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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미용 Mar 31. 2021

협동화를 그리다.

세상을 배우다.

 가끔 협동화를 그린다. A4용지 30장 정도 나오도록 그림을 펼쳐서 나눈 자료가 꽤 있다. 훌륭한 선생님들은 교육과정과 어울리는 그림을 찾고 한글로 파일을 만들어 전파한다. 만들어진 자료를 사용할 때마다 그 분들 에게 순간의 감사를 보낸다.

채색된 큰 그림을 TV 화면 가득 보여주며
“애들아, 이 그림 어때?”
“이뻐요, 멋져요, 좋아요, ” 아이들의 긍정 정서 덕에 세상이 푸르른것 같다.
한참 그림을 보며 이야기를 나누다, “우리 이 그림 그려볼까?”
“어려울 거 같아요. 저는 못 그리겠어요. 해 볼래요.” 다양한 답이 나온다.
“그럼, 이 그림을 조금씩 나눠서 그려보자. 협동화라고 하는 거야.”
“알아요. 유치원에서 해 봤어요.” 아이들은 아는 걸 입 꾹 다물고 절대 참지 못한다.
“이 그림을 나눠서 그려 볼 거야.” 한 장씩 나눠주면, 아이들은 그새 받은 그림을 서로 맞춰본다.
“자기가 맡은 부분을 정성 들여 색칠해보자. 우리 반 친구들이 각자 그린 부분을 모아보면 어떤 그림이 될지 정말 궁금하다.”
아이들은 큰 프로젝트의 일원이 되어 열심히 색칠한다. 아주 잠깐 숨소리조차 조용하다.
성격 급한 아이는 벌써 내 그림과 붙어있는 부분을 찾으랴, 내 그림 그리랴 분주하다. 무엇을 하든 아이들의 태도는 참 다양하다. 대강 힘들이지 않고 빨리 끝내는 아이, 온 힘을 다 주어 (크레파스를 부러뜨려가며) 한 치의 여백도 허용치 않고 꼼꼼히 칠하는 아이, 자기 것을 빨리 끝내고 자신의 도움을 기다리는 친구를 찾아 봉사하는 즐거움을 누리는 아이 등

 보통은 교실 뒷면 게시판에 교사가 알아서 그림 맞추기를 하지만, 이번엔 아이들에게 맡겨도 될 것 같다. “교실 뒤 바닥에 그림을 펼쳐 맞춰보렴, 예전엔 선생님이 했지만 올해 우리 반 친구들은 스스로 할 수 있을 것 같아.” 칭찬은 참 좋은 당근이다. 춤추게 할 뿐 아니라 아이들 안의 잠재력을 쉽게 끌어올린다.

 한 두 장 그림이 맞춰지면서 “우와!” 환호성이 터져 나온다. 이 때부터 아이들 마음은 다급해진다. 행동이 빠르고 목소리가 큰 아이는 엉덩이를 붙이고 있기 힘들어진다. 아까 그 아이의 소리보다 더 크고 높고 감탄사를 연발한다. 아직까지도 꼼꼼함을 유지하는 아이는 슬금 눈치를 보면서도 자신의 작품에 집중한다. 어른인 내가 봐도 참 대견하고 부러운 자세다. 보통은 완성도는 조금 떨어지더라도 속도를 높여 마무리하고 환호 속으로 들어가는게 대부분이다. 이 때, 놀라운 일이 벌어진다.

 그림을 맞추다보면 연결이 매끄럽지 않거나 빠진 부분이 나오게 마련이다. 아이들은 그 부분의 담당자를 찾기보다 제가 가져다가 부족한 부분을 신속히 채운다. 교사가 알아서 맞출 때에는 볼 수 없었던 감동적인 장면이다. 아이들은 협동화를 그리며 너, 나 따로가 아니라 한 작품을 바라보는 우리가 되어 있었다. 이럴 때 소위 리더쉽을 장착하고 있는 아이가 드러난다. 주인의식이랄까? 자신의 것인 양 온 정신을 쏟으며 친구들의 큰 그림 맞추기를 진두지휘한다. 전혀 도드라 보이거나 강압적이지 않지만 아이들은 자연스럽게 그 아이의 이끔을 받아들이며 한 팀으로 뭉쳐진다. 완벽함을 추구하는 몇 몇 아이 눈에 들지 않는 부분이 있지만 누구도 탓하거나 추궁하지 않는다. 그냥 가져다가 메꾸면 그만이다.

 

 마지막까지 혼신의 힘을 기울여 자신의 그림을 칠하고 있는 아이의 곁에 하나둘 아이들이 모인다 . 빨리 하라고 채근하는  싶더니 누군가의 화이팅이 한 목소리로 모아진다. 친구의 이름을 부르며 힘 찬 격려를 보낸다. 혹시 상처받지 않을까 걱정스러웠던 아이의 눈에 그렁그렁 맺혔던 눈물이 쑥 들어간다. 멀리서 지켜보는  내 가슴이 먹먹해진다. 난 그저 너희들 스스로 해 보라고, 잘 할 수 있을거라고 믿어준 것 뿐인데..

 

세상은 이렇게 사는 거구나..주도적인 성향을 가진 아이는 자연스럽게 지휘하고, 발빠른 아이는 눈치껏 다른 이의 부족함을 채우고, 주위 분위기에 흔들리지 않는 아이는 묵묵히 최선을 다해 제 할 일을 마무리한다. 완성된 작품을 보며 빙 둘러서서 서로를 향해 박수를 친다. 스스로 대견한지 사진을 찍는 내게 "이 사진 엄마에게 보내주세요"라며 여러 명이 부탁을 한다. 협동화를 그리며, 아이들은 한 뼘 더 컸을 것이다. 더불어 나도 세상을 배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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