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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포텐조 Jun 02. 2024

정면돌파

성장일기 벽돌시리즈 291

성장일기 벽돌시리즈 이백구십 일 번째



요즘 기운이 다운된다. 소진은 아니지만 그래도 졸업을 얼마 남기지 않은 시점에서 스트레스 과다투여인지는 몰라도 아무것도 하지 않았음에 기분이 별로 그리 좋지 못하다. 논문을 수정하는 작업을 기피하게 되고 욕을 무진장 먹어야 정신 차리는듯 한 나 자신이 스스로 좋아 보이지 않았다. 정답을 알고 있음에도 움직이지 않는 나에 대한 생각은 여전히 가보지 못한 해결의 영역인 셈이다.




최근 책을 다시 읽었다. 내가 그토록 존경해 마지않는 엘리스의 이론을 다시 살피고 거기서 내가 어떤 방법을 실천해야 하는지를 되새겨야 했다. 항상 만족과 불만 그리고 성공과 실패를 왔다 갔다 하는 부분은 반복과 지속이다. 집중해야 할 것은 정작 집중하지 않고, 딴짓하기 일쑤며 논문 쓰는 것을 기피하는 나에게는 그런 부분을 개선해야 했다. 가끔 마음을 내려놓고 자책하지 말라는 이야기는 타당하다.


그러나 그런 단계는 어떤 부분에서 그래야 하는지를 본인만이 안다. 집중해야 할 것은 하지 않는 것 또한 원인을 찾아보면 다양하게 들이댈 수 있지만 어떤 원인으로 귀결하든 결국 하지 않고 있는 것은 변함없다. 엘리스가 이야기하는 낮은 좌절인내인지는 몰라도 회피행동으로 일시적 감정의 편안함을 누리고 있는 것이다. 거침없던 엘리스는 노출과 정면돌파로 삶을 이겨내야 한다 주장한다. 


그러고 싶은 건지 아니면 그런 건지는 몰라도 엘리스와 나와 비슷한 점을 많이 느낀다. 그는 대단히 내성적이었고 또한 겁도 많았다. 그러나 유머스럽고 뻔뻔했다. 나 또한 그렇게 정의할 수 있다. 그와 같이 대단히 부끄러움을 많이 타고 겁도 많지만 뻔뻔해지려고 노력 중에 있기 때문이다. 롤 모델은 혈기왕성한 남자들이 부러워할만한 대단한 용기를 몸소 보였지만 다른 부분에서도 그런 태도를 취해야 하는 게 분명했다.



식물원에서 백여 명의 여자들에게 이야기를 먼저 건넨 그는 "생각했던 것과 달리 여자와 이야기한다고 세상이 무너지지 않는다.", "나는 끝장나지 않았다."란 생각을 키우기 시작했다. 지금 당장 이 부분에 대해 똑같이 하라라고 한다면 그건 논란의 여지가 있는 것이겠지만 모두가 알다시피 내용이 중요한 게 아니라 이를 통해 무엇을 말하려고 했던지를 본다면 그건 기꺼이 위험을 감수하고 그의 생각체계에 대해 정면으로 도전하는 것임을 말하고 있다.


코엑스에서 열렸던 세계인지행동치료 학술대회에서 여러 명사의 강의를 듣고 책에서 보던 전문가들을 직접 보며 놀라기도 했지만 한 가지 아쉬웠던 점은 엘리스의 이론체계가 보이지 않았다는 것이다. 뜬금없는 이야기이지만 그런 점이 학술적 헤게모니 다툼에서 철학적인 면을 다소 강조했던 엘리스 그리고 그의 마지막 삶과 연구소 직원들 간의 분쟁으로 지지부진 하면서 더 이상 발전된 모습이 보이지 않았던 것을 보면 여전히 씁쓸하다.


아무튼 그가 말하고자 했던 면이 과격했던 부분 그리고 때론 너무 솔직한 나머지 노골적으로 접근했던 것에 대한 반감이 있을지라도 그가 마련한 치료체계는 오늘날 인지행동치료를 탄생시킨 요람과도 같다는 생각은 여전하다. 내가 심리학에 들어오게 된 계기가 분명히 그였음을 상기해 보며 다시 마음을 가다듬어 본다. "사람은 상황 그 자체가 아닌 그에 대한 해석으로 고통받는다." 이는 여전히 내 삶에서 가장 중요한 가르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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