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춘기 부모를 지키기 위해서는 온 우주가 필요하다.
사춘기 아이를 키우면서 가장 많이 하고 있는 실수가 있다.
아이의 말과 행동을 전부 나와 연결짓는 것.
저 차가운 표정이 나 때문인 것 같고, 저 퉁명스러운 말이 나를 무시하는 것 같고, 문이 쾅 닫힐 때마다 내가 뭔가 잘못한 것 같다.
내 마음을 지키기 위해 조금 다르게 생각해보기로 했다.
아이는 지금 터널을 지나고 있다. 길고 어둡고 좁은 터널. 그 안에서 아이도 방향을 못 잡고 휘청이면서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 화살을 날리는 것뿐이었다. 그 화살의 과녁이 하필 나였을 뿐.
그래서 질문이 바뀌었다.
아이를 어떻게 할 게 아니라, 나를 어떻게 지킬 것인가.
결국 사춘기 아이와의 관계는 아이의 태도가 바뀌는 문제가 아니었다. 내가 얼마나 흔들리지 않고 이 시간을 버티느냐의 문제였다.
아이의 말 한마디에 하루가 무너지지 않을 것. 아이가 문을 쾅 닫아도 내 자존감이 같이 닫히지 않을 것.
쉽지 않다. 매일 실패한다.
그래도 나름의 방법들을 찾는 중이다. 완벽하진 않지만, 나를 조금씩 살리는 것들.
첫 번째는 하나님 앞에 하소연하는 것.
좋은 말, 정제된 기도가 아니어도 된다.
"오늘 너무 힘들었어요. 억울해요. 화가 나요. 왜 저만 참아야해요?"
감정 그대로를 내려놓는 것만으로도 조금 가벼워진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하나님앞에서 아이에 대한 불평을 늘어놓으며 아이를 바뀌게 해달라고 기도를 해도 결국은 내 마음을 바꾸게 하신다. 이게 하나님의 방법인가....
두 번째는 관심을 다른 곳으로 돌리는 것.
일본어 공부를 시작했고, 운동을 한다.
아이 생각이 머릿속을 꽉 채우고 있을 때, 다른 무언가에 집중하는 시간이 생각보다 많이 나를 살린다.
세 번째는 글을 쓰는 것.
브런치에 이렇게 글을 쓰는 게 사실 나를 메타인지하는 시간이다.
내가 왜 화났는지, 무엇이 억울했는지, 쓰다 보면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인다.
나중에 다시 읽으면서도 그때의 마음과 생각을 되짚어보며 돌아볼 수도 있다.
그리고 마지막 하나.
사실 이게 제일 큰 것일지도 모른다.
언제나 내 편인 신랑.
잘하고 있다고, 충분히 좋은 엄마라고 아무것도 묻지 않고 그냥 말해주는 사람.
혼자였다면 훨씬 더 많이 무너졌을 것 같다.
사춘기 부모를 지키기 위해서는 온 우주가 필요하다.
나에게 그 우주는 기도이고, 취미이고, 글이고,
그리고 옆에 있어주는 한 사람이다.
오늘도 그 우주를 끌어모으며 버티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