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보니 그렇더군요. 진심 어린 한마디
개 같은 ×, 개만도 못한 ×, 개보다 더한 ×. 이 중 제일 나쁜 ×은 누굴까?
반려견을 소재로 한 TV프로그램을 보면서 문득 든 생각입니다.
애꿎게 못된 것의 비교 기준이 된 개들 입장에서는 억울하겠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충직과 의리로 살아온 개들이, 인간 사회의 추악함을 대신 욕먹는 상징이 되어버렸으니 말이죠.
취기가 오르면 일명 '견공지오륜(犬公之五倫)'을 설파(?)하는 재담꾼 친구가 있습니다.
재치 있는 말이지만, 개들의 다섯 가지 불문율을 지금의 인간사에 비추어 봐도 수긍이 됩니다.
첫째는 지주불폐(知主不吠)로 개는 주인을 알아보고 짖지 않는다는 겁니다.
이는 곧 군신유의를 의미합니다.
권위를 인정하고 존중하며, 책임과 질서를 지키는 자세입니다.
그러나 현실 사회에서는 조롱과 무시만 남았죠.
권위는 무너졌고 자신의 책임은 회피합니다
지도자와 시민, 교사와 학생, 상사와 부하 간 신뢰와 존중은 사라졌습니다.
개도 최소한 주인에게는 덤비지 않는데 말입니다.
둘째는 소부적대(小不敵大) 즉 작은 개는 큰 개를 적으로 삼지 않는다는 겁니다.
이는 장유유서를 비유한 것이죠.
힘 있는 존재는 약자를 배려하고, 약자는 강자의 능력을 존중한다는 겁니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더군요.
약자는 흔쾌히 강자의 능력을 인정치 않고, 강자는 약자를 함께하는 동반자로 배려치 않습니다.
학교폭력, 직장 내 갑질, 온라인 집단 공격은 개의 본능적 질서와 정반대 입니다.
셋째는 모색상사(毛色相似)로 새끼는 부모를 닮는다는 겁니다.
이는 부자유친에 해당합니다.
가족 간 사랑과 유대가 자연스러운 질서임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의 가족 풍경은 단절이라는 표현에 익숙합니다.
인성의 기본은 가정에서 비롯된다 하지요.
부모가 자식에게 감사와 배려를 보여주지 못하면 자식은 이기적 경쟁에만 몰두하게 됩니다.
패륜, 아동학대, 가정폭력이라는 말들이 나오는 이유라는 생각입니다.
넷째는 잉후원부(孕後遠夫), 개도 새끼를 배면 자웅 간에 서로 조심한다는 겁니다.
이는 부부유별입니다.
서로 존중하고 절제하며 가정을 지키는 자세겠죠.
가정폭력, 불륜, 파탄 사례가 매일 신문과 방송을 장식하더군요.
가정의 중심인 부부간의 신의와 존중, 사랑이 사라졌기 때문입니다. 결국 자녀는 부모를 닮게 되겠죠.
개는 본능적으로 절제한다지만, 인간의 욕망과 욕심으로 가정을 아랑곳하지 않기 때문일 겁니다.
다섯째, 일폐중폐(一吠衆吠) 즉 한 마리가 짖으면 뭇 개가 따라 짖는다입니다.
이는 붕우유신을 떠올리게 합니다.
친구 사이의 신뢰와 의리, 우정과 책임이 있어야 한다는 뜻이죠.
그러나 지금 우리는 어떤가요?
의리와 우정은 나의 이익 앞에서 배신으로 뒤바뀌게 되었죠.
또한 진실을 따르기보다는 가짜 뉴스에 동조하고,
서로를 북돋우기보다는 여론몰이와 집단적 폭력으로 번집니다.
개들의 합창은 경계와 보호의 신호인데, 인간의 합창은 혐오와 배제의 굉음이 되었습니다.
친구의 썰(?)이 그럴듯하게 들리지 않나요?
한마디로, 개들이 어줍잖은 사람보다 낫다는 겁니다.
어지러운 세상을 빗댄 재담인 줄 알면서도 부끄럽게 하는군요.
인간답지 못한, 인륜을 저버린 패륜아(悖倫兒)들에겐 개한테 배우라 하고 싶습니다.
더불어 살아가는 터전을 어지럽히고, 예의와 공경은 아랑곳하지 않으며, 신의는 짓밟고,
비릿한 냄새로 발정(?)을 과시하는 하찮은 미물을 개와 비교할 순 없지 않습니까?
개들도 ‘인간 아닌 인간’이 자신들과 비교되는 것을 매우 언짢게 여길 겁니다.
아마 개들끼리는 ‘사람 같은 ×’이라며 비웃고, 조롱하며 멸시할지 모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