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교사이기에 겪는 고달픔에 대해 넋두리하고 싶은 날입니다. 오늘만은... 그러고 싶습니다.
#1. 선생님 아파요
수학여행 가기 전에 저는 간절히 기도합니다.
제발 이번에는 사건・사고 없이 무탈하게 다녀올 수 있게 해 주세요.
수학여행은 한 명의 교사에게 25명 이상 학생의 안전요원이자 책임자, 부모 등 무한 의무와 책임을 전담시킵니다. 하루에 2만 보 이상 걷지만, 담임교사가 편히 쉴 수 있는 시간은 단 1시간도 허용되지 않습니다. 2박 3일 수학여행 동안 담임교사는 하루에 2~3시간도 잠을 자기 쉽지 않습니다. 육체적으로도 감당이 안 될 만큼 힘든데 25명 이상의 학급 학생들은 밤낮을 가리지 않고 담임교사를 찾습니다. 밤낮을 가리지 않고 학생들이 찾는 모든 일을 담임교사 혼자 감당해야 합니다. 정말 할 수만 있다면 내 몸을 홍길동의 분신술로 10개로 만들고 싶습니다.
내 몸이 아무리 힘들고, 아파도 학생들이 아프지 않으면 다행인데 수학여행 동안 학생들은 다양하게 아픕니다. 배탈이 나는 학생, 위경련이 나는 학생, 놀다 부딪혀서 다치는 학생 등 사안도 나열하기 힘들 만큼 다양합니다. 본교는 학생이 아파 병원에 가야 하면 담임교사가 학생을 데리고 직접 병원에 다녀와야 합니다. 병원에 가는 동안 학부모에게 연락하는 것도 담임교사의 몫입니다. 하루에 병원을 3~4번 다녀온 적도 있습니다. 그래도 학생들의 배탈, 감기는 일도 아닙니다. 학생끼리 장난치다 다친 경우는 종일 전화기를 붙들고 담임교사 혼자 모든 것을 수습해야 합니다.
#2. 그 시간 담임 선생님은 뭐 하고 있으셨어요?
어느 해 수학여행 마지막 날. 이번에는 다행히 큰 사건・사고 없이 잘 지나갔습니다. 마지막 밤만 무사히 지나면 모처럼 무탈하게 지나간 수학여행이었을 겁니다. 저녁 11시부터 아이들을 자라고 재촉했지만, 아이들은 안전요원과 담임교사의 눈을 피해 다른 방 친구들과 모여 재잘재잘 떠들었습니다. 새벽 1시가 지나자 아이들이 서서히 자기 시작했습니다.
새벽 2시쯤에 한 번 더 순찰하기 위해 학급 아이들 방을 확인했는데, 유독 한 방의 아이들이 잠을 자지도 않으면서 문을 열지 않았습니다. 느낌이 싸했습니다. 초인종을 누르면서 내가 문을 열라고 하자 방 안에서 아이들이 부산하게 움직이는 것이 느껴졌습니다. 아이들은 끝까지 문을 열지 않고 자는 척하여 프런트에서 키를 받아 문을 열었습니다. 그 문은 판도라의 상자였습니다. 문을 여는 순간 코를 찌르는 술냄새....
자는 척하는 그 방 아이들을 일으켰습니다. 5~6명의 아이들 얼굴이 빨갰습니다. 더 기가 막힌 것은 아이들이 술 마시는 장면을 생중계한 것이었습니다. 교사인 분들은 이후의 상황이 짐작이 가시겠지요.
생중계된 아이들의 술먹방. 당연히 수학여행 이후에도 파장이 컸습니다. 5~6명의 학생과 학부모, 담임교사, 업무 담당자, 학교 관리자 등이 모두 모여 열린 징계위원회에서 2명의 학부모가 이의를 제기했습니다.
"아이들이 그러고 있는 동안 담임교사는 무엇을 하고 있었나요? 왜 아이들의 일탈을 사전에 방지하지 못했을까요?"
학부모의 이의 제기에 이 사안은 한 학기 내내 회의를 반복하고, 저는 수십 번의 진술서를 써야 했습니다. 그러는 동안 저는 아무렇지도 않게 수업을 똑같이 해야 했고, 학급과 부서 업무들도 모두 다 해야 했습니다. 분명히 학생이 잘못한 사안인데도, 잠도 못 자고 수학여행 내내 쓰러질 만큼 힘들었는데도 저는 학부모의 민원 앞에서 할 수 있는 것이 별로 없었습니다.
교직 생활이 27년 3개월이나 된 저는 아직도 수학여행 가는 것이 두렵습니다.
#3. 교사가 수업한다고 민원을 제기합니다.
고등학교 3학년 2학기 수업은 교사가 50분 내내 수업하기 힘듭니다. 국어, 영어, 수학은 수학능력평가 시험 과목인데도, 연계 교재인 수능 완성을 수업하는데도 아이들은 교사의 수업을 듣지 않습니다. 1학기 내내 너무나 열심히 수업을 듣던 아이들도 2학기만 되면 돌변합니다. 당연히 이어폰을 끼고, 다른 과목 문제를 풀거나 다른 인터넷 강의를 듣습니다. 이어폰을 빼게 하고, 다른 인터넷 강의를 못 보게 해도 아이들은 수업을 듣지 않습니다. 고3 2학기 수업을 들으면 시험을 망친다는 저주가 있나 의심할 정도입니다. 극소수의 아이들만 듣는 수업을 교사가 정신병자가 아닌 이상 아무렇지도 않게 수업하기 쉽지 않습니다.
그래도 국어, 영어, 수학을 담당하는 교사는 나은 상황이라고 선택과목 교사들은 말합니다. 수학능력평가에서 학생들이 선택하지 않은 과목의 교사는 이 상황이 훨씬 심하다고 말합니다. 저도 선택과목 교사들의 고충을 조금이나마 짐작할 일이 있었습니다.
고3 담임교사를 했을 때 학급 학부모가 9시가 넘은 시간에 민원을 제기했습니다.
"아이가 선택하지 않은 과목인데 2학기에도 그 선생님이 수업을 해서 아이가 귓병이 났어요."
물론 이 학부모의 민원은 가정학습을 사용하기 위한 수단이었습니다. 수시를 지원하지 않고 정시에 모든 것을 집중하고 있는 학생의 학부모였습니다. 코로나19로 가정학습이 54일까지 늘어난 상황이어서 가정학습을 빨리 사용하고 싶은 마음에 교사의 수업을 걸고넘어진 것이었습니다.
생활기록부 수시 마감, 수학능력평가 원서 작성, 수행평가 등을 모두 마무리한 후에 가정학습을 사용할 수 있었는데 이 학생과 학부모는 그조차도 아까웠나 봅니다.
"어머니, 아무리 고3 2학기이지만 교사가 수업한다고 이런 말씀을 하시는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제가 이런 어머니의 불만을 담당 선생님에게 전할 수도 없고, 어머니가 참기 힘드시면 정식으로 교감, 교장 선생님에게 민원 제기하세요."
이 학부모의 목적은 가정학습이었기에 이 민원은 담임교사에게 하는 불만 정도로 끝났습니다. 그런데 제가 이 사례를 얘기하는 것은 학부모가 자신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는 교사의 조그만 잘못 아니 잘못도 아닌 일을 끝까지 물고 늘어진다는 겁니다. 그럼 대부분 학교는 학부모와 원만히 해결하기를 원합니다. 학교가 교사의 편에서 끝까지 싸워주는 경우를 저는 그동안 보지 못했습니다. 대부분 교사 혼자 모든 것을 감당해야 하고, 결국 교사는 좌절합니다. 이런 민원을 한 번이라도 당하게 되면 교육적 사명감이나 책임감 보다 서류와 절차가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그러면 어떤 학부모는 또 이렇게 말합니다.
"선생님이 아이를 사랑으로 대하지 않고, 절차만 따지네요."
교사가 학생을 사랑으로 가르쳐야 하는 것이 맞습니다. 교사가 사명감과 책임감을 가지고 교단에 서야 하는 것이 옳습니다. 당연히 그래야 한다고, 그게 정답이라고 저도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교사가 그럴 수 있게, 그럴 수 있는 환경이 되길 간절히 바랍니다. 교사의 의무와 책임만을 강요하지 말고, 사명감과 책임감을 가지고 교단에 서 있는 교사가 자존감을 지킬 수 있게..... 초심을 잃지 않게 교사를 보호해 주길 간절히 바랍니다.
매일매일 파이팅하면서 견디고 있을 이 시대의 선생님들이 많을 것이기에 오늘은 파이팅 하시라고 차마 말을 하지 못하겠습니다. 다만 조금만 더 기운을 내시라고.... 자존감이 무너지고, 견디기 힘든 일들로 버티기 힘든 하루였을지라도 조금만... 조금만 더 기운을 내시라는 말을 전하고 싶은 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