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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포텐조 May 31. 2024

여전히 먼 나라 2

성장일기 벽돌시리즈 289

성장일기 벽돌시리즈 이백팔십 구 번째



전 편에 이어서 계속 논해본다. 일본을 이해하고자 한다면 의식에 흐르는 천황이란 존재에 대한 탐구를 해야 한다 생각한다. 흔히 생각하기론 "다른 나라처럼 실권 없는 국왕인데 뭘"이란 이야기가 당연히 튀어나올 법하다. 개인적으로 예전에도 영국이나 다른 나라들처럼 입헌군주제의 일본을 바라보려 했지만 그러기에는 생각보다 일반적인 입헌군주제의 역할 그 이상의 느낌임을 저버리지 않을 수 없었다.




인간이 된 신이라 불리는 천황은 유구한 전통을 자랑하는 혈통을 유지해 왔다고 주장을 한다. 태양의 여신 아마테라스의 직계로 불리는 덴노(천황)는 일본의 오래되고 복잡한 명칭과 수사의 나열 그리고 역사 스토리를 제외하고 본다 하면 단순히 민족 종교의 수장으로서 섬나라의 통일된 상징을 의미한다라고 볼 수 있다. 헌법에도 그리 명시되어 있지만 더 살펴볼 필요성은 천황의 역할 혹은 특징을 나열하기보다는, 일본인의 의식에 어떤 존재로 자리매김하고 있는지 신토와 일본의 관계성을 찾는 데에 있다.


일본은 민주주의 국가이며, 실권 없는 천황과 정치권력의 대표인 총리가 답정너로 가져온 입안에 대해 도장 쾅!! 하는 역할로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명목상의 임금이지만 애초에 천황이 무언가 좌지우지 한 역사는 초창기를 제외하곤 거의 찾아볼 수가 없다. 메이지 때 잠깐 그런 듯해 보이지만 실질적으로 일본의 현실을 좌지우지했던 건 막부나 군인, 정치가의 몫이었던 셈이다. 참 신기한 건 애초에 천황이 실권이 없었기에 오히려 더 큰 힘을 가질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을 여러분은 동의하시는가?


2차 대전 후 옥음방송이라는,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천황의 목소리를 통해 천황은 인간이라는 직접 선언이 나오면서 명목상의 천황제 군국주의는 막을 내리지만 항상 그래왔듯 천황은 그리 놀라우리만큼 대 충격을 겪었던 것은 아니다. 어차피 천년 넘는 시간 동안 천황의 입장에선 이리 흥 저리 흥이기도 했고 현실 정치의 수동적 입장이었기 때문에 역설적으로 기나긴 세월 동안 급변하는 정치 혼란은 천황이라는 신비성과 신성으로부터 지켜낼 수 있는 보호막이 되었던 셈이다.


이 말은 즉 절대다수가 먹고사는 문제와 한 줌이라도 더 차지하려는 토지 분쟁과 욕심을 모르는 영주들의 진흙탕 싸움 속 천황은 그들에게 "필요한"존재였다. 상대방도 알고, 나도 아는 일정한 규칙이나 문화 혹은 종교적 요소들은 농지를 맞대고 있는 저쪽 지방사람들이 지금 당장 치고받고 싸우더라도 분화되지 않고 동질감을 느끼게 하는 중요한 요소였다. 어쩌다 힘센 막부가 휘어잡으면 무력이라는 수단으로 반강제적으로 입 다물고는 있어야 했다.




그러나 빈틈이라도 보이면 얄짤없이 전국시대를 열었던 섬 안에서 오랜 평화와 안정 그리고 풍요를 바라던 절대다수의 일본인들에게는 천황의 존재는 어쩌면 희망의 등불과도 같았던 셈이다. 우리는 뭔 소리인지 납득이 안 가는 일본신화는 섬나라 사람들의 공유할만한 서사를 가져다주었고 그 실체는 천황으로써 각인이 되었다. 또한 신토라는 종교의 특성상 다신교의 모음집과 같았고 조상을 숭배하는 마을이 있는가 하면 눈에 보이는 모든 곳에 신이 계시다는 생각을 가졌던 마을도 있었고 각자만의 스토리와 의식을 고이 간직하고 있었던 셈이라 어떤 명확한 교리 또는 실체라고 할만한 그런 것이 없다고 할 수 있다.


상대적으로 국가신토의 등장이 얼마 지나지 않았으며, 천황이 곧 모든 것이다라는 신토의 교리가 어느새 정립된 지도 근대 때의 일이라 또 한편으로 순수한 민속 신앙으로써 신토을 바라볼 수도 있다. 하지만 얼마 되지 않았다고 국가 신토의 보편성이 오랜 시간 다신교체제의 일본인들을 휘어잡는 데 어려움을 심하게 겪었던 것은 아니다. 쉽게 생각해서 여러 주장들과 여러 입들이 서로 다른 신들을 이야기하며 혼란한 시대상에서 각자만의 세계관에 갇혀 있었지만, 일본 통일 이후 강력한 단일 체제가 확립되어 가면서 막부에서 천황으로의 정치적 정당성 그리고 보이지 않던 권위이행이 비교적 순조로웠다.


어차피 칼 잡고 있던 쇼군이 죽고 여러 영주들이 호시탐탐 노리고 맨날 죽여가며 시체 더미 위에서 승리를 외쳤지만 점점 외부의 사상이나 문물이 들어오면서, "이러다 검은 배 끌고 온 백인들한테 다 죽는다"+"어디 족보도 없는 쇼군이? 우리 천황 지켜"라는 마인드가 버무려지면서 단일체제의 천황 숭배는 탄력을 받게 된다. 그 이후의 일은 모두 다 알다 시피 군국주의로 향하는 발걸음으로 이어졌지만 결국 일본이라는 섬나라의 "필요"에 의해서 오랜 전쟁을 이겨내고 평화를 갈망하던 일본인의 사상적 공백을 채우기 위한 것임을 바라볼 때 천황의 위치가 일본인들에게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는지 다시 한번 바라볼 수 있게 된다.


비판적으로 본다면 본인들의 평화와 안정을 위한 천황의 존재는 빛을 발했지만 외부로의 진출에선 전혀 반대되는 의미를 가진 우월성과 선민의식의 존재로 탈바꿈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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