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 쓰레기? 아님 넌 어떠니?
꼴랑 믿는 것 중 하나는 그나마 나은 인격 아닐까 싶다가도 어느하루 그마저도 와르르 무너져버리는 날엔 참말이지 살맛이 뚜욱 떨어지곤 한다.
뭐 딱히 특출날 것도 그렇다고 지지부진할 것도 없는 나의 삶 속에, 내가 가진 것들을 가만히 생각해보면 그래도 인격은 좀 자신있다한 부분이였는데 말이다. 처음과 중간과 끝이 똑같아서 두 얼굴도 아니고 세 얼굴도 아닌 그냥 담백한 인간임을 자부했는데...최대한의 양심을 소지하고 있다는 것 만으로도 스스로 뿌듯해 하며 자랑스럽기까지 한 나인데 말이다.
인간의 격이란 별 다를 게 없다. 그냥 사람으로서 가장 기본적인 것만 잘 지키고 살면 되는데, 이게 그렇게 힘이 부치게 되는 인생을 살기 시작하면 그때부터 꼬이는 건 시간문제다. 아니 이미 꽈배기와 한몸되어, 격 떨어지는 건 눈 깜짝할 사이에 벌어진다.
어느샌가 인간으로서 실격처리 되버리는 수가 있음에 적잖이 겁을 먹어야 함에도 뭐 그럴수도 있지, 당당하게 나를 합리화시키는 횟수가 빈번해지기 시작한다. 그러다 보면 뭐 쓰레기 분리수거함에 내발로 내가 성큼성큼 향하게 되는 되돌릴 수 없는 인간상으로 거듭나게 되는 것이다. 오랜 시간이 걸릴 것 같지만, 생각보다 빠르고, 민첩하게 우리는 변해간다. 정신은 그렇게 순식간에 육체를 압도하며 썩어들어가기 시작한다.
억울한 노릇 아닌가. 갈수록 괜찮은 사람으로 변해갈 수 있음에도 그 좋은 기회를 스스로 마다하고, 인간으로서의 자격을 알아서 박탈해 버리는 멍청한 짓을 서슴없이 저지르다니 말이다. 눈앞에 나에게 이익이 될 수 있는 것들이 보이면, 우리는 냅다 뛰기를 두려워 하지 않는다. 진지하게 생각할 시간에 일단 발부터 내딛는게 수안 좋은 거라고, 행동하는 지성이길 바라며, 그렇게 앞으로 앞으로 무조건 달려나간다. 결과가 좋으면 말그대로 좋은 거겠지만, 돈과 명예와 기타 얻을수 있는 것들이 손에 들어오기 시작하는 순간, 우리는 급기야는 스르르 놓아버린다.뒤집히는건 눈뿐만이 아니라, 정신도 180 회전을 완벽하게 일궈낸다. 사람으로서의 기본을 말이다. 누구도 제대로 말을 해주지 않기에, 아니, 말을 해줘도 들으려하지 않고, 보려하지않으니 아무 소용없는 주변의 그저 질투와 오지랖 일 뿐으로 치부해 버리기 일쑤다.
사람 망가지는 건 정말이지 순삭으로 진행한다. 그래서 주변에 사랑하는 사람이 포진되 있어야 그나마 바닥을 치는 걸 면할 수 있겠지만, 일단 올라갈 데로 올라가 버린 눈높이는 죽음이 위협하는 순간에도 절대 내려올생 각이 없다.
세상이 얼마나 빠르게 바뀌고 있는가. 사람도 역시 그와 함께 레이스를 펼치며, 숨가쁘게 변해간다. 오로지 자신만 그 사실을 모른척 하고 있을 뿐.
나는 몇 년 전의 내가 떠오르지 않는다. 그땐 그래도 좀 인간적인 구석이 여러모로 있었던거 같은데, 이젠 남의 사정 따윈 굳이 듣고싶은 생각도, 알고 싶은 마음이 없다. 나 살기에도 두 손 두 발이 얼마나 고생을 하는데, 내 머릿속까지 남의 사연들로 점령당하고 싶은 맘은 추호도 없기에, 나의 생존에만 목숨을 걸고 죽어라 뛰고 있는 셈이다. 너무 단순한 사실을 잊어가는 건, 내가 갈수록 단순한 사람이 되고 있어서 일거다. 나만 살면 되고, 나만 잘 지내면 되고, 나만 이 삶에서 얻어낼 수 있는 걸 쟁취하면 된다. 그거면 된다. 정말 그거면 되는가.
인간은 절대 혼자 살 수 없다는 사실이 교훈이 되는 순간부턴 이미 우리의 잘못은 뼈아프게 다가온다. 나만의 두 다리로 열심히 뛴다고 생각하지만, 그거야말로 큰 오산이다. 우린 이미 이인삼각으로 사람들과 묶여있으며, 또한 한팀 으로 머리를 모아 힘을 합쳐 줄을 당겨야 간신히 이길 수 있을 만큼 단체전을 방불케 하며 이 삶을 끌고가고 있는 중이다.
때론 배신과 위협이 난무하고, 오해와 불신이 목덜미를 끄잡으며, 내가 먼저 살겠다고 네가 먼저 살겠다고 서로를 밟고 올라서며 난투를 벌이지만, 우리의 살고 있는 삶은 제로섬 게임이 결코 아닐런지도 모르겠다. 내가 10을 얻으면 상대가 10을 잃어야 하는, 상대가 10을 얻으면, 내가 10을 잃어야 하는 승자독식의 게임이 아니란 말이다.
실력과 운이 좋아 또한 타이밍이 좋아 우리는 분명 승자가 될 수 있다. 하지만, 그건 다 나 혼자만이 잘나서 그리된 건 아니다. 뻔지르르하게 여러분 덕분입니다. 라는 말을 달고 사는 그들의 속내는 과연 어떠할까 역시 묻지 않겠다.
패자들의 희생으로 쟁취한 승리 속에 취해, 이미 올라선 자리에선 인간임을 망각한채, 격을 상실한 채 그렇게 올챙이 적 생각 못하고, 포식자로 군림하려 하기 때문이다.
산다는 건 참 힘들다. 뭐 달리 말이 필요하랴. 우리를 정작 힘들게 하는 건 이 삶이 승자와 패자로 나뉘는 게임처럼 느껴지는 게 아니라, 그 게임을 주도하는 우리가 이미 편을 가르고, 서로를 비방하고, 하대하며, 사람이길 스스로 거부하고 있다는 그 사실이다.
이기려면, 얻으려면, 더 많이 가지려면, 더 위로 올라가려면 남들과 똑같아선 안 된다는 신념이 우리의 격을 약금야금 무너뜨리고 있다. 인간성이 결여된 인간은 이미 실격이다. 이 삶이란 게임에서 공평하게 같이 뛸 자격이 없다.
결국 인생 길게 두고 보면, 사실은 어느 누구도 이긴 사람도 진 사람도 없는데 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