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 더, 조금 다양하게

익숙했던 닭가슴살에서, 처음 먹어본 소시지까지

by 살쪄도괜찮조

컵밥을 다 먹었던 날 이후,
내가 먹는 것들에도 아주 조금씩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다.
아주 작은 틈이 열린 것 같았다.
그동안 꽉 잠가놓았던 문이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천천히,
하지만 분명히 움직이고 있었다.

나는 오랫동안
정해진 몇 가지 음식만 먹었다.
양념이 하나도 없는 닭가슴살,
기름기 없는 삶은 달걀,
칼로리가 뚜렷이 적혀 있는 도시락.
그 안에서만 안심할 수 있었고,
그 틀을 벗어나면 불안하고 무서웠다.
맛을 느끼는 건 사치라고 생각했고,
‘먹고 싶은 것’보다
‘먹어도 되는 것’을 고르며 하루를 견뎠다.

그러던 어느 날,
마트 진열대에서 닭가슴살 소시지를 봤다.
포장은 귀엽고, 맛도 다양해 보였지만
나는 한참을 망설였다.
‘양념이 있으면 안 되잖아.’
‘기름기가 있으면 어떻게 하지?’
그런 생각들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날은 자꾸 눈이 그쪽을 향했다.
정해진 것만 반복해서 먹는 데 지쳐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매일 똑같은 맛, 똑같은 식감에
내 마음이 먼저 물리고 있었던 걸지도.

결국 나는 소시지를 골랐다.
‘단백질도 있으니까 괜찮겠지.’
‘하나 정도는 괜찮을 거야.’
스스로를 설득하며 집에 돌아왔다.
포장을 뜯고,
전자레인지에 살짝 데운 소시지를 한 입 베어 물었을 때
내 안에서 뭔가 조용히 흔들렸다.

짭짤하고 따뜻한 그 맛.
살짝 매콤하면서도 부드러운 식감.
그 모든 게 ‘맛있다’는 감정보다
‘이걸 먹어도 괜찮다’는 안도감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그 순간,
나는 조금 더 나아가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며칠 뒤엔,
양념이 되어 있는 닭가슴살을 주문했다.
갈비맛, 매운맛, 데리야끼맛.
예전의 나였다면 절대 허락하지 않았을 맛들.
그런데 이번엔 달랐다.
‘맛있으면 안 돼’라는 마음보다
‘이 정도면 괜찮잖아’라는 마음이 앞섰다.

양념된 닭가슴살을 한 팩 데워 먹고 나니
속이 묵직하게 채워졌고,
무엇보다 내 마음이 편안했다.
‘그래, 이제는 이 정도는 괜찮아.’
스스로 그렇게 말할 수 있었던 건
나에게 너무도 큰 변화였다.

회복은 거창한 변화가 아니라
이런 작은 움직임들로 시작되는 것 같았다.
늘 먹던 음식에서 한 발짝,
조금 더 맛있는 쪽으로.
조금 더 따뜻한 쪽으로.
그렇게 내 식탁이 조금씩 달라지고 있다.

오늘 내가 선택한 음식이
내일의 나를 조금 더 편안하게 해 줄 거라고,
이제는 조심스럽게 믿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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