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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포텐조 Jul 11. 2024

내 마음속 시멘트

성장일기 벽돌시리즈 328

성장일기 벽돌시리즈 삼백이십 팔 번째



기억을 되짚어 보니 예전에 친척 집 창고 안에서 다소 희한한 녀석을 만났던 것 같다. 바닥이 완전 시멘트였는데 창고 한 구석에 좁쌀만 한 초록빛을 내뿜는 새싹을 발견했다. 삽에다 곡괭이 기타 등등 창고의 분위기는 철물점 그 자체였는데 구석 바닥에 시멘트 틈새가 눈으로 보이지 않았음에도 생명이 일어나고 있었다. 생명력이 강해보이는 이름 모를 식물은 어느새 발아하고 마치 눈치도 없듯이 거기에 자리하고 있었다.



바닥을 자세히 보아야 초록 새싹이 보여서 그런 것이지는 몰라도 이 녀석의 존재는 굉장히 희미했다. 하지만 으레 잡초들이 그렇듯 눈떠보니 어느새 사방팔방을 뒤덮은 것처럼 어떻게 자라날지 어떤 정체를 드러낼지 모르는 녀석이었다. 관점에 따라 이런 생각도 들긴 했다. 조건과 환경이 맞아서 자라나는 것이지 어떤 어려움을 이겨내고 자라나는 건 아니다는 생각.


그것도 맞는 말인 것 같다. 그렇지만 언제나 그렇듯 어떤 관점을 택하든 그건 당사자의 맘이다. 좋게 받아들이거나 나쁘게 받아들이거나 한도 끝도 없어진다. 오늘의 글은 전자의 관점이다. 따지고 보면 조건과 환경이 맞다 한들 그 조건을 비교하게 되면 정말 풍성한 환경과 양분을 제공해 주느냐는 또 다른 문제일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시멘트 바닥에서 자라나는 것은 난이도가 별이 다섯개(00돌침대) 수준일 수도 있단 생각이 든다.


전혀 보이지 않는 곳에서 초록빛을 보니 모든 것이 초록빛이 아니더라도 보이지 않는 변수가 이 모든 것을 뛰어넘을 수 있다는 느낌마저 든다. 물론 언제나 우리의 노력, 능력으로 통제되지 않기에 문제이긴 하지만 말이다. 그런데 이 보이지 않는 변수가 정말 손에 잡히지 않는 것일까? 그건 또 아닐 것이란 생각이 든다. 노력에 의해 좌지우지되지 않는다는 말은 결정적으로 내가 이것을 이러지 저러지는 못해도 그것을 이용할 수 있다는 말은 된다.



마치 시멘트 바닥이 생명잉태에 전혀 호의적이지 않는 것처럼. 그러나 바닥에 금이가든 아니든 그곳에 씨앗이 있었고 마침 공기와 적당한 수분이 있어 피어났다. 이런 가능성에 대해 하루아침에 달라지든 수많은 시간이 누적되어 일어나든 뭔가 공평하다는 순수한 생각마저 든다. 하루아침에 가능성이 발현된다 하면 그건 누군가에게 운이라 하겠지만 단발성 이벤트로 끝나지 않기 위해 그에 따른 A/S, 즉 지속적인 유지능력을 요구할 것이다.


반대로 많은 시간 끝에 얻어낸 가능성이라면 짬밥(?)과 경험이 이제야 보상 결과로 나타난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먼저 고생한 사람이라면 A/S에 대해 보다 더 능숙하게 다루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복합적인 생각이 들었다. 새싹 하나에 여러 통찰이 부딪혔고 억지로 만든 생각이든 자연스레 드는 생각이든 그건 어디까지나 내가 선택할 몫이라는 것을.


심리학자 반두라는 이런 가능성에 대해 간접적으로 언급한다. 누군가는 외국어 학습에 겁을 먹어 쉽게 다가가지 못하고 여행을 못할 수 있지만 누군가는 기꺼이 배우려 한다는 점. 이런 현상에 대해 자기 효능감 이론을 제시하기도 했다. 반대로 혹자는 그럴 수도 있다. 헬조선에서 살아남기란 불가능하다고. 그리고 우리의 노력 따윈. 노력이란 개념에 질려버려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비판을 가한다. 둘 다 따지고 들면 맞을 수도 틀릴 수도 있다. 어디까지나 그건 내가 어떤 관점을 택하고 살아갈 것인지 그리고 그 관점대로 살아가느냐에 달려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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