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는 하기 싫고. 그렇다고 하고 싶은 게 있는 것도 아니고... 아무것도 안 하고 있자니 나만 뒤처지는 것 같고...”
“대학교 휴학 중이긴 한데 복학해야 하고 공부해야 하는데 집중도 잘 안되고.”
“내 실력에 취업도 잘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이 자꾸 들고,”
“아무도 저를 사랑하는 것 같지 않아요.”
“이혼하고 싶은데 이혼도 못해요...”
“애들한테 뭘 더 해주지는 못하고 이렇게 늙어서 아프기만 해서 애들 힘들게만 하고...”
“다른 사람들은 잘 버티고 있는데...”
“다른 사람들은 잘만 사는데...”
“다른 사람들은 다 졸업하고 취업하고 결혼하는데...”
“나만 이러고 있는 것 같고... 힘들고 죽고 싶어요.”
위의 말들 중에 나에게 조금 익숙한 말들이 있지 않나요?
이것은 제가 수없이 많이 들었던 이야기들의 일부입니다.
나만 불안하고 나만 우울한 것 같다면,
절대 당신 혼자만의 이야기가 아님을
꼭 이야기해주고 싶습니다.
“저는 잠을 좀 못 자서 왔지, 다른 정신은 멀쩡해요.”
정신건강의학과 병동으로 들어서는 많은 사람들이 저에게 하는 말입니다.
그럼 저는 보통 이렇게 대답합니다.
“네. 대부분 그런 이유로 병원에 오세요.”
반대로 자신이 멀쩡하지 않다고 먼저 이야기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몸은 이렇게 멀쩡한데 내가 정상이 아니에요. 내가 왜 이럴까요.”
그럼 저는 보통 이렇게 대답합니다.
“정상이 아닌 게 아니라, 질병으로 인한 증상일 뿐이에요.”
이 간단한 것을 모르고 정신건강의학과 방문을 꺼리고 집에서 혼자 고통스러워하거나, 뒤늦게서야 진료를 보고 치료 시기가 늦어지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또한 정신과 진료를 받는다고 하면 호기심 혹은 경계의 눈초리를 주는 사회적 시선 때문에 치료가 필요한 사람들의 병원 방문이 더욱 지연되기도 합니다. ‘정신과는 정신 이상한 사람들만 가는 곳이지, 나랑은 상관없어.’ 혹은 ‘정신과는 정신 이상한 사람들이 가는 곳이니깐, 정신과 다니는 저 사람도 이상한 사람이야’라는 시대착오적인 생각까지는 아니더라도, 뿌리 깊게 박혀 있던 부정적인 느낌으로 인해 아직도 <정신과>라고 하면 멈칫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정신과 방문에 대한 머뭇거림이 사람들을 얼마나 더 힘들게 하는지 많이 보았던 저는, 어떠한 작은 머뭇거림도 없어지길 바라는 마음에서 저의 정신건강의학과 병동 생활 일지를 적어보기 시작하였고, 그 일지를 바탕으로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머리가 아프거나 배가 아프면, 몸에 상처가 생기고 피가 나면 우린 모두 치료를 받기 위해 병원에 갑니다. 병원에서 검사를 받고 진료를 받고 검사 결과에 따라 진단명이 나오고 진단명에 해당하는 치료를 받게 됩니다. 그렇다면 내 마음이 아프다면 어떡해야 할까요. 가장 여리고 가장 변덕이 심하며 가장 내 맘대로 되지 않는 것이 ‘내 마음’입니다. 이 험한 세상 안에서 ‘내 마음’이 조금도 다치지 않고 멀쩡한 것은 불가능합니다. 누군가에게 찔리기도 하고 힘든 상황에 짓눌리기도 하고 겁에 질려 벌벌 떨기도 합니다. 내 마음이 아플 수 있는 것은 당연합니다. 세상 누구도 강철 마음을 가지고 태어나지 않습니다. 하물며 강철도 녹이 슬 수 있는걸요. 어제는 부모님과 싸웠고 오늘은 직장 상사에게 깨졌고 아마 내일은 말 안 듣는 자녀와 한바탕 할 것입니다. 그것이 저희가 살아가는 삶입니다. 그때마다 상처받은 내 마음, ‘괜찮아’ ‘내 인생이 그렇지 뭐’ 대충 넘기고 보낸 날들. 쌓이고 쌓여 어쩌면 저 밑에서 곪아 버렸을.
저는 꿈꾸고 있습니다.
손가락이 살짝 베이면 소독을 하거나 지혈을 하고 밴드를 붙이듯, 마음에 살짝 스크래치가 나는 것도 바로 치료받을 수 있는 세상이 오기를. 평소에도 영양제를 챙겨 먹으면서 몸 건강을 챙기듯이, 마음에도 꾸준히 양분을 주면서 관리하는 세상이 오기를. 누구나 당연히 그렇게 사는 세상이 오기를. 그런 세상이 조금 더 빨리 오도록 제가 도울 수 있기를. 그래서 지금보다 더 많은 사람이 마음 건강히 살 수 있기를. 누구보다 지금 당신이 오늘 하루를 따뜻하고 평온하게 살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