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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침엔 샴페인 Oct 20. 2023

아, 애매한 재능이여

 하루라도 책을 읽지 않으면 입안에 가시가 돋힌다는 말씀이 더러 이해는 간다.

하루라도 운동을 하지 않으면 몸살이 날 것 같다는 운동광의 끔찍한 부지런함 역시 말그대로 광기로 느껴지지만, 충분히 그럴 수 있다고 본다. 

 하루라도 글을 쓰지 않고는 못배겼던 수많은 작가들과 하루라도, 무엇이라도 그려넣지 않으면 안됬을 화가들의 열정도 마찬가지다. 열정이 아니라 그렇게 해야만, 할 수밖에 없는 사정과 사연 역시 있었겠지 싶다.

 백프로 그렇게 몰입 하는게 좋아서, 행복해서 그러지만은 않았을 것이다. 때론 좋은것도 질리고, 물릴 수가 있는데. 마음처럼 안되는, 욕심처럼 안되는 늘 나를 내리누르며 옥조이는걸 마냥 사랑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래서 재능이란 어찌보면 무조건적으로 과도하게 부여된 능력인지라 그저 선물이라 여길 수 밖에 없을까, 그들은 오히려 저주에 가깝게 느꼈을지도 모르겟다. 어제의 나보다 오늘의 나는 조금더 발전해있어야 한다는 자신과의 싸움, 이 나를 만들어내는 창작의 시간은 바로 고통과 다를 바 없다. 

 간절한 염원 끝에 얻게 되는 능력을 주실 거면 차라리 순간이동 등의 초능력을 주실것이지, 끊임없이 갈고 몸이 부서져라 닦아야 비로소 빛을 발하는 능력을 주시는 건 참으로 얍삽할 뿐이다. 공짜는 없다 그건가. 그런가부다. 

 이 훌륭하고 좋은 걸, 만인의 찬사와 명예와 부를 단박에 안겨줄 유일뮤이한 능력을 그냥 줄 수는 없지 않은가. 영예롭게 평생을 누릴수 있도록 살아있는 동안은 뼈와 살을 푹푹 고아 삶아낼만큼 노력한 댓가로 옛다 받아라 던져주나부다. 치사하다고 하기엔 꽤나 공평한 처사다. 

 누가 주관하는지는 각자 믿는 신들에게 물어보는 것이 좋겠다. 아니라면 그냥 나처럼 무신론으로 일관하는 사람은 타고난 핏줄을 거슬러 올라가보거나, 아니면 역시 DNA 속을 헤집어볼 일이다. 대대로 내려오는 무언가가 나한테도 왔거나, 아니면 전혀 다른 돌연변이의 탄생일지도 모를테니.

 그럼에도 ’성실하게’ 빛나는 유전 인자 만이 특출난 능력을 만들어 준다는 건 변함없는 사실이다. 굳이 가설과 증명이 필요없다. 더 많이 나를 죽였다 살렸다를 몇 백번 몇 천번 해야하는 그 성실함이 분명 내재되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애매한 재능을 타고났어도 꾸준함으로 밀어붙이면 분명 보통보단 훨씬 나을테고, 물론 이건 해봐야 알겠지만, 아무것도 안하는 사람보단 뭐라도 얻어지는게 있지 않겠는가. 

 백지에 점 하나라도 떨어뜨리려는 노력만으로도 화가가 되고싶어 하는 열정의 시초라 감히 부르고 싶다. 그러니 타고난 사람이 어떠한 식으로라도 ‘미친 듯이‘ 해 버린다면, 그건 정말이지 말릴 재간이 없다. 그래서 천재들의 광기는 언제나 경외심을 불러 일으킨다. 

 그냥 원래 그렇게 만들어진 사람은 없다. 단지 조금 남다른 관심과 체질적 우위도가 뛰어났을 뿐, 그 뒤에 주어지는 시간과의 싸움에서 완전이 판이 바뀌는 건, 이것이 바로 ’운명‘ 이지 않을까. 그렇게 주구장창 종일토록 앉아서 온몸의 관절을 다 포기해가며 글을 쓸 수 있을까, 그림을 그릴 수 있을까, 악기를 연주할 수 있을까, 하루에 절반 이상을 몇 시간씩 몇 년을 빠짐없이 그렇게 소모되는 체력과의 전쟁을 치루며, 나를 끌어내는, 처음엔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나의 엑기스를 기어코 얻어내는 동력은 대체 무엇일까. 

 열정은 그냥 열정이라고 부르기에도 손 대면 데일 만큼 눈을 부라려 댄다. 그 많은 사연과 사정이 과연 무엇인지 알 수도 없지만, 알 이유도 없다. 그들이 이루어낸 성공 스토리에서 우리가 찾을 수 있 는건 다 하나다. 그저 지금의 내가 그들과 ’엄청나게‘ 다르다는 거.  

 우리의 운명을 차갑게 꾸짖어야 한다. 넌 지금 무얼하고 있는가. 난 지금 무얼 하고 있는가. 우린 대체 여기에서 지금 무얼 하고 있는 것인가. 알고 싶다면 ’성실하게‘ ’미친 듯이‘ ’엄청나게‘ 나를 죽이고 살리고 그렇게 자멸과 환생을 거듭하며 살아야 한다.  

 말 만으로도 지치고 피로하다. 그걸 죽을 때까지 한 사람 만이 살아남는 것이다.  그것이 곧, 그들을 불멸의 길로 이끄는 것이다. 우리는 그들의 이름을 결코 잊지 않는다. 지금 나와 그리고 당신은 무얼하고 있는가. 게으르고 나약한 중생모드로 오늘하루도 안전히 살아가는 고귀한 생명이신 나 그리고 그대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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