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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인 Dec 23. 2021

난생처음 남편과 새벽 걷기 운동

운동하러 가자는 남편의 말에 의심부터 했다


남편 코 고는 소리에 잠이 깼다. 핸드폰 시계를 보니 4시 31분. 다시 자려고 눈을 감았지만 5시 30분에 맞춰 놓은 알람이 무색할 정도로 옆에서 코 고는 소리가 귀에서 맴돌았다. 잠이 더 이상 오지 않아 조금 뒤척였다. 내 뒤척이는 소리와 밝은 핸드폰 조명이 드르렁 코를 고는 남편을 덩달아 깨우게 됐다. 나는 남편 때문에 깨고, 그는 나 때문에 깨서 우리가 천생 부부라는 생각이 들어 절로 미소가 지어진다.

이왕 이렇게 된 거 오늘은 일찍 모닝 루틴을 시작해 보자 싶어 침대 밖을 나오려고 하는데 뒤에서 들리는 남편의 목소리에 내 귀를 의심했다.


"지금 운동하러 갈까?"


이게 웬일인가.

그렇지 않아도 어제부터 남편과 나는 공원 한 바퀴 걷기 운동을 시작했다. 결혼한 지는 만 3년이 넘었고 함께 한 지는 7년이 넘어 쌓인 사랑의 세월만큼이나 몸에도 살이 쌓여갔다. 남편은 나를 처음 만났을 때보다 30kg, 나는 10kg가량이 쪄버렸다. 도무지 이대로는 안 될 것 같아 운동을 결심했고, 겨울에 혼자 하는 운동은 마음도 추울 것 같아 다이어트의 심각성을 강조하며 그를 설득시켰다. 그의 마음이 곧 바뀔까 싶어 바로 시작할 수 있는 걷기 운동부터 하기로 했다.


나는 평소 걷기 운동을 즐겨한다. 걷기와 뛰기를 반복하며 일주일에 2~3회는 꼬박 한다. 그 모습을 매번 봤던 남편이었는데 한 번도 그와 함께하지 못했다. 내가 억지로라도 끌고 나가려 했지만 '정말 하고 싶어서' 또는 '필요에 의해서'로 몸을 움직이는 그였기에 걷기 운동을 이 새벽에 직접 제안하는 것 자체가 그도 겉으로 표현하지는 않았지만 이제는 심각성을 느끼는 듯하다.


두툼한 패딩을 걸치고 나온 시각은 새벽 4시 50분. 영하 5도의 새벽 공기를 마시니 남아있던 잠이 싹 달아났다. 남편의 따뜻한 손을 잡으며 그의 왼쪽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손만 잡았을 뿐인데 추위가 가셨다. 우리는 손을 꼭 잡고 몸을 웅크린 채 새벽 칼바람을 맞으며 걷기 시작했다. 10분 정도 걸어 근처 호수 공원에 도착했다.


가로등 불에 의존해 어두침침한 공원에 발을 들였다. '이렇게 이른 시각에 사람이 있을까?'라는 의문도 잠시, 러닝 하는 사람이 꽤 보이는 게 아닌가? 그뿐이 아니다. 더 걷다 보니 삼삼오오 함께 달리는 사람들, 기합을 넣으며 체조를 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우리처럼 걷는 사람도 있었다. 이 시각에 나온 건 처음이라 어안이 벙벙했다. 각자의 방법으로 이른 새벽을 여는 모습이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우리는 이제 이틀 차인데...

운동하는 사람들을 보니 몸에 열이 생기기 시작했다. 부러움과 질투심일지도 모른다. '나도 열심히 해야지!' 마음이 들어 잡고 있던 남편의 손을 놓고 양팔을 앞뒤로 흔들며 새벽을 여는 무리에 조금씩 끼어들기 시작했다.


걸으면서 제법 몸에 열이 올라 목까지 덮은 패딩 지퍼를 가슴팍까지 내렸다. 인중엔 땀방울이 송골송골 맺혔다. 마스크 속 습기와 땀방울이 겹치는 느낌이었다. 걸으며 생긴 열에너지와 영하 날씨의 한기가 만나 습기가 생성됐으리라. 열심히 걷는 남편의 옆모습을 보니 그의 앞머리에 습기가 자욱하게 맺혔다. 추운 날씨에 옆자리를 지키며 걸어주는 남편에게 내심 고마웠다.


새벽에 걸었던 일산 호수 공원입니다ㅎㅎ


운동 삼아 나왔지만 걸으며 줄곧 대화를 했다. 우리는 평소 대화하는 걸 좋아하는데 특히 좋아하는 주제는 '미래'이다. 오늘도 어김없이 미래 계획에 관한 이야기를 했다. 미래 꿈꾸는 집의 형태, 그에 따른 자녀의 시기, 자녀의 수, 자녀 방은 어디에 할지, 우리 작업실은 어디에 놓을지 등. 매번 같은 이야기인데도 희망찬 미래 이야기를 하면 그게 곧 현실로 다가오는 것 같아 함께 미래를 그리는 느낌이다. 앞을 향해 뻗어 나가는 미래 이야기처럼 다리를 쭉쭉 뻗으며 추위를 뚫어 나갔다. 어느새 걸은 지 한 시간이 넘었고 우리는 6km 정도를 걸었다.


집으로 돌아와서 시계를 봤을 때 6시 10분이 조금 넘었다. 남편에게 오늘 걷기 운동이 어땠냐고 물었다. 그는 아직 시간이 이거밖에 안 되었냐고, 하루를 길게 시작할 수 있다며 만족해했다. 운동 자체만으로도 좋았는데 걸으면서 본인 생각을 정리하고 정리된 생각을 나와 대화로 마무리하는 것 같아 걷기가 좋은 운동이라고 답했다. 이 좋은 걸 이제 알았다면서 덧붙이면서 말이다.


이 좋음이 앞으로 쭉 이어나가길 바라며..!

나는 아침 먹을 준비를 하는데 침실에서 익숙한 코 고는 소리가 다시 들린다.

어쨌든 오늘 시작이 좋다.


새벽 걷기 인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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