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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침엔 샴페인 Oct 20. 2023

암묵적 합의

 말을 아낀다는 건 더 이상 할 말이 없다기 보단 변할 일이 없기 때문이다. 알면서 그리하는 건 생각보다 힘이 드는 일이다. 

하루에도 우리에게 얼마나 많은 일들이 일어나는가. 알게 모르게 신경을 속속들이 자극하는 일부터, 무던히 지나가는 일상이 오히려 낯설 정도이다. 

 일방적으로 우리를 다그치는 불운이 그저 오지 않기를..,그것만 해도 인생 최고의 축복임을 잘 알고 있다. 매일 매일에 힘주어 살다 보면 작은 나무 한 그루에 집착해서 인생 전반의 흐름을 놓치는 경우가 다반사 이기에, 근사한 숲을 이루는 인생의 장관을 늙으막에야 감상해야 하는 치명적인 실수는 언제나 우리의 몫이다. 누구를 탓하기엔 이미 기력은 쇄신하고, 그간의 기억력도 영 쓸모가 없어진 후일테다. 

 ‘어디에선가는 늘 해가 뜨고 이슬은 마르는 법이 없고, 비는 늘 쏟아지고, 안개는 늘 피어오른다. 영원한 일출, 영원한 일몰, 영원한 여명과 박명, 바다와 대륙의 섬에, 차례차례로, 둥근 지구가 돌아가면서...’ 존 뮤어의 글귀 대로 라면 이 삶은 진정 영원할 것만 같다. 

 세상은 정말이지, 억울하게도 나 하나 증발해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을 철면피 그 자체로서도 불멸하지 않을까 싶다. 하지만 잦은 기후의 괴이한 변화와 예상치 못한 바이러스의 등장 등으로, 벽지 위에 분뇨질로 근사한 벽화를 그리기 전까지 이 지구가 버티지 못할까 싶다가도, 지금 누가 누굴 걱정하고 있는가, 네 걱정이나 일단 해라 라고 당부하는 맘이 솟구친다. 

 적어도 우리가 살고있는 지금 이 순간 만큼은 길고 기리라. 인류의 흥망성쇠를 걱정하는 안목에 앞서 매일의 뗏거리 걱정에 매진하는 심도있는 걱정들이 우리를 먼저 막아서고 있으니 눈을 크게 뜨고 하루를 잘 살아내야 할 것이다. 

 있는 힘껏 치켜 떠 봐야 보이는 건 없다. 변하는 것도 딱히 없다. 되다. 되다. 참으로 고되다. 월급 루팡에 통장은 언제나 비상사태로 잔고를 삐뽀삐뽀 울려대며, 포기하고 살아야될게 갈수록 첨가된다. 한 개 두 개, 이러다간 언젠간 목숨줄도 에라 모르겠다 놓아버리는 수가 잇을까바 염려되는 사람들이 늘어만 간다. 

 어차피 죽도, 밥도 안되는 인생. 앞으로도 뭐 그닥일 뻔한 삶. 언제 떠나도 이상하지 않을 지금의 허덕이는 일상이 정말이지 영원 불변일까바 자다가도 눈이 번쩍 떠지는 사람들이 자꾸만 많아진다.  

 사람이 언제나 주구장창 잘나갈 수는 없다. 그리하다면 역사는 얼마나 심심하고 밋밋하며, 삶은 언제나 그럭저럭 살아도 그뿐이다. 

 진짜 삐까뻔쩍하게 그것도 뽀대나게 잘만 사는 사람들도 있다. 마치 물 반 고기 반처럼 인생이 늘 화수분인냥 언제나 손만 뻗으면 재물이 끊이질 않는 사람들의 수안이 마냥 부럽기도 하다. 

 수저론을 따지다 보면 한도 끝도 없을 테고, 좋은 머리, 좋은 환경, 남다른 노력, 치열한 경쟁에서 단연코 순위 쟁탈에서 성공한 소수정예의 그들에겐 아낌없이 박수를 보내지만, 낙오자로 떨어져 나간 힘들어 죽겠을 사람들의 울음소리엔 가슴이 아릿하다. 

 두 개의 구간을 큰 폭으로 오고간 나같은 사람들을 포함, 성공가도를 질주하는 사람들과 반대로 바닥을 향해 폭주하는 광폭한 영혼들의 아찔한 하락엔 사는게 뭐 이런가 그냥 허무해지곤 한다. 

 언제 어떻게 인생이 뒤집어 지는지 어느누구도 알지 못한다. 심지어는 소위 잘나가던, 못나가던 당사자조차 이번 생은 도무지 갈피가 잡히지 않는다. 단 한번 삐끗해서 인생 전반이 욱신욱신 몸살을 앓게 되는 뼈아픈 교훈들만 남기지 않는다면, 그럼에도 아직은 살만하다. 

 설령 이미 그랬다 하더라도, 살아있으니 살만하다. 살아있다고 제대로 사는 게 아닌거겠지만, 최선을 다하는 게 정말 최선인지도 모르겠을 찰나에, 우리는 사실 그때에도 분별없이 그저 하는대까지 해보며 그렇게 살아간다, 

 잘 살고 있는 중이다. 되고 된, 고되고 고된 삶에 툴툴 거리지 않고 말을 아끼며 그렇게 살아간다. 큰 변화의 기대없이 무심한 듯 시크한 우리들의 영혼은 그만큼 조용히 간지가 나는 중이다.

 돈이야 많으면 좋겠지만, 없다고 죽을 목숨이었으면 우리 다 이미 도자기 항아리 속에 한 줌 용각산 되어 자리매김하고 있지 않았을까. 하루에도 몇 번씩 별 일 다 겪고 사는 유난스러운 매일매일, 유난떨지 않고 살 수 있는 그 작은 용기, 그것이 우리가 지금 이번 생을 대하는 태도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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