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끊임없이 나에게 던졌다. 초등학교 다니던 어린아이가 ‘나는 왜 나인가, 나라는 것은 어떻게 표현하고 증명할 수 있을까’를 고민했던 기억이 있다. 나 자신을 정의하는 항목은 지금도 변화하고 있으며 앞으로도 새롭게 채워질 영역이라고 생각한다.
자신이 얼마나 가치있는 사람인지, 다양한 활동을 얼마나 잘 할 수 있는지에 대한 평가적 측면을 ‘자아존중감’이라 한다. 자아존중감이 높은 사람은 자신을 있는 그대로 수용하고, 자신의 약점에 대해서도 부정하기보다는 극복하려고 하며, 전반적으로 자기에 대해 긍정적으로 느낀다. 나 자신과 나의 유능성에 대한 평가인 자아존중감은 어린 시절 부모의 무한 지지와 기대를 받으면서 급상승하다 도시의 거대한 학교 속에서 느끼는 압박과 성적의 곤두박질로 인해 우물안 개구리였던 나의 자아존중감 또한 하향한다. 그러다 고등학생이 되어 점차 성적이 회복되고 복도에 게시하는 성적 순위로 인해 한껏 상승하게 된다. 남들이 나를 성적으로 인정해주는 것에 고무되어 날로 성적은 상승하였고 나 자신이 대단하게 느껴졌다. 세상이 나를 중심으로 돌아가는 것 같은 착각 속에서 나의 미래는 온통 분홍빛이어야 한다는 맹랑한 기대로 결혼을 하게 된다. 당연히 내가 만난 사람은 나의 부모처럼 나를 위해 헌신하고 사랑해줘야한다고 믿었다. 이때까지도 나는 누군가를 진심으로 사랑하고 돌보는 것에 대해 관심이 없었고 방법 또한 몰랐었다. 내가 해내는 것들에 대해 인정받고 내가 하고자 하는 것에 대해 당연히 따라주는 것이 맞다고 생각했다. 결혼 후, 나와 비슷한 사람을 만나 매일이 전쟁처럼 불안하고 피곤했다. 누군가와 맞서 싸우고 이겨본 경험이 없는 나는 숨을 곳을 찾았고 그저 그 순간을 피하는 것에 급급했다. 그 시절이 나-세상을 부정하는 암울하고 헛헛한 가장 힘든 때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녀에 대한 책임감과 기대로 내 자리를 지키며 죽을힘을 다해 역할 수행에 충실했다. 성인중기에 이르른 지금은 대학원에서 다루는 다양한 심리적 접근과 자녀 양육으로부터 조금은 자유로워져 나를 돌아볼 여유로운 현실 덕분에 내려가기만 하던 나의 자아존중감은 서서히 나 자신에게 집중되어(다른 사람의 정의나 판단으로부터 자유로워져) 다시 날아오르는 중이다.
‘아동기부터 노년기까지의 전반적 자아존중감의 변화’ 패턴을 보면서 깜짝 놀라 그래프를 보고 또 봤다. 인생에서 65세경에 가장 높은 수준의 자아존중감을 보인다는 사실이다. 지금의 내 상황과 연관지어 볼 때 더욱 기대가 되는 조사 결과이다. 지금의 자아존중감은 부모, 또래의 영향보다 나 자신에 얼마나 더 충실히 귀를 기울이고 관심을 둬 나를 알아가느냐에 달려있다고 생각한다. 나를 알아갈수록 후회와 반성보다는 격려와 애잔함으로 다독이게 된다. 그러면서 나에 대한 평가는 저울질이나 칼질이 아닌 힘든 여정을 함께 한 동지애와 같은 심정으로 최대한 관대해진다. 지금의 나와 이제까지 살아온 나를 하나로 통합시켜 나가는 시기에서 나를 알고 정의내리고자 했던 수없이 많은 모습과 생각이 달랐던 ‘내’가 드디어 한 인간으로 만나는 느낌이다.
더불어, 자신이 누구인지, 자신의 가치가 무엇인지, 자신이 추구하기 위해 선택한 방향이 무엇인지 인식하는 정체성 또한 가장 나에 근접한 답에 가까워지게 될 것이다. 나의 생각과 정서를 먼저 이해하고 알아차리는 능력이 일반화되면 타인을 그렇게 이해하는 능력인 조망수용은 자동적으로 가능하게 될 것이다. 갈등보다는 화합으로 나아가게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