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막내딸, 냥이(엄마 이야기 2)
엄마는 노래를 좋아하시고, 동네 반장을 하실 정도로 활동적이셨다. 내가 대학 입학 후 결혼하기까지 10년을 동네 아주머니들과 계모임 하시면서 계주를 맡으실 정도로 마당발이셨다. 그렇게 활동적이셨던 엄마는 아빠 병간호를 10년 하시면 답답해하시기도 했다. 아빠의 병간호를 10년 하시면서 일주일에 한 번 가요 교실은 무슨 일이 있어도 꼭 참석하셨다. 일주일에 한 번 외출이 엄마의 유일한 스트레스 해소이자 탈출구였던 셈이다.
아빠의 항암 치료가 거듭될수록 아빠의 힘듦도 배가 되셨다. 아빠의 힘듦이 커질수록 엄마의 고생도 더해지셨다. 우리가 돌아가면서 아빠의 병실을 지키고, 아빠께 보양식을 대접해도 아빠의 병간호를 전담하신 분은 엄마이시기에 우리는 엄마의 고생이 안쓰러웠다. 그래서 엄마께 일주일에 겨우 한 번 하시는 외출을 좀 더 늘리실 것을 권했다. 그래야만 엄마가 견디실 것 같았다. 그때 엄마는 아빠를 걱정하시면서 단칼에 거절하셨다.
“엄마도 너무 힘드실 텐데....?”
우리는 힘든 투병을 하시는 아빠도 걱정이었지만, 아빠를 병간호하시는 엄마도 너무 걱정되었다.
“당연히 힘들지. 한두 해도 아니고. 너희도 힘들고.”
엄마는 힘없이 웃으셨다. 그러시면서 옛날 말씀을 하셨다.
“옛날에 엄마 수술했을 때 기억나니?”
엄마는 두 번 큰 수술을 하셨다. 자궁 적출 수술과 유방 혹 제거 수술. 자궁 적출 수술은 내가 대학교 입학 후 하셨고, 유방 혹 제거 수술은 그로부터 5~6년 뒤에 하셨다. 엄마가 자궁 적출 수술과 유방 혹 제거 수술하셨을 때 나는 대학생이었고, 교사였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참 한심한 인간이었다. 교과서에 나온 지식만 열심히 공부하느라 사람으로서, 자식으로서 해야 할 도리를 배우지 못한 한심한 인간이었다. 엄마가 전신마취 후 힘없이 깨어나신 모습을 보면서 무서웠지만 엄마를 위해 무언가를 할 생각조차 못 했다. 나는 걱정하지 말고 학교 잘 다니라는 엄마, 아빠의 말만 듣고, 저녁에 잠시 병실에 들리는 정도만 했다.
“엄마 수술하고 너희 아빠가 엄마 간호했잖아. 그때까지 아빠는 한 번도 밥을 해본 적이 없었어. 밥을 하기는커녕 쌀을 한 번도 씻은 적이 없었을 거야. 그런데 엄마가 병원 밥을 잘 먹지 못하니까 너희 아빠가 밥을 하고, 엄마가 좋아하는 반찬을 해서 도시락을 가져왔지 뭐야. 맛을 봤더니 사 온 것이 아니고, 집에서 한 거였어. 쌀도 한 번 씻어본 적 없는 사람이 어떻게 해왔는지 물어봤지. 그랬더니 너희 아빠가 그러는 거야. 옆집 ○○ 엄마에게 반찬을 부탁하고, 밥 하는 법을 배워 도시락을 준비해서 가져온 거라고. 병원 밥은 통 못 먹겠더니 아빠가 가져온 도시락은 너무 맛있었어. 그래서 그 도시락을 다 먹었어. 특별할 것도 없고, 늘 먹는 반찬에 밥이었는데 그렇게 맛있더라. 그렇게 맛있게 식사한 적이 처음이었던 같아.”
엄마의 눈과 목소리는 과거로 돌아간 듯 아련했다. 아빠가 그때 그러셨는지는 우리도 몰랐다. 생각해 보면 엄마가 없는데도 밥솥에 밥이 있었던 것 같다. 라면을 더 많이 먹었지만, 라면 국물에 밥솥에 있는 밥을 말아먹었다. 그러면서 이 밥을 누가 했는지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그때 너희 아빠가 그러더라. 앞으로 잘할 테니 아프지 말라고. 자기보다 더 오래 살라고. 근데 웃기지 않니? 자기는 엄마 병간호 겨우 이 주일 정도 했나? 그러면서 이렇게 몇 년째 병 간호하게 하는 게? 몸이 힘들 때는 그렇게 담배 끊으라고 했는데 그거 하나 못 끊고 병에 걸린 게 괘씸하기도 해. 근데 한평생 가족 먹여 살리느라 자기 취미 하나 없이 담배만 피우면서 스트레스 해소한 네 아빠가 불쌍하기도 해서. 자기 부모, 형제에게 끔찍하게 잘하고도 제대로 대우도 못 받은 네 아빠가 불쌍하잖아. 나라도 네 아빠 옆에서 잘 지켜줘야지.”
아빠는 엄마가 아프신데도 철도 없고, 생각도 없는 자식을 보시면서 어떤 생각을 하셨을까? 본인이 자식들 밥까지 하시면서 엄마 병실을 혼자 지키셨는데 그런 엄마, 아빠의 고생도 모르고 자기 할 일만 하는 자식새끼들을 보시면서 아빠는 엄마에게 아프지 말라고, 자신보다 더 오래 살라고 말씀하셨나 보다.
엄마의 지난 얘기를 들으면서 그 옛날 나의 한심한 행동이 떠올라 더 이상 엄마와 말을 할 수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