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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인 May 03. 2022

맑은소리 짠 2

친구들이 저만 보면 밑 잔을 잡아요


“자기야, 나 이 소주잔 너무 사고 싶어!”     

작년 이맘때 제주도 한 달살이를 마치고 돌아오는 공항 기념품 가게에서 나는 포장된 ‘잔’ 세트를 들어 올리며 남편에게 말했다. 흑돼지 얼굴이 귀엽게 그려진 소주잔이었다. 분홍색, 하늘색 하나씩 커플로 되어 있어 그와 제주를 그리워할 날에 잔을 부딪치면 ‘딱’이라고 생각했다. 남편은 그런 내가 익숙하다는 듯 웃으며 지갑을 꺼냈다.     


우리 부부는 여행할 때마다 그 지역 술을 마시는 걸 관례로 여긴다. 그날그날 여행 일정을 마치고 호텔에서 잠들기 전 간단한 안주와 함께 술을 마신다. 호텔방에 있는 머그잔에 술을 따라 마시면 되지만 나는 마트에서 굳이 술잔을 구입하는 편이다. 술은 ‘술잔’에 따라 마셔야 한다는 나만의 철학이 발동하는 것이다. 플라스틱 소주잔, 종이 소주잔도 있지만, 굳이 유리 소주잔만을 고집한다. 가격이 조금 비싸더라도 술을 따라 건배할 때 유리잔 부딪치는 소리를 무척 좋아하기 때문이다. 이제는 너무 자주 사는 느낌이 들어 캐리어에 짐을 챙길 때 유리 소주잔을 챙기는 걸 잊지 않는다.   

  

집에 잔들이 많을 수밖에 없는 이유가 또 있다. 예전에 주류 회사에서 가끔 소주를 짝으로 사면 잔은 덤으로 주는 이벤트를 했는데 나는 이게 웬 횡재냐며 한 짝을 사곤 했다. 어차피 술을 살 거면 잔까지 주는 술을 사는 게 이득이지 않은가 하면서 말이다. 아쉬운 점은 잔이 한 개밖에 들어있지 않았다는 점이다. 짝없는 외로움을 술잔이 느끼게 해서는 안 된다며 우리 부부는 행사가 끝나기 전 이른 시일 안에 그 술을 다 마셔 버리고 한 박스를 더 사서 진짜 ‘짝’을 만들어 주었다.     


잔이라고 해서 다 똑같은 잔이 아니다. 벚꽃 시즌엔 벚꽃 무늬 잔에 소주를 따라 마시면 멀리 나가지 않아도 집 안에서 벚꽃을 즐길 수 있다. 벚꽃 잔은 ‘처음처럼’에서 수지가 광고할 즈음 소주를 6병 묶음으로 팔 때 한 잔씩 사은품으로 줬던 잔이다. 두 묶음만 사서 두 잔을 짝으로 만들려고 했는데 지금 집에 세 쌍이 있는 걸 보니 여섯 묶음을 샀던 모양이다. 

도수가 높은 빨간 소주를 먹고 싶을 때가 있다. 그 술은 ‘바로 내가 그 근엄한 참이슬이요’라고 알려주는 참이슬 잔에 먹어야 한다. 그 잔에 이슬을 따라 마시면 술에 빨리 취하더라도 잠깐이나마 내가 술 좀 할 줄 아는 주당이 되는 기분이 들어 즐겨 찾곤 한다. 사케는 일본식 문양이 그려진 도자기 잔에, 고량주는 작은 고량주 전용 잔에 마시면 술의 풍미를 더 높일 수 있다. 남편은 한 때 위스키에 빠진 적이 있었다. 그때부턴 소주잔 대신 위스키 잔이 장을 채우기 시작했다. 샷으로 먹는 위스키 잔도 좋지만, 가끔 그 잔에 소주를 따라 마시면 소주가 그 어떤 위스키에도 밀리지 않는 힘을 발휘한다.     


내가 유리 술잔을 좋아하는 이유가 있다. 술 뚜껑을 따고 술을 잔에 따를 때 잔과 병의 입구가 순간 부딪치면서 나는 유리끼리의 둔탁한 소리와, 첫 잔에 따르는 ‘똘똘똘똘’ 소리를 좋아하기 때문이다. 책 <아무튼 술>을 쓴 김혼비 작가는 소주의 ‘똘똘똘똘’ 소리를 듣기 위해 술자리에서 처음부터 두 병을 시키고 시작한다고 한다. 이 소리는 한 잔을 따르면 더 이상 들을 수 없다. 두 병이 있으면 한 잔을 따르고 나서 비워진 한 병을 다른 한 병의 소주로 다시 채운다. 이어서 다음 잔을 따르면 첫 술을 따르는 것처럼 ‘똘똘똘똘’ 소리를 계속 들을 수 있다. 그녀의 혜안에 나는 무릎을 쳤다. 나도 이 똘똘똘똘 소리에 꽂히는 날엔 “이모~ 소주 하나 말고 두 병 주세요!”를 외친다. 그러면 안주는 계속 사라져도 술 따르는 소리가 첫 술임을 알려주고 있으니 술자리가 늘 새롭게 시작되는 기분이 든다.     


술이 잔에 떨어지는 소리 외에 내가 유리 소주잔을 특히 좋아하는 이유가 하나 더 있다. 소주를 가득 채운 잔 밑 부분을 엄지와 검지로 얇게 잡아 잔을 부딪치는 ‘맑은소리 짠’을 정말 사랑한다. 유리잔이라 잔끼리 부딪칠 때 나는 소리도 기본적으로 좋지만, 그 밑 부분만 잡고 부딪치는 잔의 소리는 비교할 수 없이 영롱한 맑은 소리를 낸다. 어떤 잔이든 밑 잔만 잡고 부딪치면 맑은소리가 나는데 어떻게 세상에 모든 잔을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     


대학시절 친한 선배에게 잔 부딪치는 소리를 배운 뒤로 나는 술자리에만 가면 “자~ 우리 맑은소리 짠하자~”를 외쳤다. 마치 내가 술 잘 마시는 비법을 알려주는 것처럼 나와 만나는 모든 사람에게 전파했다. 취기에 어느 정도 달아오를 때면 나는 더욱 이 소리를 듣고 싶어 친구들에게 맑은소리 짠을 외친다. 착한 그들은 익숙하다는 듯 “얘, 이제 시작했다”라며 내 건배사에 응해준다. 일상에 쌓인 스트레스가 잔 부딪치는 맑은소리에 저절로 풀려 버리는 순간 나의 술은 본격적으로 시작되기 때문이다.     


이제 보니 나는 술보다 술그릇인 잔을 더 좋아하는 것 같다. 처음엔 술을 좋아해서 술을 마셨지만 이젠 잔을 보면 술을 채워 잔을 부딪치고 싶다는 생각이 저 마음 깊숙한 곳에서부터 끓어 올라온다. 종소리가 울릴 때마다 먹이를 주는 훈련을 해서 딸랑거리는 소리만 들어도 침을 흘리는 파블로프의 개처럼 말이다. (내가 술을 먹으면 개가 된다는 이야기가 절대 아니다) 그리고 잔은 혼자 부딪칠 수 없지 않은가. 맑은 소리는 절대 혼자서 낼 수 없기 때문이다. 그 소리를 같이 만들어 주는 남편, 가족, 친구들이 있기 때문에 더욱 좋아하는 것이다.   


누군가에게는 쓸모없더라도 나는 이 잔들을 보기만 해도 ‘맑은소리’가 들려 심신의 안정을 느낀다. 부엌의 구석 한쪽 장을 잔을 한가득 채워 쓸데없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것 같지만, 함께 잔을 부딪쳤던 소중한 사람들과의 추억들을 떠오르게 해 준다. 이제는 굳이 ‘맑은소리 짠’이라고 말하지 않아도 알아서 밑 잔을 얇게 쥐고 있는 나의 술벗들에게 진심으로 고맙다.

잔만 생각하며 글을 쓰는데 술이 고파졌다. 오늘도 한잔해야겠는데?



최근 3개월 '맑은소리 짠'을 담았습니다. 사진은 늘 제가 찍었네요 ㅎㅎㅎ...



* 해당 글은 월간 웹진 2W매거진 5월호 '무용한 것을 사랑하나요'편에 수록되었습니다. 2W매거진은 교보문고, 예스24, 알라딘, 리디북스 인터넷 서점에서 구매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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