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해의 아침

새롭게 시작할 수 있는 힘

by 김다인

무너진 일상을 낯선 곳에서 새롭게 다시 시작해 보는 것은 좋은 방법론이 되어 주는 것 같다.


남해로 내려오기 직전 내 일상은 망가져 있었다. 아침마다 하던 요가와 명상 루틴을 잊은 지 오래됐다. 오후엔 사무실 출근도 하지 않았다. 오직 방에만 틀어박혀 논문을 쓰고 상담이 들어오면(카카오톡으로 사주 상담을 하고 있다) 그때그때 상담을 이어 나갔다. 나의 경우 하고 싶지 않은 일을 억지로 할 때 스트레스를 과도하게 받는 편인데 그걸 해내는 과정에서 에너지를 과하게 소비하곤 한다.


최근 가장 하기 싫어했던 일은 논문 작업이었다. 논문은 맞지 않는 옷을 억지로 입는 듯한 느낌을 처음부터 끝까지 받게 하였다. 자유롭게 그때그때 글 쓰는 걸 좋아하는 내게 틀과 형식이 중요한 논문은 한 문장씩 쓸 때마다 숨이 턱턱 막히었다. 특히 인용이 없으면 한 문장도 제대로 써내지 못하는 수준을 직접 눈으로 확인하니 답답해 미칠 지경이었다. 공부할 게 많은 건 잘 알고 있으면서도 이 정도로 부족하다는 걸 인지하는 게 힘들었다. 어린아이가 어른 흉내를 내어 두꺼운 화장을 한 느낌이랄까. 마지막 최종본을 제출하는 순간까지도 부족한 실력을 두터운 인용이라는 화장을 덮은 것 같아 찝찝하였다.


누가 보면 뭐 그 정도로 스트레스를 받냐고 하겠지만, 나는 좋아하냐 마냐에 따라 집중력이 현저하게 차이 나는 사람이다. 하기 싫은 일을 할 때면 집중하는 데에만 오랜 시간이 걸린다(거의 집중을 못한다고 보면 된다). 그러다 보면 과한 에너지를 쏟게 되어 체력 소모가 심하다. 원하지 않는 일들을 척척해내는 사람들을 보면 부러우면서도 이내 고개를 젓는다. 아무리 부러워도 그 능력을 습득하면서까지 여전히 하고 싶지 않다. 따라서 하고 싶지 않은 일을 할 땐 내게 ‘회복’이 중요한 과제였다. 마지막 상담이 9시라서 8시에 예약이 잡혀 있지 않으면 미리 취침 준비를 하는 게 그나마 찾은 회복 방법이었다. 그렇다고 아침에 상쾌하게 일어나는 건 또 아니었기에 스트레스의 연속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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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곳에선 새로운 ‘나’가 될 수 있던가. 환경이 바뀌면 그에 맞는 내가 되고 싶은 것처럼 남해에서의 아침은 사뭇 다르게 시작되었다. 핸드폰 알람을 듣기도 전에 먼저 나를 깨워주는 건 5시에 들리는 닭의 울음소리였다. 평생 도시권에서만 살아서 그런지 닭 소리가 생소하였다. 주말 오전에 아침밥을 먹으면서 보던 전원일기에서처럼 닭이 새벽에 정말로 울었다. 신기하리만큼 그 소리를 들으면 개운하게 일어났다. 이 정신 그대로 나에게 집중하고 싶어 집에서 가져온 캔들에 초를 붙이고 요가 수건을 깔아 아침을 깨우는 의식을 천천히 시작하였다. 15분 동안 스트레칭을 하고 5분간 명상을 하고 나면 그 20분이 하루를 괜찮게 살게 하는 힘을 만들어 주었다.


무너진 일상을 다시 잡아보겠다는 마음이 우선 중요할 것이다. 어쩌면 그동안 다시 잘해보고 싶은 마음은 있는데 스트레스 핑계로 에너지가 없다며 하지 않았던 거였다. 그리고 공간의 익숙함이 게으름을 더 증폭시켰을지도 모른다. 공간의 편안함은 의식을 게으르게 만드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한 번씩 새로운 공간이라는 자극을 주면 뇌와 몸이 각성이 되어 그곳을 좋게 적응할 수 있도록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에너지를 준다. 멈추었던 아침 루틴을 다시 시작할 수 있어 남해에서의 아침은 내게 새롭게 시작할 수 있는 힘이 되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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