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밤 병동에 큰 소리가 났습니다. 한 환자가 자신의 ‘알사탕 봉다리’가 없어졌다고, 누군가가 몰래 들어와서 훔쳐갔으니 병원 CCTV를 보여달라고 소리치고 있었습니다. 병동 밖에서 열 수가 없는 고정된 문 앞에 서서 언성을 높이며 누군가 이 문을 몰래 따고 들어와서 본인 병실에서 훔쳐간 것이 틀림없다고 했습니다.
저는 일단 환자의 분노를 가라앉힌 뒤, 누가 훔쳐 갔는지를 생각하기 전에 한번 같이 찾아보자고 했습니다. 환자는 항상 자신의 서랍장에 넣어두었는데 서랍장에 없다며 흔쾌히 한번 찾아보라고 했습니다. 가장 먼저 환자의 냉장고를 열어보았는데 냉장고 안에 바로 알사탕 봉다리가 있었습니다. 환자는 매우 당황해하며 “아니, 왜 이게 거기 들어가 있지? 맨날 서랍장에 넣어두는데~”하면서 민망해했습니다.
이 환자는 누군가가 자신을 괴롭히려고 한다는 망상으로 입원한 환자였습니다. 음식을 먹을 때도 누가 독을 탄 것은 아닌지 의심하며 잘 먹지 못하고, 오늘처럼 무언가 제자리에 있지 않을 때는 누가 몰래 훔쳐간 것이라며 금방 버럭 화내곤 했습니다. 이번에도 알사탕 봉다리가 항상 넣어두는 서랍장에 없다는 것을 보자마자 바로 ‘누가 몰래 훔쳐간 거야! 훔쳐가려면 여기 이 문으로 들어올 수밖에 없어!'라고 확신을 했던 것입니다. 이 환자에게는 누군가 알사탕 봉다리를 훔친 것이 분명하니, 자신의 병실에서 가장 가까운 문으로 몰래 들어와서 알사탕 봉다리를 훔쳐갔을 것이라는 결론이 어쩌면 너무나 논리적이고 당연한 사고였던 것입니다.
망상이라는 것은 참 재미있습니다. 아무리 논리와 증거를 들이밀어도, 이 문은 밖에서는 열리지 않는 문이라는 것을 보여주어도, 내 서랍장에 알사탕 봉다리가 없어졌고 누군가가 훔쳐간 것이니 이 문으로 들어와서 훔쳐간 것이라는 믿음을 쉽게 바꾸지 못합니다. 그나마 이 환자는 알사탕 봉다리를 찾았을 때, ‘내가 왜 여기 놔뒀지? 여기 놔두질 않는데...’ 라며 민망해 했지만, 망상이 심한 환자들은 이럴 때마저도 “누군가가 훔쳤다가, 내가 간호사에게 이르니깐 자기가 범인인걸 걸릴까 봐 무서워서 다시 갖다 놓은 거야!”라고 끝까지 우길지도 모릅니다. 제3자가 봤을 땐 얼토당토않은 ‘믿음’이지만 본인에게는 기정사실이며 명백한 팩트인 것입니다.
망상에는 여러 가지 종류가 있습니다.
앞서 나온 망상은 피해망상(paranoid delusion)이라 할 수 있습니다. 누군가 자신을 괴롭히고 해치려 한다는 망상입니다.
관계망상(idea of reference)은 주위에서 일어나는 일상적인 일들이 모두 자신과 관계있다고 믿는 망상입니다. 예를 들어 길다가 웃는 사람이 보이면, 나를 보고 비웃었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과대망상(grandios delusion)은 자신이 어떠한 위대한 능력이나 초능력을 가졌다는 믿음을 가진 망상입니다. 예를 들어 ‘내가 예수요, 부처님이다, 내가 이 세상을 구원하러 왔다, (현재 성적이나 능력을 고려하지 않고 현실성 없이) 나는 올해 하버드대학교에 입학할 것이다, 나는 국회의원이 될 것이다.’ 등이 있습니다.
색정망상(erotic delusion)은 보통 유명인이나 어떤 사람이 자신을 사랑한다고 믿는 망상입니다. TV 음악프로에서 아이돌 가수가 윙크하는 것을 보고 나에게 몰래 보내는 사랑의 메시지♡라고 해석하기도 합니다.
신체망상(somatic delusion)은 자신의 신체가 다르다고 믿는 망상입니다. 심한 경우에는 ‘내 몸에서 냄새가 난다’라는 생각에 대인관계를 유지하지 못하거나 ‘나는 장기가 없다’라는 믿음을 가지고 음식을 먹지 못하기도 합니다.
저는 이러한 망상을 일상생활에서도 쉽게 발견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나는 항상 운이 없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아침에 알람을 듣지 못하고 늦게 일어나서 부랴부랴 버스를 타러 가는데 버스가 막 출발하여 놓치고 말았습니다. 이때 “역시... 난 운이 없어...”라는 생각 또한 망상이 아닐까요? 제3자가 봤을 땐 그저 하루 늦게 시작된 하루이며 백번 양보해도 단지 오늘 아침이 조금 재수 없었을 뿐입니다. 하지만 누군가는 버스를 몇 번 놓치자마자 ‘나는 항상 운이 없다’는 결론을 내려버립니다.
“나는 왜 이럴까, 나는 왜 이것밖에 안될까?”라는 생각은 또 어떤가요?
“난 평생 이렇게 우울할 거야.”라는 생각은요?
"난 평생 낫지 못할 거야."라는 생각은?
“난 잘하는 게 아무것도 없어.”라는 생각은?
“세상 사람들은 모두 나를 싫어해.”라는 생각은?
“난 평생 혼자 살다 죽을 거야.”라는 생각은?
“난 실패자야.”라는 생각은?
“나는 쓸모없는 사람이야.”라는 생각은?
이 또한 자신만의 사고에 갇힌 ‘망상’이 아닐까요?
(※ 여기서의 ‘망상’은 정신과적 증상을 나타내는 의학적 용어로 사용되지 않았습니다.)
(※ 모든 글에서 환자에 대한 이야기는 각색되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