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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포텐조 Feb 20. 2024

악법이라 말하기 전에

성장일기 벽돌시리즈 188

성장일기 벽돌시리즈 백팔십 팔 번째


서약, 맹세 혹은 선서는 효력이 있는 것도 있고 없는 것도 있다. 그 이전에 앞서 선서 혹은 맹세라는 것이 근본적으로 어떤 의미가 있는지 상기할 필요가 있다. 예전에는 의례라는 차원에서 볼 때는 쓸데없는 허례허식이라 생각하기도 했었다. 하지만 마음을 다잡기 위한 이런 공간, 물리적 차원의 의미부여는 굉장히 중요한 이벤트이기도 해서 "결코 무시할 수 없는 것이구나"라고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루틴이라 말할 수 있는 의례가 있다. 스포츠계에서 선수들마다 본격적으로 경기 직전 자기만의 동작을 취하는 경우가 있다. 헤드셋을 쓰며 노래 들으며 입장한다거나, 코를 몇 번 만지고 옷깃을 잡아당긴다거나 발을 몇 번 흔들고 엉덩이를 흔들면서 방망이를 움켜쥔다거나 등등 이미 짜인 자기만의 의례는 강력한 심리적 압박감속에서 안정감을 준다. 그런 의미에서 볼 때 자기만의 의식을 만드는 행위가 무시할 수 없는 굉장히 중요한 수단임을 인식을 하는데, 하물며 모두가 공유하는 이벤트속의 의례라는 것은 그 파급력이 상당하다.


그래서 요 근래 말도 많아지고 탈도 많아지는 의료계 파업사태에 대해 수많은 해석과 의도가 엇갈린다. 정치적으로 해석하는 경우와 현실적인 경우로 해석하는 경우도 있고 각자만의 입장들이 여럿 존재하지만 그 사이에 낀 사람들이 수술을 못 받는다거나 생명을 담보로 맡긴 채 싸움이 멈추기를 기다려야만 한다. 속된 말로 밥그릇 싸움을 위한 투쟁이라 말하기도 한다. 의사의 본분을 다하지 못하고 있다는 의견도 있다. 어떤 양 입장 중 하나를 택해서 말하는 것이 다른 입장에겐 상처가 될 수는 있지만 그래도 일반인 중 한 사람으로서의 느끼는 점을 이야기해본다.


의료계 현장이 열악하고 정말 갈아넣는다는 수준의 직업적 고충이 심하다는 것도 알고는 있다.

의사가 히포크라테스의 선서를 하는 것은 마찬가지로 대통령이 취임식 선서에 임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흔히 국기에 대한 맹세가 그냥 손만 얹었다가 지나갈 수 있는 시간이자 단일성 이벤트이기도 하지만 한 번이라도 왜 당신이 이 자리에 있는지, 당신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상기시키는 중대한 사건이기도 하다. 그래서 법만 가지고 늘어지는 의사들이 그 이전에 앞서 이런 맹세를 어긴다면 정말 제대로 된 의사가 맞는지 고민해 보게 된다.



지금 당장은 태도니 뭐니 가져다 치워버릴 순 있다. 구속되지 않는 "윤리"의 차원이기도 하니까. 하지만 비유를 들어 동네에서 매일 욕하고 다니고, 사람을 같잖게 여기는 어떤 이를 "도덕"적이지 못한 사람, 매너는 시장바닥에 가져다 판 사람이라고 생각하듯이 그 사람이 법을 위반하지 않는 이상 당장 어떻게 할 수는 없지만 장기적인 관점으로 봤을 때 이런 사람과 계속 연을 맺는다거나 약속을 할 수 있을 것인가?


신뢰라는 측면, 특히 직업적 아니면 그토록 환장하는 경제적 측면에서 볼 때 신뢰, 신용은 내외적인 이미지로 굉장히 중요한 절대조건이다. 그런데 객관적인 수치를 제시하며 이 정도는 증원해야 한다는 지표에 대해 앞으로 늘어날 경쟁자들을 생각하면 의사들 입장에선 당연히 탐탁지 않을 수 있고 열받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지금 당장 자기가 했던 서약 내지는 신뢰를 저버리고 이런 행동들을 하겠다고 하면 환자들 혹은 고객들 입장에서 얼마나 좋은 이미지를 심어줄 수 있을지 참으로 의구심이 든다.


잘 알지는 못하지만 정부 정책 반영은 공식적인 발표를 한다고 쳐도 지금 당장 확정되는 게 아니라 준비도 하고 하다 보면 대표자 혹은 실무자들끼리 논쟁이나 의견도 다양하게 오고 가며 주파수를 맞추며 그 긴장을 완화할 수 있다는 것을 안다. 하지만 이런 식으로 노조도 아닌 이상 배 째라는 식으로 스탠스가 나온다면 자기네들한테 악법이라 외칠만한 지지적인 여론도 점차 등을 돌리게 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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