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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침엔 샴페인 Apr 22. 2023

우성과 열성 사이

 우생학적 사고에 기초했다면 난 이미 이 세상에서 자취도 없이 사라져 버렸을 것이다. 그럼에도 아직까지 끈질지게 살아가고 있는 건 분명 이유가 있을 테니, 묻지 않겠다. 

 앞으로 살아가면서 하나 둘 씩 깨닫게 될 나의 우수한 형질에 대한 깨알같은 정보는 하루하루를 살게하는 동력이 될 것이다. 지난 세기를 돌아보면 분명 역사는 우리에게 가르쳤다. 폭력과 강제로 인해 제거되어야 했던 수많은 열성인자들의 삶을 목도하며 과연 지금 살아있는 우리는 진정 우성인자들의 집합체인가. 그렇게 믿고 싶다. 

 지구가 살아 숨쉬는 유기체라는 가이아설에 입각해서 볼때 지구가 살기 위해, 지구 스스로 질병이나 재해 바이러스등을 일으켜 인류 중 아무나 추려서 반타작 하는 세상이 진짜 아닐 다음에야, 아니 혹시 또 모를 일이다. 

 아니면, 적자생존의 원칙하에 환경에 가장 잘 적응한 생물이 살아남는다고 볼 때,  과연 이쯤에서 나는 적자중의 적자인가도 묻지 않도록 하겠다. 

 여기서 강자인지 약자인지 중요하지 않다. 그저 주어진 환경에서 유리한 유전인자를 가진 개체가 그렇지 않은 개체보다 생존률이 높아진다는 걸로 보아컨대, 이 ‘자연선택’된 인간들의 세상에서 우리는 지금 함께 살아가고 있는 중이다. 

 진행형이라 얼마나 다행일까 싶다가도, 언제 한사코 제거 된다 한들 크게 미련둘 일도 아닌 듯 싶다. 태생이 열등하거나, 환경을 뚫고 올라서지 못할 만큼 형질이 열세하다면, 평생을 다바쳐 노력한들 노력만이 빛을 발할 뿐 결과는 이미 지구 위 제거대상 영순위 일지 모른다. 

 그럼에도 뼈를 갈고 이를 갈며 악다구니 쓰며 살아내는 우리의 삶은 분명 가치에 준하여 1순위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고 이 땅에서 박멸한다면, 벌레와 다를 바가 무엇일까 스스로에게 묻고싶다. 이제야 질문을 던져본다. 

 이미 제거 대상 영순위에 빛나는 위엄을 안고 사는 이 삶에 내가 살아야 하는 명분은 별다를 게 없다. 적자가 되기 위했던 처절한 몸부림도 기억해내 본다. 그런 때도 있었다. 실컷 쏟아부으면 그만큼 돌려 받을 수 있었던, 시간의 정직함이 고스란히 내몫이였던 시절, 그래서 하루하루가 고되도 고된만큼 보람있던 순간들 말이다. 

 지금은 아무리 해도 환경이 바뀌질 않는다. 이미 굳어버린 열성 인자들 구석구석으로 미래는 힘없이 스며든다. 무섭도록 치밀한 지구의 계획일까. 아니면 신의 계략일까. 아무튼 모르겠다. 가장 최후까지 살아남을 만한 뛰어난 유전인자는 분명 아님을 매일매일 깨달아가는 이 순간에도 나는 살아있고, 살수 있다. 살아야만 한다. 

 벌레가 아님을 스스로 증명해야 한다. 최상의 포식자까진 아니여도... 지금 숨쉬는 이 순간, 나는 나의 유전자를 조작하는 조물주가 되겠노라 다짐해본다. 나의 열악한 환경이 나를 단련한다. 나는 나를 끝까지 강화해서 에프킬러 앞에서도 당당할 수 있도록. 이번생은 진행 중이고...끝나지 않았다. 아직은 여간해선 끄떡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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