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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침엔 샴페인 Oct 20. 2023

프롤로그


  아침에 일어나 부스스한 몰골로 눈도 제대로 못뜨고 폰을 먼저 찾습니다. 알람이 울리면 제깍 일어나는 법 단 한 번이 없습니다. 알람이고 무엇이고 암막 커튼 속에 해가 중천인지도 모를 때가 일상일 때도 있었습니다. 

 요즘은 뉴스를 보기가 겁이 납니다. 지난 주만 해도 벌써 5명 이상이 극단적을 선택으로 생을 달리 했다는 기사를 접했습니다. 이렇게 날이 좋은데, 햇볕이 따가울 만큼 눈이 부신 어느 날 나와 아무런 상관도 없는 사람들의 자살 소식을 들으면, 그날 하루는 저에겐 온종일 비가 내립니다.

 ‘극단적인 선택’이란 걸 보는 순간부터 가슴이 덜컥 내려앉습니다. 일면식도 없는, 길 가다 마주치기라도 한 적이 단 한 번도 있을까요? 본 적도 들어본 적도 없는 사람들은, 그냥 그렇게 저 하늘의 별이 되었습니다. 

 얼마나 마지막 순간까지 자신을 구하려 애썼을까요? 눈물겨운 시간 속에 외로웠을 그들을 떠올리면 가슴이 아픕니다. 그저 아프다는 말 밖엔 달리 표현이 안됩니다. 다들 너무 착해서 그랬을 겁니다. 너무 착해서 이 오염된 세상에선 제대로 숨 쉬며 살수가 없는 게 확실합니다. 그래도 조금만 더 살아보지, 조금만 더 힘을 내보면 어땠을까. 나 같은 사람도 아등바등 살아보겠다고 꾸역꾸역 삶을 이어가는데, 이름모를 죄책감마저 듭니다. 

 저는 나이가 들면 어릴 때보다 덜 세상이 힘들 줄 알았는데, 살아보니 정말 그건 더더욱 아니더군요. 어릴 땐 어린 덕에 힘들고, 나이가 들어간다고 몸이 신호를 보내 오는 순간부턴 시간보다 더 빨리 달리는 기분이 듭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캄캄한 골목길을 손으로 더듬더듬 하며 벽을 잡고 가는 기분, 그렇게 외로운 시간을 보내는 모든 분들을 위해 감히 제가 쓴 책을 이제야 세상에 내놓고 싶어졌습니다. 

 저는 대학과 대학원에서 영문학을 전공했습니다. 타인에 대한 깊은 공감과 이해를 하는데 문학이란 장르는 저에게 많은 영감을 주었습니다. 물론 현실은 그보다 더 잔인하게 우리를 사방팔방 에워싸고 있는 게 맞습니다. 분명 지금 살고 있는 모든 사람들이 작품 속 주인공들보다 더 치열하고, 더 아픈 것 같습니다. 동시대를 살아가고 있기에 그들의 절절한 고통이 전해져 옵니다. 

 저 또한 녹록치 않은 상황들이 복병처럼 덤비는 시간 속에서 폭탄 터지는 경험에 이골이 날 지경이기도 했으니까요. 뒤통수, 옆통수, 앞통수가 마를날 없는 사람들이 어디 이 지구상에 저 하나 뿐 이겠습니까.

 이젠 더 이상 뉴스에서 사람들의 그 안타까운 마지막 선택에 대해 보기가 두렵습니다. 

 청춘, 중년, 노년의 어느 한 구간에서 분명 우리는 죽을 듯이 힘든 때를 맞이합니다. 어느 한 구간이면 그래도 다행일까요. 매 순간 숨을 쉴 수가 없어서, 그저 편하게 숨 한번 크게 쉬고 싶은 사람들은 인공 호흡처럼 언제가도 이상하지 않을 이 생의 바짓가랑이를 부여잡고, 기를 쓰고 살아갑니다.

 그 들숨 속에 살고 싶단 의지가, 날숨 속엔 평온함이 새어나오길 간절히 바랍니다.

 그들이 너무 빨리 저 하늘의 별이 되지는 않기를. 그들의 까끌까글한 목구멍에 밥 한숟갈이라도 넣을 수 있기를, 그래서 다시 한번 예전처럼 웃을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래봅니다. 

 그래서 달리는 대교 위에서 오픈카를 모는 것처럼 신나게 소리 지르며 바람을 즐길 수 있기를, 건물 옥상 위 골드 빛 큰 달과 초롱초롱한 별을 오롯이 느낄 수 있기를, 텐트 속에선 따뜻한 온기를 온전히 만끽하며 자연을 향유할 수 있기를, 그리고 손 때가 묻어있는 물건들 가득한 방 안에선 그 주인으로서 더 나아질 수 있는 자신을 다시 만날 수 있기를. 

 아침에 눈을 떴을 때, 창문 가득한 해의 찬란함에, 그리고 어둠이 깔리는 달의 신호에도 질식해 죽을 것만 같은, 지옥같은 하루를 보내고 있는 모든 분들께 바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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