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포텐조 Jul 09. 2024

달력에 지울 지우개

성장일기 벽돌시리즈 326

성장일기 벽돌시리즈 삼백이십 육 번째 



"아 진짜 일하기 싫네 정말".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얼마 지나지 않아 돈이 들어왔음을 확인한 당신. 어느새 입가엔 미소가 방긋 지어진다. 짜란~ 금융치료가 된 것이다. 결국 궁시렁궁시렁 거리며 월급날 통장이 하이패스로 나간다고 해도 들어온 순간은 언제나 해피하다. 이런 농담 아닌 농담 같은 금융치료 무슨무슨 치료는 비단 물질적인 것에만 한정되지 않는다.



상처를 제대로 입으면 그때는 말도 제대로 하기 힘들고 화살 맞은 사슴처럼 거동조차 힘들어지는 경우도 있다. 이럴 때는 직접적인 치료도 치료지만 모든 것에는 결국 시간이라는 큰 범주에서 치유가 이루어진다. 생각해 보니 금융치료도 고통(?) 받다가 월급날이 되어서야 잠시 기분이 좋아지는 것처럼 어쩌면 시간 안에서 시간을 통해 이루어지고 나아지는 것을 느낀다.


시간이라는 키워드에 대해 뭔가 딱딱하고 원칙적이고 타이트한 느낌이 들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살아가려는 사람들이 무수히 많다. 체크리스트는 어느새 루터의 95개 조 반박문처럼 길게 나열되어 있고 달력에 나누어진 칸들은 수많은 글씨 때문에 어느새 서로의 영역을 침범한 지 오래다. 이렇게 열심히 달리는 사람들 그리고 달리려는 사람들 모두 시간을 굉장히 소중한 자원, 원칙대로 써야 하는 자원으로 인식한다.


하지만 시간의 관점에서 보노라면 수백억 년을 달려온 시간의 관점 그리고 우주의 관점에서 우리가 짜놓은 스케줄과 나날들이 우리 집 공기청정기 미세먼지 한알 수준도 안 되는 경우일 것이다. 그렇지만 지구에 있는 사람들은 각자가 놓여있는 유한한 시간 동안 어떻게든 알차게 보내려고 고심하고 열일하며 살아간다. 제한된 24시간, 365일이라는 시간에 하루가 어떻게 흘러가는지 조차 파악이 안 될 정도로 쉼 없이 각자의 일상이 돌아간다.



시간이라는 자원은 소중하지만 시간 자체에 대해 압박감을 느끼는 순간 그것에 대해 압박감을 느낀다는 자체가 무의미하고 통제하는 것도 무의미하다. 매 순간 시간을 인식하며 살아가는 것도 아니며 그동안 돌아보니 후회되는 것이 많아 왜 그렇게 시간을 버렸는지 떠올라서 시간을 알차게 쓰고자 하지만 한순간에 풀로 끼워놓은 스케줄은 도리어 독이 되는 경우가 있다.


무작정 흘러가는 대로 방치하겠다고 여기는 것도 유한한 자원이란 특성상 한계가 있다. 반대로 매일매일 빡세게 살아가야 한다는 것도 먼지보다 작은 인간과 그의 시간을 가지고 찻잔 속 태풍처럼 지내는 것도 어쩌면 우스운 일일지도 모르고 제 풀에 지치게 만드는 주범일 것이다. 모두 다 알다시피 계획대로 일어나는 법은 없으며 뜬금없는 경우와 별의 별일이 시간 속에서 찾아오기 때문에 거미줄처럼 얽기 설기 쳐놓는다 해도 결국 면이 아니라 선이기 때문에 들어오는 강물은 속절없이 통과시켜 버린다.


시간이 요구하는 것은 때론 단순한 것일지도 모른다. 각자 삶에서 주어진 시간이 시간 그 자체가 보기에는 티끌이지만 각자가 보기에는 한정적이고 소중하기에 그것을 알차게 보내는 것도 답이긴 하지만 넓은 관점에서 보다 여유를 가질 것을, 연약한 인간의 힘으로 무언가를 통제해 보겠다는 오만함에 항상 찬물을 끼얹으니 계속 흐르는 시간 속에 차분히 몸을 맡기는 것이 이롭다고 할지 모르겠다. 강 물살을 역주행해서 올라가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이전 20화 써도 삼킬 필요성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