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을 넘어선 대한의 외침
다음 날 아침, 성곤은 늘 그렇듯 신문사로 향했다.
그러나 거리에선 누구도 전날 밤 인쇄소 습격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이상하다...”
성곤은 발걸음을 재촉했지만, 문 앞에서 멈춰 섰다.
신문사 간판은 이미 철거돼 있었고, 내부는 순사들의 손에 짓밟힌 흔적뿐이었다.
자리마다 종이와 잉크가 널브러져 있었지만, 기자들과 식자공, 인쇄공들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곧 알게 된 사실은 충격적이었다.
신문사는 강제로 폐쇄되었고, 사람들은 모조리 경찰서로 끌려갔다는 것이다.
성곤은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우덕과 형준은 지금 독기가 올라 눈이 돌아간 상태였다.
“제발 사람들을 봐달라”는 말은 오히려 불길에 기름을 붓는 꼴이 될 터였다.
성곤은 괴로운 심정으로 길을 걸었다.
그때, 담장 뒤에서 낮은 목소리가 그를 불렀다.
“성곤 군.”
성곤은 소스라치게 놀라 돌아봤다.
검은 두건을 눌러쓴 태백이었다. 그의 곁에는 태한과 장도도 서 있었다.
성곤은 간절히 외쳤다.
“제발… 우리 신문사 동료들과 인쇄소 사람들을 구해주십시오.”
태백은 굳은 눈빛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성곤 군, 그대들이 만든 신문은 조선 민중에게 한 줄기 빛이야.
구해야지. 반드시 구해야지.”
그는 낮은 목소리로 덧붙였다.
“오늘 밤, 나는 태한과 함께 경성을 떠날 거네. 하지만 장도는 남아 자네 동료들을 구출하고 합류할 것이야.
그리고 저 간악한 종로 경찰서를 한 번 더 폭파할 예정이지.”
성곤은 여러 번 고개를 숙이며 깊은 감사를 표했다.
장도는 성곤의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
“힘을 내시오. 아직 끝나지 않았네.”
그러나 그들의 계획은 벌써 뒤엉키고 있었다.
정오가 되자, 종로 경찰서 앞 광장은 전혀 다른 광경으로 변해 있었다.
신문사 기자들과 인쇄소 직원들, 모두가 무릎 꿇린 채 줄지어 세워져 있었다.
머리칼은 헝클어졌고, 얼굴에는 멍 자국이 선명했다.
우덕이 확성기를 움켜쥐고 목이 터져라 외쳤다.
“태백! 이태한! 서장도! 잘 들어라!
네놈들이 아직 경성에 숨어 있는 거 다 안다!
지금 시각 정오! 오후 두 시까지 안 나오면! 1시간마다 한 명씩 죽이겠다!
내 말이 거짓이라 생각되면, 어디 안 나와 보시지!!!”
곁에 선 형준은 칼집을 열어젖히며 냉혹하게 눈빛을 흘겼다.
군중 사이에서는 수군거림이 퍼졌다.
“저놈들 또 시작이군...”
“왜놈 앞잡이들... 사람을 또 죽이겠다는 거야...”
긴장감은 종로 한복판을 짓누르고 있었다.
성곤은 저 멀리서 그 장면을 바라보며 이를 악물었다.
그때, 사람들 틈을 뚫고 한 여인이 울부짖으며 뛰어들었다.
“제발... 우리 아들 좀 풀어주세요!! 아직 열다섯밖에 안 됐습니다!
가난해서 인쇄소에서 품팔이한 죄밖에 없습니다!
다시는 이런 일 없게 하겠습니다. 제발... 제발 용서해 주십시오!”
그녀의 아들은 인쇄소의 막내 식자공이었다. 얼굴은 창백했고, 두 손은 잉크로 까맣게 물들어 있었다.
우덕은 그 광경을 비웃으며 확성기를 다시 들었다.
“들었지, 태백! 너희가 숨으면 이런 꼴 나는 거야.
당장 나와! 안 나오면 진짜 죽인다!”
그 순간, 무릎 꿇고 있던 노인이 벌떡 일어나 목소리를 높였다.
“저희는 괜찮습니다!! 절대 나오지 마십시오!
언젠가는... 반드시 그날이 옵니다!
대한 독립 만세!!”
외침이 끝나기도 전에, 형준의 칼이 번쩍이며 노인의 목을 베었다.
피가 뿜어져 나왔고 군중은 비명을 질렀다.
형준은 시퍼런 눈으로 무리들을 노려보며 차갑게 내뱉었다.
“조용히 앉아 있는 게 좋을 거다.
쓸데없는 짓 하면 이 늙은이처럼 바로 죽여버린다.”
저 멀리 숨어서 지켜보던 태한의 손이 칼자루를 움켜쥐며 떨렸다.
“내가 저 자식을 당장 가서!”
하지만 장도가 그의 팔을 붙잡았다.
“안 되네. 지붕마다 저격수가 있다네. 지금 덤볐다간 우리 모두 끝장이야.
자네는 태백 선생님을 모시고 빨리 빠지게.
종로서 폭파는 물 건너갔어... 하지만 최소한 저 사람들은 반드시 구해내야지.”
장도는 태백에게 무릎을 꿇어 큰절을 올렸다.
“선생님... 저의 목숨, 오늘 이곳에 걸겠습니다.”
태백은 장도의 손을 꼭 잡았다.
“부디 살아만 돌아오게. 조선의 앞날은 자네 같은 청년에게 달려 있다네.”
성곤도 나섰다. 두 손을 공손히 모으고 장도를 향해 말했다.
“선생님의 오늘 행적과 앞으로의 싸움, 모두 기록으로 남겨 세상에 알리겠습니다.
부디 무사히 돌아오십시오.”
장도는 미소를 지으며 성곤의 어깨를 툭 치고는 짧게 대답했다.
“앞으로도 잘 부탁하네.”
그 순간, 장도의 몸은 번개처럼 튀어올라 지붕 위로 날아올랐다.
그는 조용히 스며들듯 움직이며, 인질들을 향해 다가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