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복의 종소리 아래, 조선의 혼이 울다
경성의 하늘이 유난히 맑았다.
그날, 엔젤 호텔은 말 그대로 축제의 장이었다.
입구부터 군복과 양복, 그리고 비단옷이 뒤섞였다.
황금빛 초대장이 쏟아지고, 경성의 상류층과 일본 관리, 그리고 야쿠자들까지 한자리에 모였다.
형준의 결혼식이었다.
그리고 그건 경성의 타락이 정점을 찍는 날이었다.
“너는 항상 우리 가문과 나를 위해서 검을 뽑았지.”
카즈야 회장이 웃으며 말했다.
“하지만 이제는 옆에 있는 그 사람을 지키기 위해서도 검을 뽑아야 한다.”
형준은 허리를 굽혀 인사했다.
“회장님 덕분에 이렇게 멋진 인생을 살게 되었습니다. 평생 잊지 않겠습니다.”
그 옆에서 칸나가 조용히 미소를 지었다.
“그동안 지켜줘서 고마웠어요.
이젠 저 대신, 옆에 있는 신부를 지켜줘요.”
형준은 잠시 눈을 내리깔았다.
그 한마디가 왜 이리도 무겁게 들리는지, 자신도 알 수 없었다.
“삼촌, 진짜 멋져요!”
어린 나루미가 식장을 뛰어다니며 소리쳤다.
형준은 웃으며 나루미를 번쩍 안았다.
“앞으로도 검도 배우고 싶으면 언제든 와라, 나루미.
물론 다나카 삼촌이 더 잘 가르치겠지만!”
그때 다나카가 다가왔다.
“이젠 꿈을 이뤘구나, 형준. 축하한다.”
형준은 환하게 웃으며 그의 손을 꼭 잡았다.
“다 형 덕뿐이지 고마워.”
모두가 웃고 있었다.
음악이 흐르고, 꽃잎이 흩날리고, 잔이 부딪혔다.
그 어떤 전쟁보다 화려하고, 그 어떤 죽음보다 냄새가 짙은 결혼식이었다.
단상 위로 우덕이 올라섰다.
그의 얼굴엔 자신감이 가득했다.
“존경하는 하객 여러분!
오늘 사회를 맡은 종로서 경보부 출신, 서우덕입니다!”
박수와 환호가 쏟아졌다.
우덕이 손을 들어 올렸다.
“식을 시작하기 전에, 중대 발표를 하겠습니다!
금일 받은 모든 축의금, 그리고 신랑 신부가 소중히 모은 3만 엔을
모두 국방헌금으로!! 황군을 위해!! 천황폐하를 위해 바치겠습니다!!”
우덕의 목소리가 천장을 울렸다.
하객석은 환호와 박수로 뒤덮였다.
단 한 사람만, 성곤만이 굳은 얼굴로 그 자리를 지켰다.
그는 축의금을 낸 것을 뼈저리게 후회했다.
손에 쥔 연필심이 부러질 만큼 손에 힘이 들어갔다.
주방에서는 규만이 땀을 흘리며 뛰어다녔다.
“손님이 몇 명이야, 대체…?
야쿠자에 군인에… 조선총독까지 왔잖아!”
엔젤 호텔의 메인홀은 말 그대로 지옥의 VIP석이었다.
야쿠자, 총독부, 일본군 장성들, 조선의 매국 재벌들이 한데 모였다.
그리고, 정중히 인사하며 자리에 앉은 조선총독.
우덕은 미소를 지었다.
“이제… 쇼를 시작할 시간이지.”
그는 마이크를 꽉 잡고 외쳤다.
“자! 오늘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신랑이 입장하겠습니다!
신랑 입장!!”
그때, 문이 쾅하고 열렸다.
순간, 모든 시선이 문 쪽으로 향했다.
그리고… 모두의 얼굴이 굳어졌다.
하얀 예복이 아닌,
검은 도복 차림의 사내가 서 있었다.
이태한.
그의 뒤에는 네 명의 결사대원이 따라 들어왔다.
눈빛엔 두려움이 없었다. 오직 분노만 있었다.
이태한은 한 걸음, 한 걸음 천천히 걸었다.
바닥 위로 들리는 구두 소리,
그건 신랑의 발소리가 아니라 심판의 발소리였다.
그는 검을 뽑았다.
금속의 마찰음이 공기를 가르며 울렸다.
“결혼식은 저승 가서 해라, 이놈들아!!”
이태한의 외침이 터지는 순간,
호텔 천장의 샹들리에가 흔들렸다.
순식간에 총성이 뒤섞이고, 피가 흩날렸다.
하객들의 비명이 파도처럼 몰려왔다.
우덕이 외쳤다.
“이태한이다!! 놈을 잡아!!”
식장 문이 열리며 일본 헌병들과 경찰이 들이닥쳤다.
총탄이 벽을 부수며 쏟아졌다.
그 속에서도 이태한은 검을 빼 들었다.
그의 검은 ‘조선의 혼’이었다.
다나카가 벽에 걸린 장식도를 뽑아 들었다.
두 사람의 검이 공중에서 부딪혔다.
쇳소리가 아니라 폭발음처럼 울렸다.
불꽃이 튀고, 공기가 찢어졌다.
다나카의 기술은 정교했다.
하지만 이태한의 검은 ‘살기’ 그 자체였다.
다나카의 칼끝이 스치자, 이태한의 어깨에서 피가 터졌다.
이태한은 그대로 몸을 돌려 역참으로 반격했다.
칼끝이 다나카의 뺨을 베었다.
“네놈이 감히 여기가 어디라고!?”
“네놈들의 악행을 멈추려고 왔다!”
두 사람의 검이 다시 맞붙었다.
칼날이 부딪히고, 서로의 손목이 덜덜 떨렸다.
다나카는 두 발 물러섰다.
하지만 그의 눈빛엔, 이상하게도 존경과 두려움이 섞여 있었다.
그때, 화장실에 갔었던 복도 끝에서 형준이 뛰어왔다.
“무슨 일이야!”
식장은 이미 지옥이었다.
꽃은 찢겨 있고, 하객들은 피투성이로 도망치고 있었다.
“형준!!”
우덕이 외쳤다.
“놈이야! 이태한이야!!”
형준은 쓰러진 순사의 칼을 낚아챘다.
순간, 이태한이 그를 보았다.
그 눈빛엔 살기와 슬픔이 공존했다.
“네놈이 박살 낸 집안이 몇 갠데 행복하게 결혼한다고? 그게 가능할 줄 알았느냐?”
“그게 무슨 상관이야, 내 인생인데!!”
형준이 달려들었다.
이태한의 검이 맞받았다.
두 칼이 부딪히며 불꽃이 튀었다.
“조선 독립 만세!!!”
단상 위로 결사대원들이 폭탄을 던졌다.
폭발.
대리석 바닥이 갈라지고, 불길이 휘몰아쳤다.
하객들은 피를 뒤집어쓴 채 기어 다녔다.
그 사이, 세 명의 결사대원이 총탄에 쓰러졌다.
성곤은 마지막 한 명을 부축해 뒤문으로 사라졌다.
그는 돌아보며 중얼거렸다.
“저들은 죽지만, 기록은 남는다.”
형준과 이태한의 싸움은 광기였다.
둘은 이미 인간이 아니었다.
피가 손잡이를 타고 흐르고,
숨소리가 짐승처럼 거칠었다.
형준이 옆으로 비틀며 칼을 휘둘렀다.
이태한이 그 칼을 손등으로 막으며 반격했다.
두 사람의 칼끝이 동시에 상대의 어깨를 베었다.
피가 공중에 흩날렸다.
두 사람의 그림자가 불길 속에서 교차했다.
그때, 다나카가 다시 끼어들었다.
“이젠 끝이다, 이태한!!”
이태한은 형준의 칼을 튕겨내고, 다나카의 복부를 베었다.
다나카가 비명을 지르며 무릎을 꿇었다.
그가 숨을 고를 틈도 없이,
뒤쪽에서 우덕이 일어난다.
그리고 총성이 울렸다.
탄환이 이태한의 허벅지를 꿰뚫었다.
그의 몸이 휘청거렸다.
다나카가 피 묻은 얼굴로 몸을 일으켜,
그의 가슴을 향해 칼을 꽂았다.
“끝내라, 형준!!”
형준은 비틀거리며 다가갔다.
이태한은 피를 토하며 형준의 얼굴을 똑바로 봤다.
“나 하나 죽인다고 끝날 줄 아느냐?
이 조선엔... 나 같은 놈들이 모래알처럼 많다...
넌 언젠가 그 모래알에 묻혀 죽을 거다...”
그가 마지막으로 외쳤다.
“대한 독립 만세!!!”
형준의 칼이 그 목을 베었다.
피가 분수처럼 솟구쳤다.
폭발의 잔향이 사라진 뒤,
형준은 칼을 떨어뜨리고 서 있었다.
손이 떨렸고, 귀에는 아직도 총소리가 남아 있었다.
그는 뒤에 서 있던 서아에게 달려갔다.
그녀는 피투성이 웨딩드레스 속에서도 살아 있었다.
“괜찮아?”
“오빠가… 드디어 그 사람을 잡았구나… 역시 내 신랑이야.”
형준은 서아를 안았다.
그의 손등엔 아직도 이태한의 피가 묻어 있었다.
우덕이 먼지를 털며 다가왔다.
“어휴… 이 난리통에서도 살아남은 게 기적이지.
형준아, 결혼식은… 진짜 멋지게 다시 하자고.”
형준은 말없이 웃으며 우덕에게 감사인사를 한다.
그 웃음은… 슬프게도 가장 행복한 웃음이었다.
신랑은 신부를 지켰고,
조선은 또 한 명의 영웅을 잃었다.