 상징인 ‘개근’이 초등학교 사이에서 ‘개근 거지’로 비하되고 있다고 하니......
우리는 아이들에게 무엇을 가르치고 있는가? 왜 우리는 아이들에게 공부만을 강요하는가? 공부만 잘하면 그 아이가 어떤 인성을 가지고 있어도 다 용서되는 사회를 누가 만들었는가? 학벌이, 돈이 최고가 되어 버린 사회를 누가 만들었는가?
이건 나를 포함한 기성세대, 어른, 부모의 잘못이다. 어른이 어른답지 못해서 아이들을 망치고 있다. 나이만 많다고, 부모라고 어른이 아니다. 목소리만 큰 사람이 어른이 아니다.
아이들이 본받을 수 있는 어른다운 어른이 이 사회에 가득해지기를 바란다. ‘착함’, ‘성실’이 최고의 가치로 인정받는 사회를 소망한다.
“어른이란 (기본의미) 다 자란 사람. 또는 다 자라서 자기의 일에 칙임을 질 수 있는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