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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미용 Mar 16. 2023

2023학년도, 2학년 6반이닷!   


 3월이 오고 있다, 곧이다, 드디어 3월이 왔다. 

 3월은 설레임 약간과 엄청난 긴장의 달이다. 혹여라도 내 것이 될지 모르는 온갖 시나리오(심지어 뉴스에 나올법한)를 써가며 ‘제발 아니기를’ 바라는 맘이 최고조에 달한다. 올해도 어김없이 개학 전날 잠을 설쳤다. 거의 정확하게 한 시간마다 잠을 깨 시간을 확인했다. 혹시, 늦잠을 자게 될까 하는 걱정 때문이다. 방학 내내 여유롭고 느긋한 아침을 누린 것이 급경각 모드로 전환되어 몸이 먼저 알고 긴장한다. 산뜻하고 청초한 얼굴로 아이들을 만나고 싶었는데 웬걸, 라면 먹고 잔 다음 날처럼 퉁퉁 부었다.     

 

 2023학년도(나에게 뜻깊은 숫자가 되리라)에 만나는 아이들은 2학년이다. 2학년은 초등학교에서 선호하는 축에 든다. 초등학교에서 1학년과 6학년이 가장 고난도의 학년이라고 여겨진다. 6학년은 나름 당근을 제시하는 시스템이 생겨 다행이다. 반면, 1학년은 내가 가장 많이 담임한 학년이라 개인적으로는 so so지만, 시작이 여간 빡빡하고 예측불가의 사건이 발생하기에 늘 신경이 곤두선다. 올해 2학년을 배정받고 감사했다.     

 2월 27일, 새 교실에서 내 짐을 정리했다. 많이 버리고 나눴다고 생각했는데 아직도 한 짐이다. 떠날 땐 맨몸으로 교문을 나서야 할텐데... 두 번에 걸쳐 대형 카트에 가득 싣고 온 짐을 서서히 증발시키리라 다짐한다. 공수래 공수거^^     

 

 요즘 아이들은 모두 어쩜 그리 이쁘고 똘망똘망하고 깜찍하고 귀엽고 사랑스러운지( 더 없나?) 모르겠다. 예전엔 반에 한두 명은 어둡고 왠지 맘이 쓰이는 쓸쓸한 느낌을 주는 아이가 있었는데 지금은 아니다. 아이들이 더욱 귀해지고 있음이 실감난다. 가정에서 부모의 사랑을 듬뿍 받고 9살이 된 해맑은 아이들을 만나니 내심 불안했던 마음이 싹 가신다. 그저 반갑고 설렌다.     

 

 신임교사 시절엔 아이들 이름에 번호까지 한 시간 만에 다 외웠던 것 같다. 처음 만난 날 살갑게  ‘누구야~ ’불러주면 ‘아니, 벌써 내 이름을 안단 말이야?’ 깜짝 놀라던 아이들 표정이 선하다. 언제부터인가. 방학 지나고 학교에 오면 아이 이름이 떠오르지 않아 그저 미소로 ‘난 널 잘 알고 있단다. 절대 이름을 까먹지 않았단다.’하는 표정으로(이름은 부르지 못하고) 인사한다. 이젠 개학하는 날 아침 일찍 출근하여 학생명부를 쭉 훑어보며 아이들 맞을 준비를 해야 한다. 바로 어제 일도 까무룩 다 잊어버리기에 올해 만난 25명 아이들 이름 외우기가 숙제다. 더군다나 요즘 아이들 이름은 한 번에 외워지는 특이한 이름이 거의 없다. 대신 비슷한 이름이 대부분이다. 지우, 지유, 지아, 지안 , 세아, 세하 .... 작년엔 이세아. 박세아, 박세하가 있어서 여자아이 세아는 두세아라고 불렀고(두세아는 그렇게 불리는 걸 좋아했다.) 남자아이 세하는 입을 크게 벌려 ‘하’를 강하게 발음하곤 했다. 올해도 그렇다. 오늘 하루 동안 아이들 이름을 각각 다섯 번은 부른 것 같다. 첫날이라 대답하는 연습도 할 겸 자기 번호도 기억할 겸 계속 이름을 불러댔다. 그럴수록 더욱 헷갈리는 이름이여~~     

 다음 날, 기적이 일어났다. 어제보다 한결 편해진 얼굴로 등교한 아이들과 한 명 한 명 이름을 부르며 인사한다. 이게 무슨 일이람. 아이들 이름을 모두 정확히(성과 이름까지 풀 네임으로) 다 기억이 난다. 어제 먹은 와인이 뇌세포를 활성시킨건가. 아이들은 기쁨과 경이로움이 동반된 환한 표정이다. 나는 나를 격하게 칭찬해 준다. ‘아직 쓸만한데?“     


  잔뜩 어깨에 힘을 주고 아이들에게 너스레를 떤다. 

 ”얘들아, 선생님이 친구들 이름 다 외웠네? 어때?“

 작은 새들처럼 지저귄다. 

 ” 놀랐어요. 좋아요. 대단해요.“

 짐짓 젊잖게 다 알고 있다는 말투로 다시 묻는다. 

 ” 어떻게 하루만에 너희들 이름을 다 외울 수 있었을까?“ 아이들은 잠잠하다.

 ” 선생님은 너희들을 만난 첫날부터 결심한 게 있단다. 너희들을 한 명도 빠짐없이 모두 사랑하기로 한 거야. 사랑하려면 그 사람에 대해 알고 싶거든. 아마 그 마음 덕분에 너희들 이름이 다 기억난 거 같아.“ 내 입으로 나온 말이지만, 참 멋지고 다 맞는 말 같다.      


내게 맡겨진 25명의 소중하고 사랑스러운 아이들아~~~~ 정말로 반갑고, 잘 지내보자구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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