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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침엔 샴페인 Oct 20. 2023

넌 나에게 목욕값을 줬어.

 넌 나에게 모욕감을 줬어.

그래 넌 나에게 목욕값을 줬다. 뜨거운 사우나에가서 땀 뻘뻘 녹여 내거나, 시원하게 찬물 한바가지 뒤집어 쓰고 싶을 때가 딱 요때다. 

일하다 보면 별의 별 인간형을 다 만나게 되지만, 매 순간 승질대로 했다간 그나마 간신히 매달려있는 목이 자리이탈을 서슴치 않을 것이다. 목까지 치미는 울화와 분노를 꿀꺽 삼키고 입꼬리를 하늘 높이 승천시킨다. 뒤돌아 쓴웃음을 만개할지언정 제자리에선 그저 고분고분 최대한 부드럽게 무마시키려고 정말 쥐어짜고 또 짜본다. 노력하다보면 이것도 어느정도 노하우가 생긴다. 서비스직에 있는 모 언니는 높은 자리에 올라가기까지 엄지손가락 안쪽 여린 살 위에굳은 살이 우뚝 박혀있다. 고객을 응대할 때마다 더 이상 참을 수 없는 경지에서 그곳의 부분을 손톱으로 쥐어뜯으며 아픔으로 분을 삮인다고 했다.

 누구나 각자의 신박한 수단들 하나쯤은 있을 것이다. ‘너는 떠들어라 나는 노래나 부를란다’ 고개는 푹 숙이고 있으면서 속으로는 좋아하는 노래 몇 소절 복창을 하거나, 아예 결재서류 들고 들어갈 때 귀마개를 착용하는 사원도 본 적이 있다. 

 사람 죽고싶게 만드는 것 중에 이것이 단연코 최고일 것이다. 치욕스럽게 만들어 버리는 것.  인격이란 온데 간데 없고, 인간 이하의 취급을 자행하는 것. 모욕감에 치를 떨리다 못해 나중엔 머리가 멍해져버리는 상황. 

 우리는 매일매일 겪고 살고 있다. 아니라면 거짓말이다. 아니라면 그 인생 참 자알 살고 있는 것이다 라고 하기엔, 남녀노소 지위여부에 상관없이 누구나 한 번쯤은 잠 못 드는 밤, 아니 날밤 지새우는 걸 수시로 맞이했을 일이다. 

 똥이 무서워서 피하나? 더러워서 피하지! 하면서도 내심 속은 썩을대로 문드러져 버려 그 악취에 머리가 지끈거릴 정도다. 우린 참 그러고 보면 인내심 하나는 어디 내놔도 뒤지지 않을 것 같다. 가끔은 당하다 당하다못해 한번 고개들어 받아버리고 싶은 심정이 무한히 샘솟지만, 사는게 또 맘처럼 쉽게 하늘에서 돈이 떨어지는 것도 아니고, 누가 대신 일해줄 것도 아니니깐...그냥 나죽었고 나 잡아잡수쇼 하고 묵인하고 다 받아주는 거다. 우리도 속은 다 있다. 없는척 하고들 사는거지.

 ‘타면자건’ 이란 고사성어를 들어본 적이 있는가. 남이 내 얼굴에 침을 뱉으면, 바로 발끈해서 되뱉어 주는 것이 아니라, 그 침이 저절로 마를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라고 한다. 모욕감을 이기는 또 다른 최상의 수단이 바로 그 모욕감을 참고 이기는 것.

 말만 들어도 신의 경지 일 것만 같다. 타인의 갑질과 도를 넘는 언행에서 나 자신을 보호하는 길이 그와 장단을 맞추는게 아니라, 뱉어진 침이 자연히 마를 때까지 그냥 얼굴을 그대로 들고 다닌다는 게,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은 결코 아니다. 그래. 맞장구 치며 뱉어준들 그 순간 그와 똑같은 사람 밖에 더 되겠는가. 

 하지만 우리가 받는 마음의 상처는 쉽게 아물지 않는다. 자존심이 사망하게 되는 순간에도 우리가 끝끝내 살아가는 이유는 다른 게 아니다. 죽음을 택하지 않는 까닭은 그러지 못해서가 아니다. 죽음으로써 그 모욕감과 치욕을 갚는다는 게 무슨 일본의 사무라이 시대에서나 볼 수 있는 무사도 아니고 말이다.

 분탕질을 하기 위해 원한에 사무쳐 보여주기 식으로 명예를 지키기 위해 모욕을 당할 때마다 할복을 마다하지 않겠는가? 기름을 뒤집어 쓰고 다 태워 버리고 싶은 맘, 억울하고 그래서 죽고 싶을 만큼 굴욕적이고, 숨이 쉬어지지 않을만큼 살고 싶은 맘이 없어지는 순간이다. 그럴때마다 칼을 그어댔다면, 약을 털어 넣었다면, 라이터불을 켰더라면, 우리가 그렇게 살았다면, 이미 인류는 멸종되고 없어졌을 것이다. 

 오히려 살아서 끝까지 그 모든 것을 참고 이겨내는 힘, 일상에서 아무렇지 않게 감내하며 살아가는 것. 그것이 몇 백 배 더 대인배이고, 용기있는 행동일 것이다. 죽지못해 사는 게 아니라 살기위해, 사람답게 살기위해 우리는 참는 거다. 

 옛날에는 ‘구형’ 이라는 형벌이 있다고 했다. 남성의 생식기를 자르는 것인데, 보통 선비들이 그 형벌을 받으면 살기를 마다하고 죽음을 택했다고 한다. 하지만, 우리가 늘 역사책에서 빠지지 않고 듣고 봐 왔던 명저 <사기>의 저자 사마천이 바로 그 형벌의 주인공 이기도 했다.  그는 이 치욕스러운 삶을 견디며 결국 130권의 불후의 명저로 일컬어지는 <사기>를 완성하였다. 사마천 뿐만 아니라 역사에서는 차라리 죽음으로 생을 마감하는 편이 나을 법 했을 상황에서도 지지 않고 치욕과 모욕을 참아내며 후세에 전해지는 위인들도 많이 있지 않은가.

 우리는 그래서 지금 그 역사에 동참하고 있는 중이다. 누가 나에게 씻을 수 없는 모욕감을 준다면, 씻을 수 있는 목욕값을 준 것처럼 사우나나 가야겠다. 시원하게 털어버리고 내일을 또 살아가면 된다. 다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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