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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침엔 샴페인 Apr 22. 2023

감자를 갈다 손가락도 갈아버린 날에

 감자전이 무지하게 땡기는 한여름 어느 날, 강판에 하얗게 깎은 통감자를 갈다 엄지 손가락마저 함께 주욱 갈아버리는 사단을 내고 말았다. 

 고기가 굳이 들어가지 않아야 할 반죽에 왠 단백질 덩어리들을 본의 아니게 첨가하고야 말았다. 피로 물든 강판을 뒤로하고 부랴부랴 처지에 나섰지만, 이미 덜렁거리는 살점 조각은 영 붙을 기미가 없었다. 이 더운 삼복 더위에 괜한 짓을 한 거지, 뭐하러 굳이 해 먹겠다고 이 난리를 또 만드냔 말이다. 

 한동안 오른속으로 머리도 감지도 세수를 할 수도 없음에 괜시리 짜증이 폭발해 버렸다. 그간 눌러놓았던 갖가지 불평, 불만, 짜증 삼종 세트가 기회는 이때다 싶게 연달아 터지믄서 이 더위를 한껏 후끈 달궈놓았다. 

 사실 울고 싶을 때 굳이 명분을 찾아 슬픈 음악이나 영화를 듣는 것처럼, 아마 살점 하나 정도는 떨궈놓을 만큼 아리고 따가운 한사발의 욕을 퍼담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속내는 언제나 나도 모르는 사이에 행동이 되어버리고 마는 것을. 아무일 한 개도 없이 잘 지낸다는 건 어느모로보나 구라일색이다. 

 손톱 밑 가시 하나만 박혀도 하루 종일이 신경이 쓰이는데, 치아 한 개만 욱신거려도 일이 제대로 손에 안 잡히는데, 사람은 참 간사하고도 철이 없어 보일 때가 간혹있다. 시간이 지나면 다 해결이 될 것을, 그게 어떤 식으로든 말이다.

 좋게 풀리면 좋은 거고, 안 좋게 풀린다 해도 하는 수 없지 않은가. 신을 믿는 사람에겐 이미 무엇이던 벌어진 일을 수습하는 건 인간과 하늘이 합의 볼 사안이 될 것이며, 아닌 사람에겐 줄기찬 노력만이 관건일까. 그러기엔 이미 노력으로 다 되는 세상이 아니라는 것은 내 일찌감치 진즉에 알아버린 터라, 욕심은 과하지 않게, 기대도 과하지 않게, 하지만 끈기와 성실함은 스스로에 대한 믿음이기에 과하게 품어도 좋으리라 다짐하곤 했다. 

 다짐은 항상 많은 거품을 동반한다. 사람이기에 작심삼실을 삼일 마다 하면서도 어쨌든 이 생을 꾸려나가야 하는 건 짐짓 체력소모와 더불어 시간낭비 같단 생각도 하곤 한다. 주어진 모든 삶의 구간을 오로지 성실로만 무장하고 산다면, 글쎄, 그런 사람도 분명 있고, 아닌 사람도 있다. 적당히 살다 적당히 때 되면 가는 사람도 있고, 악착같이 주어진 시간 다 채워서 할 일 다 마치고 가는 사람도 있다. 

 정확하게 알 수 있는 것 하나는, 어느 때인지 그 ‘때’라는 걸 모른다는 것이다. 그러니 악다구니 써가며 살아봐야 크게 덕 볼 세상 같지도 않고, 대충 산다고 누가 뭐라할 것도 아니니, 그냥저냥 이렇게 저렇게 살아가는 거 이외엔, 삶의 목표를 견고히 세우고 성심을 다해 살아가는 부류는 그저 신성해 보이기까지 하다. 

 원래 우리는 이러지 않았다. 이리치고 저리치고 깨지고 무너지고 하다보니, 현실을 제대로 직시하기 시작하면서 꿈을 재조정하고, 아니 그조차 아예 상실해가며 어찌됐던 숨 쉬고 있는 것이다. 더 이상 아플 일도 없고, 상처받을 일도 없을 것 같으면서도 생각지도 못했던 수많은 일들에 역시 또 그나마 버티고 있던 생의 의지마저 강탈당하는 기분을 매번 겪곤 한다. 내심 기특하기까지 하다. 얼마나 더 후드려 패야만 항복할래 하는 엄포에 익숙해 진냥 우린 아무렇지 않게 여전히 살아간다. 아무일이 있건, 아무일이 없건 말이다. 

 그럼에도 아직 충분히 일할 나이기도 하거니와, 꿈도 제대로 영글지 않고, 일한 만큼의 댓가 역시 제대로 만져보지 못한 수많은 사람들 중, 모든 것을 그저 내려놓아야 하는 경우도 있다.  먹여살 일 처자에 가족이며, 동료, 식구들이 주렁주렁 매달려있는 하나의 목숨에 불현듯 생각지도 못한 일이 닥치거나, 잠식해 들기도 한다. 

 그게 무엇이라도 사람을 쓰러뜨리기에 부족함이없어 보이는 까닭에, 우리는 그간에 다져놓은 전투적인 짬 마져 고갈되기를 두려워하지 않고 남김없이 퍼부어가며 오늘을 살아낸다. 

 작은 것 하나에서 틀어지기 시작하면, 전체가 무너지는 것은 시간 문제라고 누누이들 얘기한다. 그럼에도 그 작은게 어떤식으로 우리를 치고 들어 올지는 감히 예측하지 못하는 게 또한 인간이다. 결국엔 감지를 하건 못 하건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내가 아무리 조심하고 살핀다고 한들, 일어날 일은 결국 일어나고야 만다. 마치 그럴 걸 알고 있었다는 듯이, 태연한 척 받아들이면 그만이다. 호들갑 떨 일도 아니고, 안절부절 할 일도 아니다. 가끔은 정말 큰 일이 터졌을 때, 어찌하면 좋을까 머리가 하얘지고 했던 기억을 떠올려만 봐도 알 수 있다. 

 그냥 받아들이고, 시간이 지나가기를, 그 시간을 아무렇지 앟게 흘려 보낼 수 있으면 되는 것이다. 아무렇지도 않다고 생각하면 정말 아무렇지 않을 일들을 코끼리처럼 한껏 부풀려 날 짓이기고 갈 것을 두려워하곤 한다. 사람은 겁이 많은 동물이지만, 겁이 많기 때문에, 우리를 보호하는 방법 또한 알고 있다. 잠시 우왕좌왕, 정신줄 놓고, 이번 생을 원망하고, 분통 터뜨리며 가슴을 치고 땅을 치겠지만 말이다. 

 눈앞에 닥치면 그간에 쌓여온 우리의 짬을 믿을 수 밖에, 놀라지 말고, 당황하지 말자. 시간은 분명 흘러간다. 그리고 지겹도록 듣는 얘기, 이 또한 지나간다. 가는 그 뒷모습을 아무렇지 않게 배웅해 주자. 쿨한 당신이 되자. 이 더운 여름, 쿨하지 않고는 배겨날 재간이 없다.      


 영원히 벌어져있는 상처란 없다. 봉합하고 꿰매는 몫은 결국 나 자신이다. 주변인들의 도움으로 기운을 내서 아물게, 잘 아물수 있도록 집도하는 건 어느 누구도 아닌 나, 살아있는 나 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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