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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인 Jan 25. 2022

이틀 만에 제주 올레길 걷기를 포기했다

걷기 여행 엄살 에세이

올레길 걷기 여행 이틀 차 아침이 밝았다. (제주에 온 지는 3일이 되었다) 침대에서 일어나자마자 남편과 나는 “윽” 소리를 내지 않고 몸을 일으킬 수 없었다. ‘억’도 아니고 정말 “윽”이었다. 운동화를 신고 바깥을 나가기 전까지 우리의 ‘윽’ 소리는 계속됐다. 다리 상태로 봐서는 오늘 걸을 수 있을지 걱정됐지만 제주도까지 온 비행기 티켓값이 아까워서 포기할 수가 없었다.


편의점에서 사 온 육개장 컵라면으로 아침을 때웠다. 나는 아침밥을 먹지 않으면 하루를 시작할 수 없다. 남편은 속이 더부룩하다며 아침을 원래 먹지 않는다. 컨디션이 좋지 않을 때는 더욱 잘 먹어야 한다며 나 혼자 호로록 아침 식사를 끝냈다.

든든하게 아침도 먹었겠다, 오늘도 힘껏 걸어보자는 마음을 다지며 나왔다. 전날 올레길 16코스 13km를 걸었으니 코스 완주는 3km가 남은 셈이다. 남은 16코스를 이어서 걷고 15코스(13.5km)를 끝까지 가는 것을 이날 목표로 삼았다.


호텔 밖으로 나오자마자 바다 경관에 눈 호강부터 했다. 분명 전날 호텔에 들어가기 전에도 바다를 충분히 감상했는데 다음날 보니 또 다른 바다가 펼쳐졌다. 어제보다 유독 더 푸른 바다가 기분 좋게 맞아 주었다. 하지만 상쾌한 바다를 느끼는 것도 잠시, 얼마 걷지 않아 다리 통증이 다시 시작됐다. 하루 쉬고 나면 좀 괜찮아질 줄 알았는데 다리가 더 무거워졌다. 문제는 다리뿐만이 아니다. 한 걸음 한 걸음 옮길 때마다 가방을 멘 어깨도 힘에 부치기 시작했다.

걸은 지 1시간이 좀 지났을 즈음에 16코스가 드디어 끝이 났다. 전날 완주했다면 더욱 기뻤을 텐데, 하루가 딜레이 된 게 못내 아쉽기만 해서 크게 기쁘진 않았다.

그냥 끝났다 정도일 뿐. 자 이제 15코스를 열심히 걸어가 볼까?



올레길은 걸으면서 제주도를 샅샅이 볼 수 있어 그동안 내가 알고 있는 제주도가 맞나 싶을 정도로 경관이 새롭고 아름다웠다. 같은 목적지를 가더라도 구석구석 볼 수 있게 길의 구성이 다채로웠다. 다만 여기저기 제주도를 즐기라며 올레길이 잘 짜인 만큼 사람 발길이 잘 가지 않는 곳으로 깃발과 화살표가 이어져 힘든 점도 많았다.

첫째 날은 첫날이 주는 설렘으로 본 경치라 감탄하느라 힘든 줄 몰랐는데, 이튿날은 첫날의 감동만큼 크지 않았다. 해안 근처 현무암을 이리저리 밟아야 하는 코스, 바다인데 숲과 연결되는 곳이 많아 오르막, 내리막이 반복되는 산길 때문에 걷는 것 자체가 곤욕이었다. 바닷바람은 또 어찌나 강한지. 다리도 힘든데 등에 멘 10kg의 백팩은 뒤에 사람이 매달려 있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그래도 걸음 보폭이 짧고 속도가 느리더라도 최대한 쉬지 않고 걸었다. 중간에 가방을 한 번 내려 버리면 이대로 계속 쉬고 싶을까 봐 쉬지도 못했다.


더 이상은 못 걷겠다 싶을 때쯤이 8km를 걸었을 때였나. 근처 맥줏집에 들어가서 조금 쉬기로 했다. 물 대신 생맥주를 벌컥벌컥 마셨다. 잠시 바다를 보고 멍을 때리다 드는 생각은 단 하나였다. 다리가 너무 아프니까 이게 걷는 게 의미가 있을까? 몸 상태가 좋아야 경치가 경치로 보이는데, 저길 가려면 내 다리가 얼마나 아플까라는 생각만 뇌리에 박혔다. 가방 무게 때문에 어깨 통증이 이제는 겨드랑이까지 내려왔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걸으면서 흘린 땀이 식어버려 차가운 기운으로 다가와 맥주도 더는 마실 수 없었다. 가만히 앉아 있자니 춥고, 다리도 아파, 집 나와 이게 무슨 고생인가 싶었다. 이때부터 집에 가고 싶단 생각뿐이었다. 그냥 따뜻한 차나 커피를 마실걸. 술을 좋아해도 이게 참 문제다. 어딜 가서 시키는 음료는 술뿐이니까.



내 상태가 급격히 안 좋아지는 걸 보고 남편은 그 자리에서 근처 숙소를 검색했다. 우리가 곽지 해수욕장 근처에 있었는데 다행히 멀지 않은 곳에 가성비 좋은 펜션이 있었다. 펜션을 찾았다는 그의 말에 얼른 가방을 메고 걸어 들어가고 싶은 의지가 생겼다. 뜨거운 물로 샤워하고 침대에 눕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걷기고 나발이고 내가 무슨 경치를 보겠다고, 걸으면서 무슨 깨달음을 얻겠다고 이렇게 고생을 하는지 온갖 부정적인 생각뿐이었다. 평소 고생을 자처하지 않는 남편도 내가 걷기 여행을 제안했을 때 군말 없이 따라와 주었는데, 막상 내가 못 가겠다고 하니 그에게 미안했다. 어쨌든 우리는 이렇게 이튿날을 마무리할 수밖에 없었다.


쉬면서 어떻게 사람들은 순례자 길을 몇 날 며칠을 걷고, 국토 종주를 하는지 의문이 들었다. 나는 고작 6일 동안 올레길을 걸으려고 왔음에도, 6일은커녕 이틀하고 두 손 두 발 다 들어버렸으니 말이다. 나름 이유를 생각해 봤다. 아니다, 이번 걷기 여행을 포기하기 위해 자기 합리화 방안을 찾았다고 해야 맞는 말이다.


걷기 여행 이틀 전 등산한 다리를 풀지 않고 시작했던 게 문제였을까? 걸을수록 종아리가 자꾸 걷지 말라고 뒤로 더 당기고, 발은 감각이 무뎌져 절이기까지 했다. 아니면 10kg짜리 짐 가방의 무게 때문일지도 모른다. 내가 배낭을 메는 건지, 배낭이 나를 메고 가는 건지 분간이 안 갈 정도로 어깨에 통증이 심했다. 분명 누군가를 업고 가는 느낌이었다. 사람이면 내려놓고 잠시라도 손잡고 갈 수 있지만, 배낭은 끌고 가는 게 더 힘들어 결국 메고 갈 수밖에 없는 상황에 속상했다.


다른 운동은 몰라도 걷기만큼은 자신 있다 생각했다. 내가 할 줄 아는 운동은 숨쉬기가 아니라 걷기라고, 이거라도 해야 한다고 강하게 마음먹었던 여행이었다. 첫날 12.29km, 둘째 날 8.44km 겨우 합쳐서 21km 걸어놓고 이틀 만에 나 자신이 무너지는 것 같아 답답했다. 중간중간 사진 찍는다고 서두르지도 않고 천천히 걸었는데도 이게 이렇게 힘든 일인가, 허약한 나의 하체와 체력이 야속하다.


첫날엔 올레길 걷기 여행의 진짜 행복을 느꼈다. 그러나 둘째 날은 ‘경치는 무슨’이라며 고통만을 남기고 끝났다. 내가 이렇게 저질 체력을 가진 사람인지도 몰랐다. 이번 여행은 내 몸의 현주소를 알게 된 좋은 계기가 될 것이다.

나중에 찾아보니 올레길 걷기 투어 버스가 있다고 한다. 호텔과 연계된 패키지로 코스 시작점에 버스로 데려다주고 코스를 다 돌면 호텔로 무사히 인도해 주는 버스였다. 가방만 없으면 그나마 걸을 수 있을 것 같아 다음 기회에 날을 잡고 다시 도전할 것이다. 조금씩 변화하며 도전한다면 언젠가 내가 원하는 모습으로 변화하고 있겠지.


우리 부부는 다음날 택시를 타고 공항 근처 호텔로 가서 하루를 쉬고 집으로 돌아왔다.

호텔에서 푹 쉬면서 남편에게 물었다.


“다음에 또 걸으러 올까?”

“버스투어 하면.”




* 블로그에는 사진이 많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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