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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포텐조 May 26. 2024

마음 속 철조망

성장일기 벽돌시리즈 284

성장일기 벽돌시리즈 이백 팔십 사 번째



비가 오는 날이라 그런지 퀄리티가 높았다. 사색을 하게끔 만드는 주제들이 많이 나와 모임 시간을 더욱 풍성히 했다. 이야기 주제는 오로지 개인만의 고민거리가 아니었다. 나와 같이 생각하는 사람도 있었고 전혀 다른 생각을 하는 사람도 있었다. 한 가지에 몰두하다 보면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생각이 이어지게 마련인데, 그럴수록 사색이 고민이 되기도 하고 그런 고민이 때론 상처가 될 수도 있다.



자유에 관한 각자의 생각. 자유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개개인이 가지고 있는 자유의 색깔은 달랐다. 연이어서 나온 주제들이 자유의지까지 포괄하게 되어 여러 의견들에 살이 붙여져 나갔다. 누군가에게 자유는 내가 하고 싶은 대로 살아가는 것, 어떤 조건 없이 편히 살아가는 의미였다. 누구나 자유롭길 원하고 제약이 생기길 원하지 않는다. 개인의 권리가 살아있는 한 최대한의 자유를 누리고 싶은 것이 사람이다.


반면 누군가는 책임이 내포한 자유를 이야기했다. 어떤 선택을 하든 그건 그의 자유다. 내가 무슨 직업을 고르든, 어떤 시간들로 삶을 살아갈지 온전히 그의 뜻에 달려있다. 다만 온전한 자유는 없음을 말한다. 스스로 혼자 살아가는 세상이 아닌지라 누군가를 의식하며 타협하고 공동의 룰에 맞춰 살아가야 하기 때문에 최소한도내의 통제인 법이나 규범 등이 있으므로 진정한 자유, 어쩌면 방임 차원에서의 자유란 있을 수 없다는 것이다.


사람이 살아가면서, 모임에서 말이 나온대로 무인도에서 혼자 살아가는 것도 아닌 이상에서야 룰은 필요하고 모두를 위해 자신의 책임 없는 자유까지 누릴 권한은 없다. 그러므로 개인을 억압하지 않는 이상 법과 양심을 표면적으로든 암묵적으로든 지켜나가기 위해 사회라는 것이 존재한다. 어쩌면 이런 점에서 볼 때 아나키스트들이 별로 좋아하지 않을 생각일 수도 있겠다.



내 생각도 비슷했다. 책임 없는 자유를 과연 자유라고 정의할 수 있는가? 방임도 방임 나름이지. 나 좋자고 다른 이의 권리까지 침해하는 자유가 무슨 자유라고 붙일 수 있는지가 의구심이 들었다. 가끔 오해할 수도 있을 거란 생각이 드는 부분이 있다. 사회적 기업이라고 명칭이 붙여진 기업의 역할이 마치 부차적인 옵션인양 이야기하는데 고객이자 소비자에게 원하는 것을 제공하는 것도 그리고 부를 창출하는 활동에 있어 사회가 뒷받침해주지 않으면 소용이 없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개개인의 삶에서의 자유도 다시 재고해 볼 만한 것은 누구나 동의할만한 외부의 압력과 의무에 대해 자유로워지는 것은 당연한 것임을 알 수 있다. 다만 정신적 속박, 거칠게 이야기하면 정신적 노예상태는 과연 어떤지 의문이 들었다. 어쩌면 사회와 구성원들의 보이지 않는 기준이 정신적 압박이라고들 생각하겠지만 내가 이야기하는 부분은 스스로를 구속 하고 있는 것에 관해서다.


누가 이야기하지 않았는데도 지레 겁을 먹는다거나, 눈치를 너무 보거나 스스로 비하를 너무 많이 하는 경우 혹은 남을 배려한다 해서 본인을 너무 내려놓는 삶 등이 어디까지나 하고 싶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해야만 한다면 이런 조건을 누가 부과했는지도 따져볼 문제다. 눈치 좀 챙겨라의 문제가 아닌 너무 눈치를 보고 위축되어 있어 사회생활에 도리어 방해가 되는 이야기가 해당되며 눈치의 문제도 아니다. 자기를 너무 옳아 매어 만족감이나 좋은 감정을 느끼지 못한다면 대체 누굴 위해 살아가는지도 진지하게 생각해봐야 한다.


노예해방은 역사의 한 부분을 넘어 개개인의 삶에 있어서도 어쩌면 해당될 수 있는 키워드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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